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에서 프랭크 스텔라, 스트라빈스키에서 뮤지컬까지
폭풍우로 콜마르행 기차가 취소되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바젤 바이엘러 미술관에서 큰 비를 피하며 반나절을 보냈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가 소장한 윌리엄 호가스(1697-1764)의 연작 <탕아의 행각>을 보기 위해 시카고까지 갈 생각은 없다. 더욱이 홈페이지를 보니 현재 일반에 공개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1947년의 스트라빈스키는 이 18세기 영국 풍속 판화작가가 만든 연작을 보고 나서 특별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그는 마침내 스승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부끄럽지 않을 풀타임 오페라를 만든 것이다. 내가 과도하게 미술 얘기로 빠졌다고 생각할지 모를 독자에게 진짜 미술에서 탄생한 스트라빈스키의 작품 얘기를 소개한다.
호가스의 판화는 18세기에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존 게이라는 작곡가가 연작 판화를 가지고 <거지 오페라>라는 작품으로 만들기도 했다. 게이의 작품은 헨델의 오페라를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만들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결국 헨델은 제작비가 많이 드는 이탈리아 오페라 양식을 버리고 좀 더 간결한 오라토리오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나는 모스크바의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서 또다시 애꿎은 무릎을 쳤다. 파벨 페도토프(1815-1852)는 ‘러시아의 호가스’라고 불렸다. 호가스가 근대 영국 사회를 신랄한 풍자의 눈으로 보았던 것처럼 페도토프도 러시아 사회가 겪는 부조리를 예리하게 포착했다. 대개가 돈에 팔린 결혼을 비판하는 것이다. 늙은 부자가 젊은 처녀를 아내로 들이는 당대의 관행을 꼬집었다.
스트라빈스키는 시카고의 호가스 판화로부터 어린 시절 러시아에서 보았던 페도토프의 그림을 떠올렸을 것이다. 뜻밖의 유산을 상속받은 주인공 톰 레이크웰이 재산을 감당하지 못하고 몰락하는 과정과 그를 애처롭게 기다리는 앤 트루러브의 이야기, <난봉꾼의 행각>은 결국 스트라빈스키의 러시아 추억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봄의 제전>의 연장선상에 <결혼>이 있고, <시편 교향곡>과 <오이디푸스 왕>의 음악이 썩 다르지 않은 것처럼, <난봉꾼의 행각>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왔다고 해도 30년 전 <병사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바로 스트라빈스키의 곡임을 알아차릴 스타일이다. 이것이 곧 신고전주의의 맛이기도 하다.
바이엘러 미술관에서 본 클레 특별전에 대한 얘기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제대로 하려면 또 내가 땅따먹기 하는 농부 바홈처럼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후 출발 전까지는 아직도 몇 시간 남았다. 바젤의 첫날, 시간이 아쉬웠던 바젤 미술관으로 다시 향했다. 샤갈 특별전을 둘러보며 다시금 그가 스토리텔링의 대가임을 확인한다.
1911년에 그린 <결혼> 속에 보이는 콧수염 난 신랑은 댜길레프를 닮았다. <페트루시카>가 나온 해이다.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장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결혼 행렬은 사육제 장터처럼 왁자지껄하다. 바이올린 악사는 지붕 위로 올라가 ‘해가 뜨고 해가 지고Sunrise, sunset’를 연주할 것만 같다. 맨 왼쪽 물지게를 진 사람은 누구일까? 물이 아니라 신부의 아버지 테브예가 배달하는 우유일지 모르겠다. 결혼식날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그림이 여러 시점을 중첩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붉은 옷을 입은 부자는 얼굴이 녹색이 될 정도로 기분이 언짢다. 푸줏간을 하는 라자르 울프는 젊은 신부를 가난한 재봉사에게 빼앗긴 책임이 녹색 옷을 입은 노파가 중매쟁이 옌테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지하 통로로 연결된 신관 길목에서 20세기 후반의 미술들을 본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프랭크 스텔라이다. ‘셰이프트 캔버스Shaped canvas’, 곧 모양 캔버스라는 개념을 주창해 회화가 제아무리 원근법이나 명암법을 동원해 3차원 이상을 그리려고 해 봐야, 그 결과는 2차원 평면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여준 사람이다. 그러나 거창한 미술 이론을 따지기 앞서 나에게는 벽면을 가득 채운 거대한 대칭형 도형이 마치 브로니슬라바 니진스카가 안무한 스트라빈스키 <결혼>의 설계도처럼 보였다. 로잔 대성당 장미창을 가지고 만든 베자르의 <합창 교향곡> 플로어나 반 클리프 앤 아펠의 세팅을 보고 만든 발란신의 <보석>처럼 말이다.
아니 이번에는 스텔라가 발레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는 사이 기차 시간이 가까워 온다. 바젤에 와서 여러 도시를 왔다 갔다 했지만 늘 스위스 기차(SBB)를 이용했다. 독일 쪽으로 가려면 바젤 바트 역(Basel Badischer Bahnhof)으로 가야 한다. 하마터면 차를 놓쳐 한 시간을 지체할 뻔했다. 어느덧 폭풍우가 물러간 모양이다. 차창 밖으로 흐르는 라인강에 햇살이 비친다. 라인강을 따라 스위스와 독일의 국경을 넘나드는 것이 흥미롭다. 바트 제킹겐이라는 표지가 보인다.
이 도시에는 ‘제킹겐의 나팔수’라는 민담이 전한다. 현지 시인 여럿이 글을 썼고, 그것이 연극으로 또 오페라로 거듭났다. 그 가운데 기억할 만한 것은 구스타프 말러가 쓴 부수음악일 것이다. 말러는 <제킹겐의 나팔수>에 썼던 음악을 자신의 첫 교향곡에 포함했다.
‘블루미네Blumine’라고 불렀던 이 곡은 초연 뒤에 빠졌다가 뒤에 다시 발견되어 종종 교향곡과 함께 또는 따로 연주된다. 최고의 말러 지휘자들은 대개가 스트라빈스키의 추종자이기도 하다. 레너드 번스타인, 피에르 불레즈, 클라우디오 아바도, 리카르도 샤이, 마이클 틸슨 토머스, 그 뒤로도 한참이다. ‘블루미네’의 시작을 여는 트럼펫 소리는 확실히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시카>에 나오는 유명한 트럼펫 솔로와는 다른 세상에 있다.
<블루미네>와 <페트루시카>가 작곡된 약 25년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그 이질감은 줄지 않는다. 일랴 레핀과 구스타프 클림트 정도의 차이보다도 훨씬 더 멀게 느껴진다.
열차가 도착했어야 할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샤프하우젠이 아니다. 열차 출입문에 선 독일 아주머니가 나에게 묻는다. 무슨 일이냐고? 내가 묻고 싶다. 이 또한 지난밤부터 아침까지 유럽을 강타한 폭풍우 엘리노어의 영향 때문임을 나중에 알았고, 그 여파는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일정이 바뀌는 바람에 몇 시간 빨리 도착한 나를 마중하러 한 한국 할머니가 달려오신다. 집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