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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의 꿈 1

소개팅 필패의 역사

by 검마사 Jan 08. 2025

이것은 오래된 첫사랑의 이야기다. 지금까지의 일화를 봤을 때 너무도 연애에 서툴렀던 나였지만 첫사랑 때는 서투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아무것도 몰랐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실수를 저지르던 시절이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첫사랑 때는 다 그런 것이 아니던가?


그녀는 학교 후배였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를 잘 다니고 있던 어느 날 회사 후배라며 전화가 왔다. 알고 보니 영어 회화 교재 판매였는데 정말 학교 후배는 맞았다. 마침 기분이 좋던 상황이라 흔쾌히 영어 교재를 구입했고 이 모습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교재 이야기를 하던 중에 그쪽에서 먼저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사는 곳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오프에서 만나게 되었다. 정작 영어 교재는 한 두 달 반짝하다가 방구석에 밀어 놓고 먼지만 쌓여 버리게 됐지만 말이다.


첫 만남의 그녀는 키가 컸다고 할 수 있다. 나와 키가 비슷했으니까. 힐을 신으면 나보다 머리가 훌쩍 올라갈 정도로 키가 컸다. 본인은 살이 쩠느니 어쩌니 했는데 딱 보기 좋은 옷태였다. 그때는 몰랐었다. 키도 크고 이쁜 학교 후배가 내 첫사랑이 될 줄은 말이다. 어색하기만 했던 첫 만남이었지만 내 인상이 나쁘지 않았나 보다 이후로 만남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풋풋한 만남이었다. 나도 20대였고 그녀도 20대였으니 얼마나 풋풋한 만남이었겠는가? 맛집이고 뭐고 찾아다닐 필요도 없었다. 같이 있었으면 행복했었으니까. 하긴 뭐 그 나이에는 뭘 해도 재밌을 때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복이 넝쿨째로 굴러들어 온 상황이었지만 당시의 나는 어렸고 경험이 없었다. 훨씬 더 재밌고 즐겁게 지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을 긋고 있었던 것 같다.


유교보이의 전형이었달까? 너무 늦게 들어가면 안 되고 손 잡는 것 이상의 액션을 취하지도 않았고 등등 지금 생각해 보면 답답함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내 곁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정말 나를 좋아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서로 누가 먼저 고백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자연스럽게 사귀게 되었다. 그녀가 어느 날 내 손에 꼭 쥐어준 것이 있었다. 할머니가 주신 은반지였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그때 알았어야 했다. 그런데 과거의 나는... 아니 이 바보 멍청이 말미잘 같은 놈은 그냥 받기만 했다. 사람이 말이야 그러면 안 되지! 아오 화딱지가...


그러던 그녀에게 힘든 시기가 다가왔다. 잦은 야근과 주말에도 일하는 날이 많아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집안 사정이 안 좋아져서 생활비를 보태야 했기에 특근, 야근을 자처했다고 한다. 바쁜 와중에도 만남은 이어졌다. 부모님께도 아가씨의 사진을 보여줄 정도로 나도 그녀와의 관계를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무거운 목소리로 저녁 늦게 갑자기 보자고 했다. 회사 회식 중이었던 나는 회식이 끝나면 가기로 했다. 하지만 회식은 길어졌고 결국 그녀를 보러 가지 못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그날 새벽에 다시 전화가 왔다. 다행히 술이 좀 깬 상태에서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새벽 4시쯤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얼굴을 보고 싶다고 나와주면 안 되겠냐는 것이다.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어서 옷을 챙겨 입고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의 집 앞으로 갔다. 놀이터에서 쓸쓸히 있던 그녀는 내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왠지 모르게 쓸쓸한 미소였다. 그녀와 동네 주변을 하염없이 걷기 시작했다. 한 바퀴, 두 바퀴... 한참을 걷던 중에 새벽 그 시간에도 영업을 하는 포차를 발견했다. 포차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오징어를 보며 그녀가 한마디를 했다.


"오빠, 이 오징어를 바다에 풀어주면 안 될까?"


이 무슨 생뚱맞은 소리인가? 물론 지금의 나였다면 그녀의 의도를 알아채고 산 오징어를 들고 인천 앞바다건 태안 앞바다건 갔을 거다. 사실 오징어는 중요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마음을 위로해 줄 사람이 필요했고 내가 그렇게 해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경험도 부족했고... 하아... 센스도 없었다. 적당히 달래서 집에 바래다줬다. 머릿속에는 온통 좀 있으면 출근 시간인데 이를 어쩌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아오 이 바보 멍청이!!


다음 주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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