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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와 사랑 May 27. 2024

말을 위한 기도

  얼마 전 교도관 선배 한분이 30여 명이 함께 하는 단톡방에서 동갑내기 회원과 감정 섞인 말을 주고받아 상대방한테 사과를 하되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서 회원들에게도 사과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냐? 고 물어보기에 이해인 수녀님의 "말을 위한 기도"를 올린 후 그 밑에 "잠시나마 회원님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글을 올려 말을 위한 기도를 읽으며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ㅇㅇ씨와 대화를 하며 오해했던 부분도 있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좀 더 넓은 마음으로 포용하며 회원님들께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선배는 내가 일러준 대로 단톡방에 올렸고 대성공이었다.


  살아가면서 주변사람들과 항상 좋은 관계만을 유지할 수 없고 때때로 다툼이 벌어지고 심한 말을 내뱉기도 한다. 그때마다 마음이 한동안 편치 않아 이해인 수녀님의 말을 위한 기도를 읽으며 새로운 다짐을 하곤 한다.


  교도관 생활을 하면서 말로 인해 살인을 저지른 수용자들을 많이 봤다. 뉴스를 통해 악플로 인해 자살하는 연예인들도 가끔 보게 된다. 20여 년 전 경교대원 1명이 근무 중 잘못을 하여 심하게 질책을 받은 후 감시대에서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평소에 직원들의 잘못을 큰소리로 심하게 꾸짖는 상사가 있었는데 그날 아침에도 경교대원을 많은 사람들이 듣는 곳에서 심하게 질책한 후 소대장에게 전화를 걸어 교육 똑바로 시키라며 싫은 소리를 하였고 소대장은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경교대원에게 안 좋은 말을 하였고 가뜩이나 개인적으로 고민이 많고 소심했던 경교대원은 그날 밤 감시대 근무 중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다.

  정확한 내용을 모르기에 모두들 말조심을 했지만 그날 심한 말을 듣지 않았다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남긴 사건이었다.


  지난날 극도로 화가 치밀어 올라 모질게 쏟아냈던 말들,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상대방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았던 말들, 그때 참았어야 했는데 그때 참았더라면 달라졌을 텐데.....라는 아쉬운 마음,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해인 수녀님의 "말을 위한 기도"를 곱씹어 본다.

-------------♡♡♡♡♡---------------

말을 위한 기도

-이해인 수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속에서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언어의 나무


주님

내가 지닌 언어의 나무에도

멀고 가까운 이웃들이 주고 간

크고 작은 말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둥근 것 모난 것

밝은 것 어두운 것

향기로운 것 반짝이는 것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나와 함께 머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할 말은

참 많은 것도 같고 적은 것도 같고

그러나 말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살이


매일매일 돌처럼 차고 단단한 결심을 해도

슬기로운 말의 주인 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날마다 내가 말을 하고 살도록

허락하신 주님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하여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치게 하소서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경박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과장하지 않으면서 품위 있는

한 마디의 말을 위해

때로는 진통 겪는 어둠의 순간을

이겨 내게 하소서


참으로 아름다운 언어의 집을 짓기 위해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道를 닦는 마음으로 말을 하게 하소서


언제나 진실하고

언제나 때에 맞고

언제나 책임 있는 말을

갈고닦게 하소서


내가 이웃에게 말을 할 때에는

하찮은 농담이라도

함부로 지껄이지 않게 도와주시어

더 겸허하고

더 인내롭고

더 분별 있는

사랑의 말을 하게 하소서


내가 어려서부터 말로 저지른 모든 잘못

특히 사랑을 거스른 비방과 오해의 말들을

경솔한 속단과 편견과

위선의 말들을 용서하소서 주님


나날이 새로운 마음, 깨어 있는 마음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내 언어의 집을 짓게 하시어

해처럼 환히 빛나는 삶을

당신의 은총 속에 이어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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