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날이었다. 올려야 할 차례상이 없는 우리 집은 재작년부터 가야 할 부모님 댁도 없어졌다. 지난 설까지만 해도 남편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봉안당 앞에 앉아 울었다. 하지만 이번 명절에는 별말 없다. 가보고 싶으면 같이 가자고 하니, 한참 동안 묵묵부답하다 한마디 중얼거릴 뿐이었다.
“피곤해. 쉬고 싶어.”
그래도 명절인데 우리도 뭐 좀 해야 하지 않겠냐고, 종일 웅크리고 누워있는 사람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딱히 갈 곳이 정해진 것은 아니라 방향은 자연스레 산책 겸 옆 동네 상가로 향했다. 아파트 두 개 단지를 가로질러 20분 쯤 걸었다. '늘 한가위만 같아라.' 라는 말이 생각날 만큼 날은 청명했고 그 아래 갈 곳없는 우리 부부의 발걸음은 한가로웠다.
평소에도 가끔 오는 이 상가는 제법 멀리 사는 주민들도 일부러 찾아올 만큼 규모가 크다. 지상은 옷가게, 꽃가게, 약국, 병원, 학원, 안경원 등으로 채워져 있고 지하는 슈퍼마켓과 작은 반찬가게들로 구성되어 있다. 값은 대형마트보다 조금 비싸지만, 상인들이 직접 만든 음식을 팔고 또 지역 상품권을 쓸 수 있기 때문에 명절에는 특히 북적인다.
1층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에스컬레이터가 끝나는 점을 기준으로 왼편에는 떡집이, 오른편에는 전집이 있다. 내려가는 동안 기름을 머금은 채 조명을 받은 송편과 갖은 전들이 마치 아침바다의 윤슬처럼 반짝거리는 것을 보았다. 풍요로운 추석이다.
“여보. 우리도 전이나 한 접시 사 먹을까?” 내 말에 남편은 말없이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었다. 뷔페식당처럼 사람들이 스티로폼 접시에 양껏 전을 담으면 주인은 무게에 따라 가격표를 붙였다. 남편을 줄 세워놓고 나는 저울 앞을 기웃거렸다. 가격이 얼마나 하나 궁금했다. 주인이 동태전이 절반쯤 담기고 꼬치 세 개, 동그랑땡 다섯 개정도가 얹어진 접시를 랩으로 감으면서 “이만 오천 원이요.”라고 말한다. 나는 남편의 팔을 잡고 떡집으로 갔다.
송편은 가로로 세 줄, 세로로 네 줄 담긴 채 포장되어 있다. 한 팩에 5천 원이라는 말과 함께 주인은 “콩으로 줄까, 깨로 줄까, 반반 섞인 것도 있고.” 연신 선택을 다그친다. 머뭇거리는 나를 제치고 남편은 말한다. “한 팩씩 주세요.” 송편 두 팩이 담긴 검정 봉지를 달랑거리며 마트로 갔다.
나는 전을 직접 부치기로 했다. 남편이 막걸리를 고르러 간 사이 나는 냉동 생선 코너로 갔다. 동태살은 6,800원 대구살은 12,500원이었다. 가격 차이가 크게 났다. 휘둥그레한 내 눈은 둘을 나란히 놓고 어느 것이 가시가 없고 살이 통통한가 비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머릿속에서는 6,800원과 12,500원이 충돌해 정신이 없다. 뭐가 대구고 뭐가 동태인지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맛의 차이 역시 관심 없다. 그저 숫자끼리 서로 치고받고 싸울 뿐이다.
그 순간 여자 한 명이 내 옆에 서서 동태와 대구를 뒤적거렸다. 전화벨이 울리고 여자는 말하기 시작한다.
“마트 왔어. 그냥 뭐... 갈비 좀 하고 전 한 접시 부치고 삼색 나물 해야지. 응? 한우는 무슨. 그냥 미국산. 어, 그러네. 7천5백 원. 아 나보고 어쩌라고? 이것도 다 시든 거 세일하길래 잡은 거야. 싱싱해 보이는 건 8천4백 원이라고. 그럼 나물 하지 마? 시금치 하나를 안 올릴 거면서 무슨 차례상을 차리라고 해? 아 몰라, 끊어!”
신경질이 잔뜩 난 여자는 생각해볼 것도 없다는 듯 제일 위에 놓인 동태살 한 팩을 집어 카트에 던졌다. 나는 “시금치 한 단에 8천4백 원이나 해요?”라고 붙들고 물어볼 뻔했으나 있는 힘을 다해 입을 꽉 닫았다.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6,800원과 12,500원이 싸우고 있다. 어차피 우리는 갈비찜도, 삼색 나물도 안 하니 12,500원쯤 하는 대구전 한 접시 정도는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아니야 그래도 거의 두 배가 차이니까 동태로 해야 맞지 않을까......
집에 돌아와 얼어있는 동태 살을 채반에 받쳐 녹였다. 물기를 제거하고 밀가루와 계란을 입혀 노릇노릇하게 구웠다. 열려있는 창문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가을바람에 달궈진 기름 냄새가 솔솔 제법 맛깔나게 풍긴다. 나는 제빵용 저울을 꺼내놓고 남편에게 물었다.
“얼마나 드릴까? 백 그램에 삼천오백 원인데.”
“삼백 그램만 주세요.”
아기 손바닥만 한 전 9조각을 접시에 담았다. 간간하고 고소한 전과 시원한 막걸리는 아주 잘어울렸다. 알록달록한 송편 역시 쫄깃하고 달콤했다. 배는 부르고 보름달은 휘영청 떠오른다. 알딸딸 취기가 오르니 더할 나위 없이 기분 좋다.
그러니까, 늘, 한가위만 같아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