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남부-
미하스, 론다, 세테닐(7)

지중해를 옆에 끼고 스페인남부 소도시 한 바퀴

by 선배언니

미하스의 지중해 근처 콘도에서 짐을 풀고 론다와 세티넬을 다녀오기로 했다.

미하스에서 론도 가는 길은 1시간 30분. 아찔한 시에라 드 론도 산맥을 넘어 도착. 운전하는 남편이 낭떠러지를 달리느라 내내 긴장한다.


론도는 해발 7백 미터가 넘는 협곡 위에 세워진 마을이다. 절벽 위의 두 마을을 연결하기 위해 세워진 누에보 다리는 다리 위보다는 다리 아래에서 아찔한 절벽 위의 다리를 고개 쳐들고 바라보는 게 압권이다.

다리 아래는 헤밍웨이가 산책했다는 소로가 있다.


깊은 낭떠러지 같은 계곡으로 이고 지고 내려가 거의 90미터 높이의 다리를 세운 수고로움에 감탄보단 민초들의 노동에 한숨이 나온다.


이 다리를 건설한 건축가는 자살을 했다나? 더 이상 완벽한 다리를 만들 수 없어서 자살을 했다는 썰이 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나의 근거 없는 추측으로는 다리건설 중 한번 무너지고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는데 그 괴로움 때문에 우울증 등 마음의 병이 생긴 건 아닐까? 죽은 자만 알겠다.


론다의 중심가는 1월임에는 유럽 위쪽나라와 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론다가 유명한 것은 누에보 다리보다 투우의 역사인 듯하다. 스페인 투우의 5개 도시중 가장 큰 투우장이 누에보 다리 바로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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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유로 내고 입장권과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신청했다. 18세기 후반에 지어진 론다 투우장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투우장이란다.

근데 이 꼭대기에 웬 투우장? 이곳까지 투우경기를 보러 남쪽에서는 론다 산맥을 넘어온다고?


스페인에게 투우란 무슨 의미였을까? 처음에는 귀족 기사단의 말 탄 투우에서 시작하여 전문 투우사가 생기고 오늘과 같이 붉은 천을 휘두르며 소와 대결하는 투우로 변천되었단다.


지금도 9월에 세 번의 투우경기가 열린다는 이 곳.


4년 동안 풀만 먹고 평화롭게 자란 혈통 좋은 숫소를 데려와 어리둥절한 이 놈들을 흥분시키기 위해 먼저 투우사가 칼로 가슴을 찌른단다. 그리고 다시 세 군데를 찔러 한 번도 싸워본 경험이 없는 소가 피를 보고 슬슬 열받고, 피와 소의 씩씩거림을 본 4천 명의 사람들이 흥분의 함성을 지르고 이것이 또 소를 자극하여 뿔을 앞세워 투우사를 향해 돌진하게 만들고 그러다 지친 소를 마지막에 투우사가 심장을 찔러 숨을 끊는다는데...


죽을 때까지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주는 순하고 착한 소를 데려다 이 무슨 짓인고? 알폰소 10세인가 하는 왕은 이러 저런 사유로 투우를 한때 금지했다고 한다. 잘했다. 투우의 프로세스를 알고 나니 투우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 안티투우로 바뀐다. 인간의 DNA에 새겨진 싸움본능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인간끼리의 싸움이 없을 때는 닭이나 소, 심지어는 뭐 곤충까지 붙들어 놓고 대리싸움을 즐기니 말이다.


투우가 한창일 때는 스페인에 투우명가도 있었고, 5천 마리의 소를 상대하면서도 한 번도 다치지 않았다는 한 투우사가 영웅으로 추앙받아 투우장 입구에 동상도 세워져 있다. 뭔 짓을 했기에 한 번도 다치지 않았을까 싶다.


관람 후 인근 레스토랑에서 드디어 소꼬리찜 요리를 맛보았다. 우리나라 갈비찜과 비슷하나 좀 더 느끼하다.

코스요리가 15.98유로. 가격이 착하다. 여기 식당은 보통 요리 하나당 13~ 25유로다. 거기에 식전 와인, 맥주에 빵, 후식까지 시키면 인당 20~35유로다.


론다가 또 유명한 것은 헤밍웨이가 스페인 내전 때 종군기자로 왔다가 이곳에서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를 집필했고 영화도 이곳 누에보 다리에서 찍었다는 것 때문이다.


그가 머무른 호텔은 투우장옆의 파라도르(스페인의 옛 성을 개조한 국영 호텔) 였던 것 같다. 그가 자주 가던 카페가 있다던데 짐작만 하고 세테닐로 향했다.


론다에서 20분 거리의 세테닐은 '걸어서 세계 속으로'의 PD아저씨가 소개했던 곳이다.


세테닐은 아주 작은 시골마을이다. 여기가 관광지로 된 것은 집의 건축형태 때문이다. 특이한 것이 머리 위의 암벽이 있고 그것을 지붕 삼아 집들이 들어선 것이다. 지금은 관광객들로 인해 집들이 샵과 레스토랑으로 바뀌었다. 레스토랑 안쪽벽은 그래서 암벽이다.

Setenil-de-las-Bodegas-31-scaled.jpg


크게 신기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암벽을 들어내지 않고 건축의 일부로 활용해 집안으로 들었다는 것이 창의적이다. 스페인을 차로 달리다 보면 대지가 우리네처럼 흙이 아니라 거친 바위로 된 것을 볼 수 있다. 고속도로도 바위덩어리의 중간을 바리깡을 밀듯이 건설된 곳이 많다. 한마디로 척박하다. 올리브나무가 척박한 곳에서 잘 자라나 보다. 기후는 연중 좋으니까.


이러다 보니 집도 돌 언덕을 깎아서 만들 수밖에 없고, 전체를 깎아 평탄화 작업을 해서 만들기보다는 한쪽 벽면과 지붕을 살리면서 집을 만들어 나간 것 같다. 자연에 적응하기 위한 궁여지책이 이렇게 관광명소가 되기도 한다.


두 군데 마을을 도니 하루가 다 갔고 다시 한 시간 반 걸려 미하스 콘도로 컴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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