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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진 Jan 08. 2023

내 곁에 노견 한 마리

열다섯 살 까망이




우리 집 강아지가 올해로 열다섯 살을 맞이했다. 2009년 6월 18일에 태어난 아주 까만 수컷 강아지. 그래서 이름도 까망이다. 요크셔테리어 믹스로 굉장히 작은 아이인데 성질머리는 대단하다. 무슨 일인지 항상 노여워있는 그는 할머니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만지거나 안으려고 하면 으르릉거린다. 그러면서도 사랑은 받고 싶은 것인지 관심을 주지 않거나 모르는 척 등을 돌리면 스트레스를 받아 설사를 한다. 종잡을 수 없는 개다.


할머니는 말 그대로 까망이를 ‘업어’ 키웠다. 목도리를 포대기 대신하여 항상 까망이를 등에 업고 화초에 물을 주고 설거지를 했다. 까망이도 으레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할머니 등 위에서 편안히 자리를 잡았다. 그런 까망이는 할머니가 몸져누웠을 때에도 할머니 곁을 무슨 일이 있어도 떠나지 않았다. 밥도 할머니 곁에서 먹었고 물을 마시러 나갔다가도 후다닥 돌아왔다. 하지만 병세가 깊어지면서 할머니는 까망이와 정을 떼려고 했던 것인지 까망이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내가 까망이를 도맡는 날이 많아졌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까망이에게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지만, 까망이를 살린 건 부끄럽게도 나였다. 까망이는 태어난 지 37일 만에 우리 집으로 왔는데 그 때문인지 몸이 많이 약했다. (실제로 막내로 태어나기도 했다.) 그래서 병원 신세를 많이 졌는데 그때마다 울면서 수건에 까망이를 싸서 병원에 데리고 간 건 나였다. 까망이가 몰라줘서 그렇지. 까망이를 중성화시키고 울면서 데리고 온 것도 나였다. 까망이가 몰라줘서 그렇지.


까망이와는 추억이 많다. 난생처음 서울에 있는 애견 카페에 함께 가기도 했고, 동네 구석구석을 산책하기도 했고, 어쩌다 받은 카메라의 첫 번째 모델이기도 했으며, 내 싸이월드와 인스타그램에 가장 많이 올라간 것도 까망이였다. 까망이는 할머니가 회사에 가면 항상 내 옆으로 와 잠을 청했고 할머니가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할머니에게로 돌아갔다. 그래도 서운하지 않았다. 진짜다. 진짜 서운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죽고 난 뒤, 까망이가 할머니를 많이 찾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찾지 않았다. 문 앞에 나가 있는 일도 없고 울지도 않아서 까망이가 그새 할머니를 잊은 건가 생각했다. 하지만 또 그건 아니었던 게, 까망이는 종종 할머니가 자기를 업어주었던 목도리 앞으로 가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개들은 주인이 죽은 걸 모른다고 하던데 (하긴, 알 길이 없지.) 그래서 계속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까망이를 감쌌던 목도리는 이제 버리고 없지만, 집도 다른 곳으로 이사를 왔지만 까망이는 가끔, 아주 가끔 다른 곳을 보며 멍을 때린다. 그때마다 할머니를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까망이는 이제 노견 중에서도 노견이라서 잠을 많이 잔다. 하루에 18시간은 잠으로 보내는 것 같다. 예전만큼 집을 돌아다니지도 않고, 냄새를 맡지도 않는다. 밥을 먹고 볼 일을 보고 자는 것이 까망이가 하는 일 전부지만 나는 그 일이라도 충실하게 해내는 까망이에게 늘 고맙다.


까망이는 현재 기관지협착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그래서 열세 살이 되던 해 산책을 금지당했다. 유행하는 개모차라도 사서 까망이를 산책시킬까도 생각했지만 할머니가 죽고 그 후처리를 한다고 일이 바빠 그 마저도 제대로 시켜주지 못했다. 그래서 올해의 할 일 중 하나는 수급비를 모아서 까망이의 개모차를 사는 것이다. 튼튼하고 예쁜 걸로 사서 까망이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닐 것이다. 예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까망이는 계절의 냄새를 맡고….


늙으면 개들도 입맛이 없어진다던데 까망이는 다행스럽게도 입맛이 아주 잘 살아있다.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밥 달라고 시위를 한다. 하지만 까망이가 가지고 있는 병의 특성상 살이 찌면 안 되므로 밥은 항상 같은 양을 하루에 두 번씩 주고 있다. 간식도 웬만해선 주지 않는다. 츄르나 개껌 같은 것을 맛있게 먹는 다른 강아지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살이 찌는 것을 막으려면 어쩔 수가 없다.


까망이와의 추억을 떠올려보는 데 있으면서도 없다. 까망이를 키우는 동안 많이 바빴기 때문일 것이다. 까망이도 이럴까. 나와의 추억이 있으면서도 없을까. 아냐, 까망이는 더 많은 것들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몰라. 나만 기억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걸지도.


이사를 오면서 방에 큰맘 먹고 침대를 두었다. 침대의 높이가 높아서 관절이 약한 까망이는 올라올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예전처럼 함께 잠을 잘 수 없고, 뒹굴 수 없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까망이도 내 허리 건강을 이해해줄 것이다. 아마도.


그래도 잠에서 깨면 항상 침대 밑으로 내려와 까망이를 본다. 까망이는 그때마다 빨래 넌 것처럼 바닥에 널려 잠을 자고 있다.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코도 드릉드릉 곤다. 가끔 들으면 아주 사람 코 고는 소리가 따로 없다. 그런 까망이가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으면 까망이는 생각지도 못한 손길에 깜짝 놀라 노엽게 짖는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빨이 없어서 물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까칠한 까망이, 그래도 귀여운 까망이. 그래도 남들 중학교 들어가서 한 학년을 더 올라가는 시간 동안 살아주어서 고맙다. 비록 가끔은 눈만 마주쳐도 뭐가 그리 성질이 나는지 짖긴 하지만 그래도 오래 살아주어서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다. 까망이는 세상에 지친 내게 위로가 되어주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까망이를 보낼 생각이 없다. 까망이도 갈 생각이 없는 것 같고. 아마 대학에 들어가는 나이까지 살아주지 않을까? 멋대로 생각해 본다. 대학을 졸업할 나이까지 살아줘도 괜찮다. 나는 까망이를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열심히 보살필 것이고, 까망이는 가만히 누워 노여워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지금도 밥을 달라 시위하는 까망이를 뒤로한 채 글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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