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이 되어서야 미래를 고민하고, 사회복지학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졸업과 동시에 사회복지사로 시작했던 1년간의 사회생활은 "열정"이라는 두 글자로 압축이 되었다. 처음부터 너무도 잘하고 싶어,밤 11시까지 프로그램 일지를 정리하다가집에 와서는 숨이 쉬어지지 않는 밤을 겪으면서 퇴사를 감행했다. 더 나은 곳으로 옮겨보는 것이 목표였으나 이직이 아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2년의 기다림을 견뎌야 했다. 뜻대로 되지 않아 거의 포기한 채로 마지막 시험을 치르게 되었는데, 덜컥 합격하면서 두 번째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으로 17년의 세월을 조직에 맞추고, 인내하고, 고비를 넘기다가 이제는 내려놓았다.
두 번의 퇴사, 당연히 계획된 길은 아니었다.
아마도 글쓰기의 시작점은 퇴사로 인한 답답함을 풀어내는 것이었을 텐데
오히려 무언가 되려고 애쓰는 또 다른 나를 만들었다.
바라던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니 누가 읽어주지 않을까 봐 걱정되었고, 그런 와중에 연재를 시작했다.
절제되고 정제된 삶을 위해 글쓰기로 구원받고 싶었다.
말맛 나는 글을 써서 살맛 나는 오늘을 만들고 싶었다.
욕심이 과했다는 걸 진즉에 알았지만, 멈출 수가 없었기에….
고백하건대...
글쓰기를 시작할 때, '치유'의 끌림으로 시작했지만 초심을 잃어버린 건 순식간이었습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일렁거리고, 작가의 이름으로 글을 올리니 두근거리고 잠시나마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또 기대라는 걸 했습니다. 글쓰기 자체의 소중함을 뒤로한 채 누군가의 '좋아요' 버튼과 '댓글'을 바라는 인정욕구가 눈덩이처럼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이번 주에 그만둘까 다음 주에 마감할까 수도 없이 갈팡질팡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누군가의 댓글이, 누군가의 하트가, 누군가의 응원이 저를 살리고 '그래 한편만 더 써보자'는 용기에 불을 지펴주었습니다. 덕분에 마지막 회를 써 내려가는 날이 왔습니다.
글쓰기가 어떻게 나의 삶에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결말을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한 가지 소중한 사실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스스로'라는 말은
너 혼자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등 떠미는 것 같아
저에게는 슬픈 단어였습니다.
그러나 '스스로'가 주는 위로는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귀중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행복하라'는 말이 차갑고도 냉정하게 느껴질 때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10주간의 연재 글을 올리면서 적어도 그 말이 따뜻한 응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 브런치북은 무턱대고 시작해 버린 무모한 도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이 시간을 지나며 저는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