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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고사가 시작되었다. 1교시는 과학. 방 일병이 감독으로 들어오자, 교실 곳곳에서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야, 이놈들아. 웬 한숨이야. 커닝은 빨갱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남의 것을 훔치는 도둑질이고. 도둑놈들에게는 몽둥이찜질밖에 없는 거 알지?”
육군 대위로 전역한 교련 선생은 아이들의 기피 대상 1호였다. 겉으로 보면 훤칠한 키에 구릿빛 피부의 남성미 넘치는 교사였지만, 항상 정장 양복에 넥타이까지 갖춰 매고 다니는 멋쟁이로 여선생과 교직원들에게 인기가 많은 사람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괜한 시비나 걸고 이유 없이 괴롭히는 깡패에 지나지 않았다.
해탈봉을 들고 다니며 걸핏하면 아이들을 때리고 체벌을 가했기 때문에 방 일병이라는 호칭은 당연히 멸칭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폭력성이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품행 지도 교사라는 직책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인격인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아이들이 느끼는 공포와 위압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시험 중에 커닝하다 걸려 두들겨 맞은 아이들이 그가 시험 감독으로 들어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문제를 다 풀고 하모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시험 시간은 아직 10분 정도 남아 있었다. 양손을 치켜들고 기지개를 켜는데, 복도 쪽 자리에 앉은 아이의 행동이 이상하게 눈에 거슬렸다. 전교 1등인 양호석이었다. 그가 자꾸 벽을 쳐다보는 것을 보고도 방 일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예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외면했다.
그는 하모와 눈이 마주치자 오히려 호통을 쳤다.
“반장! 고개 안 숙여?”
기가 막혀 시선을 거두는데 이번에는 공산과 눈이 마주쳤다. 하모와 눈이 마주친 녀석은 싱긋 웃더니 다시 책상 위로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공산은 양호석의 바로 뒷자리이기에 그의 행동을 모를 리 없었다. 하모가 손을 들었다.
방 일병이 성가시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뭐야? 갯장어 반장.”
그의 호통에 하모는 주저하면서도 용기를 냈다.
“지금 교실에서 부정행위를 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게 누구야?”
“선생님도 보시지 않았습니까?”
왠지 화난 듯한 그의 목소리에 저항하듯 하모가 대꾸했다.
“이 자식아. 내가 뭘 봐? 다들 시험지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데.”
하모는 말없이 방 일병의 시선을 양호석에게로 끌고 갔다. 그러나 양호석의 얼굴은 시험지를 향해 있었다. 방 일병은 마치 ‘봐, 아무 일도 없잖아.’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모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선생이 아닌 아이들, 아니 양호석을 겨냥했다.
“우리 시험 문제 몇 개 더 맞추려고 치사한 짓은 하지 말자. 더구나 공부를 잘하는 사람일수록 부끄러운 행동은 하지 말아야지.”
하모가 온몸에 힘을 주고 말했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다. 자리에 앉는데 다리까지 후들거렸다. 이윽고 시험을 마치는 종이 울리자, 방 일병은 인상을 찌푸리며 하모를 쏘아보고는 나가버렸다.
하모가 일어서서 양호석을 불렀다.
“양호석!”
“왜?”
대답하는 그의 얼굴에는 귀찮다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하모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나와!”
교실 밖으로 나온 양호석이 짜증을 냈다.
“뭔데? 빨리 말해. 다음 시험 준비해야 해.”
“왜? 벽에 미리 똥칠해 놓게?”
“뭐? 똥칠? 유치한 소리 하지 마.”
“유치한 소리?”
“반장! 너 혼자 순진한 척하지 말라고.”
“뭐라고?”
“바쁘니까 한마디만 해 준다. 선생들은 내가 이 학교 1등이 되는 걸로 만족하겠니? 아니면 전국 1등이 되길 원하겠니? 나는 지금 내 점수로도 충분해. 귀찮지만, 학교가 바라는 걸 안겨 주려고 수고할 뿐이라고.”
한심하다는 듯이 하모를 쏘아보며 교실로 들어가던 양호석이 돌아섰다.
“그게 뭔지 알아? 돈 주고는 절대 살 수 없는 학교의 이름값이라는 거야. 우리 학교가 어떻게 짧은 시간 안에 명문 사립이 되었겠어? 바로 나 같은 우등생의 희생이 필요했던 걸 너 같은 멍청한 녀석들이 알 턱이 없지.”
하모는 돌아선 그의 뒤통수를 노려보다 주먹으로 복도 벽을 내리쳤다.
‘치팅을 하면서 선생과 학부모를 팔아먹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도무지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 양호석의 궤변에 무너지는 자신의 존재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