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는 알아서 큰다'는 말을 싫어했다. 부모는 최대한 아이를 살펴야 하고 가능한 한 많은 지원을 해줘야 할 의무가 있으며 그래야 아이가 제대로 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낳아놓고 알아서 크라는 건 너무 무책임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생각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아이를 낳고 키울수록 저 말을 다른 의미에서,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아이를 예뻐한다. 일단 뭐든 작은 생물체는 본능적으로 귀엽지 않나. 심지어 내 새끼니 더욱 예쁠 수밖에 없다. 다만 아이를 예뻐하는 것과 육아를 잘하는 것은 영 별개의 문제다. 육아를 잘하려면 일단 좀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애는 알아서 큰다'라는 마인드를 어느 정도 장착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육아는 장기전, 아니 네버엔딩이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만 봐도 아직도 육아를 하고 있다. 대학에 가도, 취업을 해도, 심지어 결혼을 해서 손주를 낳아도 육아가 끝나지 않는 듯 하다.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관짝에 들어가야 육아가 비로소 끝난다'
옆으로 좀 샜지만 다시 돌아와보면, 아이와 놀아줄 때 어느 정도는 프로그램(?)이나 밀도 있는 소통이 필요하겠지만 때로는 혼자 놔둬도 아이는 놀이 방법을 찾는다. 장난감이 마땅치 않으면 컵이나 고무줄 같은 평범하기 그지 없는 집안 물건들로 사부작사부작 대기도 하고, 그마저 없으면 자신의 몸을 활용해 놀기도 한다. 나도 옛날에 엄마가 가끔 몸이 좋지 않아 회사에 가지 않고 안방에서 잘 때면, 옆에서 조용히 수납함의 물건을 하나씩 다 꺼내놓은 뒤 거기에 들어가서 빤히 엄마를 쳐다보고 있었다고 했다.
이렇게 아이들은 혼자 알아서 놀기도 한다는 걸, 그것 역시 성장의 과정이라는 걸 머리로는 잘 알고 있지만 실천이 잘 되질 않는다. 나는 기본적으로 아이와 시간을 보낼 때면 외출을 해서 쇼핑이나 산책을 하든지, 집에서 놀아야 한다면 그림을 그리든 끝말잇기를 하든 반드시 뭔가 놀이 소재가 있어야 하는 편이다. 그렇게 밀도 있게 뭔가를 하다 보니 두어시간만 지나도 금방 지치게 된다. 또 아이에게는 그날그날 아이만의 바이오리듬이 있을 수 있는데, 나는 정해진 시간에 씻겨야 하고 밥도 먹여야 하고 공부도 끝내야 마음이 편하다. 때로는 하루 안 씻거나 밥을 대충 먹어도 건강에 문제가 없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갓난아기를 돌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첫째도 둘째도 순한 편이라, 크게 보채는 편이 아니다. 대체로 배고프거나 기저귀를 갈아줬으면 할 때만 우는 편이다. 아기들은 그 외에도 자면서 별 이유 없이 낑낑대는 등 여러 소리를 낸다. 표정도 다양해서 우리는 웃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큰 의미 없는 배냇짓을 하다가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고,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가 금방 또 쿨쿨 잠이 들기도 한다. 다 알아서 크는 과정일 것이다. 보통 두어달 전까지는 수유 때문에 밤잠을 설치게 되는데, 이 시기에 쪽잠이라도 쌓으려면 저런 다양한 소리와 표정에 초연해져야 한다. 때로는 애가 속싸개를 걷어차도, 기저귀에 파란 줄이 가있어도 깨거나 울지 않는다면 좀 놔둬도 아무 지장이 없다. 하지만 나는 역시 그걸 못한다.
완벽주의와 급한 성격은 육아 능력과 상극이다. 육아에는 느긋함이 필수적이다. 어떤 후배가 '육아 50점, 일 50점 해서 100점 하면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바로 그런 마인드가 육아에는 적확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영 육아에 소질도 재능도 없어서 종종 괴롭다. 그래도 아이를 예뻐하는 마음만큼은 순도 100%니까,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1월생이라 신체도 학습능력도 다소 빠른 첫째가 하루는 손편지를 내밀었다. 삐뚤빼뚤 쓴 글씨였지만 어떤 러브레터보다 감동적이었다. '엄마 나랑 놀아줘서 고마워' '엄마 예쁜 목소리로 말해줘서 고마워' 소질과 능력은 없지만 그래도 자격은 있다고 아이가 인증해주니까, 또 노력해보는 수 밖에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