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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Nov 19. 2018

1. 비올라 다모레와 프라이징

비올라 다모레와 프라이징

토마스 만(1875-1955)의 장편소설 『파우스트 박사Doktor Faustus』는 작가 만년의 노작이다. 작가는 악마와 영혼을 놓고 벌인 내기라는 전설을 한 천재 작곡가의 삶에 끌어 들인다. 그는 당대의 쇤베르크 또는 스트라빈스키일 수도 있고, 또는 창작의 고뇌를 지고 살았던 예술가 모두일 수도 있다. 이 연재를 통해 작가가 행간에 녹인 음악을 끌어내, 예술가의 사회적인 책임에 대한 생생한 고백을 풀어가 본다.


제1장: 아드리안 레버퀸에 대해 쓰다


소설의 화자는 그리스 고전을 연구한 인문학자 세레누스 차이트블롬(Serenus Zeitblom)이다. 그는 뮌헨 인근의 프라이징(Freising)에서 1943년 5월 23일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2년 전 불꽃같은 삶을 마감한 자신의 친구이자, 천재적인 음악가 아드리안 레버퀸(Adrian Leverkühn)의 첫 번째 전기를 쓰며 만감이 교차한다.


아드리안의 소꿉친구인 세레누스 또한 음악에 조예가 깊다. 그는 비올라 다모레(Viola d’amore)를 연주할 줄 안다. ‘사랑의 비올라’라고 번역할 수 있을 이 고악기에 대한 토마스 만의 언급은 많은 점을 암시한다. 비올라 다모레는 가운데 음역을 연주하는 악기로, 세레누스의 품성이 중용을 지향함을 예고한다. 바로크 시대부터 점차 비올라에게 자리를 내주며 설 자리를 잃은 이 악기가 가장 요긴하게 사용되는 음악 가운데 하나는 바흐의 <요한 수난곡>이다.

바흐: 요한 수난곡 - '피에 얼룩진 그분의 등이 얼마나 하늘 같은지 상상해 보세요'

뿐만 아니라 토마스 만이 이 소설을 쓰는 데 가장 큰 영감을 준 당대 작곡가 한스 피츠너와 파울 힌데미트에게도 비올라(다 모레)는 중요한 악기이다. 피츠너의 오페라 <팔레스트리나>나 힌데미트의 오페라 <카르디야크>와 <화가 마티스>에서 비올라는 언제나 주인공의 내면을 대변하는 악기이다. 힌데미트 자신은 뛰어난 비올리스트였으며, 그는 비올라 다모레를 위한 곡을 특히 여럿 남겼다.

군터 토이펠이 연주한 힌데미트의 비올라 다모레 작품집 가운데 소나타. 토이펠은 독일말로 '악마'이다.

비올라 다모레는 토마스 만의 막내아들 미하엘 만(Michael Mann)의 악기이기도 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주자로 활동할 정도의 전문 연주자였지만, 뒤에 하바드와 버클리에서 독일문학을 강의한다.

로만 민츠가 연주하는 비올라 다모레 소나타, 발군이다

비올라 다모레에 대해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은 이 악기의 속성이다. 여섯 내지 일곱 개의 현을 가진 이 악기는 같은 수의 공명현을 동반한다. 활로 그은 현이 쌍을 이루는 현을 울려 묘한 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종속 관계’는 세레누스와 아드리안이라는 두 주인공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상징한다.

비올라 다모레에 대해

단순히 비올라 다모레를 연주할 줄 아는 것 말고도 세레누스는 작곡가 아드리안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사랑의 헛수고Love’s Labour’s Lost』를 가지고 오페레타를 쓸 때 대본을 써주었고, 오페라 모음곡 <로마인 이야기Gesta Romanorum>와 오라토리오 <요한 묵시록Offenbarung S. Johannis des Theologen>의 가사 작업도 도왔다.


인문주의자를 자처하는 세레누스는 일면 악마와 결탁했던 친구의 천재성을 떠올리며 잠시 거리를 둔다. 자신이, 사랑했던 그로부터 가장 신뢰받은 친구라는 사실이 이 글을 써야한다는 책임감을 부추기긴 했지만, 그 또한 객관적으로 볼 때 친구에 대한 ‘짝사랑’에 불과했다. 돌이켜 생각건대 아드리안은 ‘냉기’가 감도는 친구로, 누구에게도 마음을 활짝 열지 않은 철저히 고독한 존재였다.

프라이징의 바이엔슈테판 수도원

뮌헨 공항 인근의 프라이징은 예로부터 가톨릭 전통이 강한 바이에른의 종교 중심지였다. 바이엔슈테판 언덕의 수도원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 양조장을 운영했던 곳이다. 토마스 만은 이곳 프라이징에서 태어난 요제프 알로이지우스 라칭거가 뒷날 독일 출신의 첫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될 줄 알았을까? 그는 그만큼 강렬한 가톨릭의 기운 속에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래야만 했다.

바이엔슈테판을 마실 때마다 파우스트 박사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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