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작은 아씨들』 속의 음악 (1)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 『작은 아씨들』은 어릴 때부터 탐독했고, 영화화될 때마다 지켜본 작품이다. 나 자신이 이제는 네 자매 또래의 자녀를 두었을 나이가 되었고, 머지않아 소설 속 노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터이다. 2019년에 나온 최신 할리우드 영화는 그간 나왔던 전작들의 성과를 뛰어넘는 탁월한 것이었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17년에 영국 BBC가 만든 미니시리즈도 철저한 시대 고증을 거친 수작이었다.
영화 덕분에 지난해 국내에도 새 번역이 앞을 다퉈 나왔다. 그러나 원작의 문장이 워낙 평이해 딱히 바로잡을 오역은 없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대신 출판사들은 여권 신장과 시대 변화를 반영해 많은 표현을 바꿨다는 식으로 새 번역을 포장했다. 그러나 ‘아씨들’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제목을 버린 신간이 하나도 없음을 보면 그 또한 말 잔치로 보인다.
나는 1989년 일레인 쇼월터가 서문을 쓴 펭귄 클래식 문고의 우리말 번역(2011)을 신뢰한다. 쇼월터는 소설의 창작 배경과 20세기 수용 과정을 면밀하게 해설했다. 그에 따르면 『작은 아씨들』은 오히려 현대에 와서 아동용이라 깎아내리거나 구시대 여성상을 옹호한다는 비난을 받으며, 주류 문학으로 인정받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이 글을 통해 먼저 작품의 배경과 의의를 살피고 그에 더해 소설에서 엿볼 동시대 음악 풍경을 전하고자 한다.
루이자 메이 올컷(Louisa May Alcott, 1832-1888)은 펜실베이니아의 저먼타운(현재 필라델피아로 편입)에서 태어나 매사추세츠 보스턴과 월든 호수 인근 콩코드에서 생애 대부분을 보냈다. 그녀의 아버지 에이머스 브런슨 올컷은 너새니얼 호손, 헨리 데이비드 소로 등과 함께 랠프 월도 에머슨이 주창한 초월주의 운동을 지지했다. 초월주의란 근대 세계의 후발주자인 미국이 어떻게 유럽의 종속으로부터 독립해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했다. 에머슨은 친구의 당찬 딸 루이자에게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성장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를 선물하며 자신의 희망을 그녀에게 불어넣었다.
『작은 아씨들』은 남북전쟁(1861-65) 직후인 1868년에 1부가, 이듬해에 2부가 출간되었다. 아버지가 종군한 사이에 각기 개성이 강한 네 자매가 어머니를 중심으로 꿋꿋하게 성장하는 것이 1부의 내용이라면, 2부는 자매가 결혼과 자아실현이라는 문제에 당면해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누군가에게는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또 누군가에게는 유리천장(당시에는 아직 유리는커녕 콘크리트 천장이다)을 뚫는 것이 지상과제이지만, 건강이 허약한 탓에 생존 그 자체가 목표인 자매도 있었다.
『작은 아씨들』을 가지고 음악 얘기를 한다면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공 조가 가정교사로 일하던 집에서 우연히 듣게 되는 독일인 베어 교수의 노래이리라.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 가운데 미뇽의 노래 ‘그대여 아시나요, 레몬 꽃 피는 남쪽 나라를Kennst Du das Land’을 들은 조는 벼락 맞은 것처럼 각성한다. 프란츠 슈베르트, 로베르트 슈만, 프란츠 리스트 등 어지간한 독일 낭만주의 작곡가 치고 미뇽의 노래에 곡을 붙이지 않은 이가 드물다(유명한 후고 볼프의 곡은 소설 이후에 나왔다). 여러 영화에서도 이를 꽤 비중 있는 장면으로 다루곤 하지만, 어느 것도 소설에 나온 노래를 직접 건드리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작 조가 엿듣는 장면에서 베어 교수가 부른 노래가 어느 작곡가의 곡인지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답은 소설 끝에야 나온다. 앞선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만이 그 의미를 더욱 곱씹을 수 있다. 셋째 베스를 병으로 잃은 가족이 함께 그녀를 추모한다. 막내 에이미는 죽은 언니가 가장 좋아했던 찬송가를 부르지만, 마지막 구절 ‘천국이 치유하지 못할 슬픔은 이 땅에 없다Earth hath no sorrow that heaven cannot heal’에서 목이 메어 잇지를 못한다. 아일랜드 시인 토머스 무어의 가사에 새뮤얼 웹이 곡을 쓴 이 찬송가는 <목마른 자들아 다 이리 오라Come, Ye Disconsolate>일 것이다.
조가 숙연한 분위기를 깨려고 베어 교수에게 예전에 들은 ‘미뇽의 노래’를 청한다. 올컷은 음악엔 결코 재능이 없는 조가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다음 한 문장으로 보여준다.
“그가 오페라를 통째로 부르자고 했어도 동의했을 것이다.”
그렇다! 베어 교수가 조에게 불러줬던 노래는 슈베르트나 슈만이 쓴 가곡이 아니라 오페라 아리아였다. 이를 소재로 한 오페라는 앙브루아즈 토마라는 프랑스 작곡가의 <미뇽>이다. <미뇽>은 소설이 나오기 직전인 1866년에 파리 오페라 코미크에서 초연되었으므로 매우 시의적절하다.
그렇다면 독일인 베어 교수가 ‘Connais-tu le pays?’라고 불어로 노래했을까? 괴테 원작의 배경이 독일인 탓에 토마의 <미뇽>도 곧바로 바이마르, 빈, 베를린에 독일어로 소개되었다. 베어 교수는 독일어로 불렀을 것이다.
조는 베어 교수가 마지막 구절, “그곳으로 그곳으로, 함께 가고 지고”를 부를 때 한껏 고무되어 공을 들이는 것을 알았다. 원래 미뇽에게는 따뜻한 남쪽 나라가 이탈리아였고, 베어에겐 떠나온 조국 독일이었지만, 조에겐 언젠가 찾아올 희망의 나라를 뜻했을 것이다. 바로 에머슨과 올컷 등이 꿈꿨던 신대륙의 유토피아인 것이다. 베스가 생전에 찾았던 모든 슬픔을 치유할 수 있는 땅과 미뇽이 바란 레몬 꽃 피는 나라는 같은 곳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