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 프롤로그

기능재활자에서 생활체육인으로 가는 길

by 까까멜리아


가끔 흠칫 놀랄 때가 있다.


‘2002 월드컵이 무려 23년 전이란 걸 깨달을 때’

‘화장실 거울에 비친 정수리에서 흰머리를 발견했을 때’

‘재미로 보던 건강검진 결과지를 손에 들고 긴장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가 그렇다.


특히 건강검진 결과에서 종합소견이 길거나, 각종 수치에 빨간 숫자가 하나라도 눈에 띄면, 이제는 등골이 서늘해지며, 두려운 맘도 살짝 든다.


‘나도 늙는건가? 아니, 이미 늙은건가?’


마음은 아직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에 머무른 채 몸뚱이만 타임슬립 해 40대가 되어버린 기분이다. 할머니들의 ’ 마음은 이팔청춘‘이란 말이 진심이었다는 걸, 마흔이 되어서야 알게 됐다.




20대 때는 친구를 만나면,

맛집얘기, 연애얘기, 옷, 화장품 등의 얘기를 했고,

30대 때는 결혼, 임신, 출산, 육아 얘기를 했다.


40대가 된 지금은,

첫 번째로 나오는 주제가 ‘건강’이다.


“나, 얼마 전에 피검사했는데 당뇨 전단계래.”

”진짜? 나는 콜레스테롤 높다고 술 끊고 운동하래.“


그 후에도 랩처럼 쏟아지는 각종 건강 이야기의 끝은 언제나,

‘아… 운동해야 하는데…’로 마무리된다.

(20대 때는 ‘아… 영어공부 해야 하는데…’였다.)


나도 그랬다.


자가면역질환, 그것도 전신성 관절염이 있음에도

건강할 수 없게 먹고,

건강하지 못하게 생활했으며,

운동은 숨쉬기와 일상 걷기가 전부였다.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확찐자’ 대열에 당당히 들어섰고, 그 상태에서 둘째를 임신, 출산하며, 안 그래도 없는 체력을 바닥까지 닥닥 긁어 땡겨쓴 결말은 가혹했다.


‘두 발로 못 걸었다.’


9개월 동안 양, 한방 모두 찾아 온갖 검사, 물리치료, 침치료 다 받아봤지만 효과는 없었고,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걸음을 떼는 매 순간 통증이 밀려오는 시간이었다. 이후 어렵게 찾은 한 병원에서 기능재활치료를 1년이나 받은 끝에 겨우 일상생활을 유지할 만큼 됐다.


짧은 거리지만 걸을 때 무릎을, 허벅지를, 발목을 신경 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기능재활치료를 시작한 이후, 나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을 하고 있다. 남들이 보기엔 하찮을 만큼 부하가 낮은 저강도 운동이지만, 한 달 전, 1년 전의 나를 떠올리면, 훨씬 나아진 것을 알기에 꾸준히 하고 있다. 여기에 부스터좀 달아보고자 석 달 전부터는 식단도 신경 써서 먹고 있다.


그 결과 그렇게 ‘다이어트’를 외칠 때는 2-3kg 빠지고 찌기를 반복하던 몸무게가 석 달 사이 8-9kg(매일 다름)이나 감량이 되었고, 소중한 근육량도 잘 지켜지고 있다.


‘내가 매일 무언가를, 이렇게 오랜시간 해내다니!’


어릴 때부터 꾸준함이라곤 1%도 없던 내겐 실로 엄청난 결과다.


이러한 삶의 패턴 변화는 단순히 체중감량에 그치지 않고, 피검사에서 나타나는 여러 지표들까지 개선시켰다.


내 몸의 겉과 속이 모두 좋아지는 중이다.


그렇다고 지금 내 몸이 탄탄한 근육질이라던가, 혹은 앓고 있던 질병이 드라마틱하게, 하루아침에 깨끗이 나았다던가 하진 않다.


나는 여전히 둥근 얼굴에 폭신한 배를 갖고 있는, 동네 흔한 40대 아줌마의 모습이다.

(다만 좀 까불이 느낌의 아줌마다.)


다만, 나는 어제보다 0.1cm라도 나아진다면, (썩 달갑진 않지만) 노화를 감안했을 때, 유지만 된다 해도, 장하고 기특하다며 나 스스로를 칭찬해 줄 용의가 충분히 있다.


더불어 백스텝을 거듭하면서도 꾸준히 반 발짝씩 나아가는 나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동기부여나 위안이 될 수 있다면 너무 좋겠다는 맘에 글로 남겨보기로 했다.


’기능재활자인‘ 내가, 언젠가 ‘생활체육인’이 됐을 때, 이 기록들을 들춰보면, 노력한 내가 얼마나 기특할까!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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