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춥다가 비
새벽에 둘째가 자다 깨서 울었다.
달래서 재웠는데 내가 잠이 오질 않아 잠을 설쳤다.
다시 잠들었는데 5시에 말똥말똥 눈이 떠졌다.
천천히 씻고 외출준비를 했다.
남편이 출근하고 두 아이와 계란, 과일, 우유로
아침을 대충 챙겨 먹고, 조마조마한 맘으로 병원에
전화를 했다. 한참 대기 끝에 전화연결이 됐고,
다행히 내원하라는 답을 받았다.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병원으로 향했다.
주차를 하고 바로 피검사를 하러 갔는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긴 연휴가 끝나고 환자들이 몰린 데다 오늘따라
호출시스템이 고장 나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이 병원 3년째 다니는데 이런 상황은 또 처음이다.
그렇게 대기, 대기 끝에 검사,
다시 대기, 대기, 대기 끝에 진료를 봤다.
담당 교수님은 늘 밝은 톤으로 인사를 해 주신다.
종일 환자를 보며 그런 태도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정말 대단한 분, 늘 감사하고 있다.
오랜 시간 아프다 와서 그런지, 그냥 안도감에 또
눈물이 날 뻔했다. 원래 눈물이 없는 편인데,
이 정도 감정기복이면 갱년기가 아닌가 싶다.
따로 주사를 맞거나 하진 않고 약을 좀 올렸다.
그저 의사를 만나고 왔을 뿐인데, 컨디션이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이런 마음의 영향을 많이 받은 몸뚱이 같으니라고…
점심을 차려 먹기엔 힘들 것 같아 지하 매장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와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샀다.
햇볕이 좋기에 우울증도 막아 볼 겸, 집으로 돌아와
마당에 캠핑의자를 두고 앉아 먹었다.
양상추와 토마토, 아보카도가 잔뜩 들어가
곧 터질 듯 빵빵한 샌드위치를 와구와구 먹었다.
병원에서 2주쯤 쉬라 했으니까, 일단 쉬자.
집으로 들어와 다리를 쭉 펴고 앉아있다가 누웠다.
잠이 쏟아져 잠깐 잤는데 깨고 보니
15분이 지나있었다. 늙나… 잠이 줄었네;;
이렇게 몸 곳곳이 늙는 중인 건가?
조용하게 쉬는 시간도 잠시, 두 아이를 픽업해 오면
본격 대 혼란의 시간이 시작된다. 저녁은 간단히
새우볶음밥(이 정도면 새우 마니아…),
그리고 엄마가 가져다주신 김치제육을 익혔다.
오전 병원에 이어 아이들과 정신없는 오후,
저녁준비까지 하고 나니 입맛이 없었다.
내가 진짜, 아파도 먹는 사람인데, 입맛 없는 거 보니
나 이번엔 진짜 힘든 거 맞네 맞아.
둘째가 생각보다 많이 먹어서, 내 밥까지 다 먹고
두 숟갈 남았기에 여기에 김치제육 고기 두 점을
먹고 저녁식사를 마무리했다.
그동안 남편은 통근거리가 멀어 출퇴근시간을 조금
늦게 조정했는데, 그 늦어진 퇴근시간에도
러시아워를 피해 더 늦게 왔다. 그러다 보니 평일
육아와 살림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매일 두세 번씩
두 아이 라이딩에 병원 일정까지 챙기며 저녁밥은
늘 집밥을 차려 먹었다. (아프기 전 까진 남편 몫까지
매일 저녁밥을 두 번씩 차렸다.) 여기에 주말이면 늘
나들이, 부모님 댁 방문, 여행 등으로 집에서 쉬는
날이 없었다. 매 주말마다 나는 짐을 싸고 풀기를
반복하며 일주일을 마무리했던 것 같다.
힘들었는데, 나만 힘든 거 아니니까,
남편도 매일같이 원거리 출퇴근에 힘들게 일하니까
이 정도는 내가 혼자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환자(?)의 입장임을 잊고 살았다.
적당히 쓰고 요령껏 쉬어주며 지냈어야 했다.
오늘, 정말 오랜만에 남편이 둘째가 잠들기 전에
왔다. 와서 저녁을 먹고 둘째를 씻겨줘서 내가
재웠다. 그동안 남편은 저녁 설거지를 했다.
이만해도 정말 한결 수월하다.
나 스스로를 아끼고 보듬어야 하는 이유를 이번
일로 정말 확실히 깨달아가고 있다.
저스틴비버도, BTS도 끊임없이 전달하던 메시지.
Love yourself!
이제부터 나는 나를 좀 더 아끼고 사랑해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