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슴이라 행복합니다.
우리 집 마님은 원래는 공주였다.
배우 김자옥 씨처럼 심한 공주병 환자였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도 공주는 뽀뽀를 해줘야지 그냥은 못 일어난다고 코맹맹이 소리를 한다.
아무래도 망구가 망령이 났나 싶다.
그래도 나이가 있는데 공주보다는 왕비가 맞지 않겠냐, 중전이 되어 내명부를 다스려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가 많이 맞았다.
도무지 내가 왕이 되는 게 못마땅한지 결국 자기는 마님이 되고 나는 마님을 받들어 모시는 머슴으로 낙찰이 됐다.
이 나이 되니까 아내와 나의 위상이 달라진다.
나는 이제 아내랑 놀고 싶은데 아내는 여기저기 불려 다니느라 공사다망한 귀하신 몸이다.
정기적 모임만도 한 달에 서너 개는 되는 것 같다.
며칠씩 친구들이랑 여행도 다니고 동창회도 열심히 나간다.
누구랑 어디를 가느냐고 시비를 걸거나 물어서는 안 된다.
삼식이 소리 듣지 않고 마님 곁에 붙어살려면 처신 잘해야 한다.
젊어서 내게 기운 아내의 머리가 이젠 내가 아내 쪽으로 기운다.
이게 자연스러운 세상 이치고 순리가 아니겠나.
화춘화와 남보원이 50년도 훨씬 전에 불렀던 '잘했군 잘했어'란 노래가 있다.
영감 / 왜 불러 / 뒤뜰에 뛰어놀던 병아리 한 쌍을 보았소 / 보았지 / 어쨋소 / 이 몸이 늙어서 몸보신하려고 먹었지 /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 그러게 내영감이라지 (1절)
마누라 / 왜 불러요 / 외양간 매어놓은 얼룩이 황소를 보았나 / 보았죠 / 어쨌나 / 친정집 오라비 장가들 밑천에 주었지 /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 그러게 내마누라지 (2절)
해학적 가사 속에 우리네 부모님들의 부부간 평화를 위한 지혜가 담겨 있다.
사실 병아리 한 쌍이나 누렁이 황소는 옛날 시골의 궁핍한 살림에서는 적지 않은 밑천이었을 거다.
그것을 영감과 마누라가 서로 상의나 허락도 없이 덜렁 잡아먹고 친정 오래비에게 줘 버렸단다.
그런데도 그저 잘했군 잘했단다.
한 술 더 떠 그러게 내영감 내마누라란다.
속으론 열불 터질지언정 이미 지나간 일 시비를 다투어 뭐 하겠나.
그저 그랬거니 하며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건데 부부간 깊은 신뢰감과 애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나도 젊었을 때 아내의 만류에도 고집을 부려 경제적 난관을 많이 겪었다.
국민학교 동창생에게 거액의 투자 사기를 당했고, 묻지마 투자로 고압선이 지나가는 땅과 무덤이 있는 땅 등 부동산에 목돈이 묶였다.
뭐 나만 그런 건 아니다.
아내도 얇은 귀로 미얀마 부동산에 어울려 투자했다가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는 바람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있다.
속 쓰리고 후회되는 어리석은 일들이었지만 우리 부부는 서로 도닥이며 그저 잘했군 잘했어하고 있다.
국민 사랑꾼으로 뭇 남성들의 시기를 사고 있는 배우 최수종 씨의 어록 중에 '당신이 그랬다면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요.'라는 말이 있다.
그야말로 부부간의 무한 신뢰를 나타내는 최상의 표현이다.
합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지금의 MZ세대에게는 공감되지 않는 소리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젊은 사람들은 결혼도 잘 안 하려 하지만 이혼도 너무 쉽게 하는 것 같다.
나는 캠핑장에서만 머슴을 자처하지 아직도 집안에서는 영감처럼 군다.
특히 명절이나 제사 때 어머니 집에 가면 주방 근처엔 아예 얼씬도 안 한다.
아내는 아무래도 어머니께서 나를 왕자로 잘못 키우신 것 같단다.
나는 발끈해서 당신도 장인어른이 공주로 곱게만 키워서 공주병 걸린 것 아니겠냐고 응수했더니 원래 딸은 공주로 키워야 하고 아들은 머슴으로 키워야 하는 거란다.
자기는 아들을 왕자가 아니라 머슴으로 키워 자랑스럽단다.
우리 아들은 설거지와 집안 청소, 세탁기 돌리기, 재활용 등 온갖 궂은 집안일을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해오면서도 일체 불평을 하거나 짜증을 내본 적이 없다.
아이를 낳지 않는 저출산 시대인만큼 요즘은 외둥이들이 대부분이다.
다들 왕자와 공주로 귀하게 키운 금쪽이들이고 이들이 자라 대부분 MZ세대가 되었다.
이들은 기성세대들이 당황스러울 만큼 자기의 권리 주장과 표현이 똑 부러진다.
아내는 모임에서 사위나 며느리를 맞은 친구들 얘기를 듣고 와서는 내게 거품을 문다.
백년손님이라는 사위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며느리 눈치 보는 시집살이가 훨씬 힘들다고들 한다.
어떤 친구는 아들이 주식으로 큰 손해를 봤는데 며느리가 시어머니는 패스하고 바로 시아버지께 당당히 생활비를 요청하더란다.
그런데도 남편은 군말 없이 선뜻 거금을 내줘서 속상했단다.
또 어떤 친구는 손주가 보고 싶어 며느리에게 애 데리고 집에 좀 오라고 했더니 들은 척도 안 하다가 백화점에서 보자고 하니까 그제서야 데리고 나오더란다.
하늘같은 며느님더러 오라가라 해서는 안 된단다.
어떤 친구의 며느리는 손주의 치과 치료비가 백만 원이나 나왔다는데 선물로 어머니께서 내주시면 안 되겠냐고 하더란다.
그러니 딸과 사위는 가까이 살면 좋고 아들과 며느리는 멀리 떨어져 살수록 좋다고들 한단다.
마님은 딸들은 공주로 아들과 남편은 머슴으로 잘 키우고 있어서인지 우리 집은 늘 조용하고 평화롭다.
지난 주말 가족 캠핑을 가서 두 머슴들에게 한쪽 씩 발 마사지를 받으며 느긋하게 불멍을 때리는 마님이야말로 진정 성공한 인생이지 싶다.
나는 외로운 영감보다는 사랑받는 머슴으로 살아가는 게 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