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필패의 역사
등 뒤에서 들려온 것은 한숨이었다. 어쩌다 이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일까? 새벽 시간, 등에는 술에 곯아떨어진(그렇게 생각을 했던) 아가씨를 업고 거리를 헤매던 중에 들려온 소리였다. 잠시 시간을 돌려보기로 하자. 몇 시간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야 현 상황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니까.
친하게 지내던 형님이 자신의 와이프가 일하는 회사에서 참한 처자가 있어서 소개를 해줄 테니 나오라고 했다. 성격도 착하고 이쁘다는 말에 신이 나서 소개팅 장소에 나갔다. 주선자인 형님과 상대인 아가씨,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저녁을 먹게 되었다. 이 날따라 형님이 약간 오버를 하는 것 같았다. 계속 술을 추가하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술이 약한 편은 아니어서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먹었지만 상대는 그렇지 못했다. 얼굴이 불그스름해지는가 싶더니만 2차로 옮겼을 즈음에는 거의 필름이 끊긴 느낌이었다. 자꾸만 옆으로 쓰러지려고 하고 고개를 파묻기도 하고 그렇다고 주정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2차로 장소를 옮겨서도 한참을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던 형님은 자기는 이제 가봐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면서 갑자기 나에게 윙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은 그 윙크의 의미를 너무도 잘 알지만 당시의 순진했던 나는 이 형님이 술에 취했구나라는 생각만 했다. 그 윙크의 의미를 알았어야 했다. 그랬어야 했는데...
주선자가 자리를 뜨고 나니 어색함이 감돌았다. 자꾸만 얼굴을 파묻는 상대와 뻘쭘히 혼자 술을 마시는 나, 이렇게 둘만 있다 보니 대화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고 시간만 덧없이 흘러갔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집에 바래다준다고 하고 밖으로 나왔다. 찬바람을 얼굴에 맞으니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온 것 같아서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이상하게도 집을 알려주지는 않고 또 술을 마시자는 것이다. 여기서 1차로 상대의 생각을 캐취해야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당시의 난 답답한 곰이었다.
3차로 자리를 옮겨서 술을 마시는데 다시 술기운이 올라온 듯 보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얼른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택시를 잡아주려고 택시를 세웠는데 아가씨가 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집까지 바래다준다고 해도 집 주소를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길거리에 그냥 세워 둘 수는 없어서 일단 업고서 정신을 차리기를 기다렸다. 여기서 두 번째 기회가 있었는데 또 눈치를 못 챘다. 바보 같은 과거의 나.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업은 상태로 새벽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니 온몸에 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땀도 나고 등 뒤의 그녀는 무겁게 느껴지고 아주 기분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이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등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그녀는 갑자기 입에서 한숨을 내뱉었다.
"어휴~"
한숨과 함께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이제 내려달라는 표시였다. 내 등에서 내린 그녀는 의외로 멀쩡해 보였다. 방금 전까지 술에 곯아떨어진 모습이 아니었다. 주소를 물어봤더니 알아서 간다면서 택시를 잡아타고 휘잉~하고 사라져 버렸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해답은 다음날 그 형님과의 통화로 알 수 있었다. 다음날 그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때? 지난밤에 잘했어?"
"네, 바래다주지는 못했어도 술이 깰 때까지 함께 있었어요."
"그래? 어디서?"
"업고 돌아다니느라 힘들었었어요."
"너 바보냐?"
그 형님의 입에서도 한숨이 나왔다. 아! 그렇구나 그녀는 내게 신호를 준 것이었구나. 뒤늦게 후회를 해봤지만 이미 떠나버린 버스였다. 그녀는 그날 지각을 했다고 한다. 덕분에 형님은 와이프에게 잔소리를 한 바가지 들었다고 한다. 그녀와의 만남도 더 이상 없었다. 전해 들은 말로는 내가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 그녀가 준 신호는 잠시 쉬어가자는 의미였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 신호를 받지 못한 내가 바보였던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