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잡초가 아니다
너는 잡초가 아니다
전주 식물원에 가면 잡초 동산이 있다. 잡초만 모아 놓은 곳이며, 잡초에게도 이름이 고이 붙여져 있다. 그곳을 돌면서 아하, 네가 바로 괭이밥이로구나. 등등..... 그땐 푯말을 보면서 한 번씩 잡초 이름을 불러 주었건만 괭이밥, 여뀌 등 원래 알았던 식물들 말고는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여름 정원에서 물 주기, 잡초뽑기와 잔디 깎기가 나의 주된 일이다.
어떤 것이 잡초인지 몰라서 처음엔 애를 먹었다. 제니퍼와 줄리아에게 "이건 꽃이지?"하고 물어보니, "아니, 잡초야!"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해서 그 후로 열심히 뽑아낸 것도 있다. 꼭 국화같이 보여서 그대로 두었던 것이었다.
지난해에는 열심히 뽑았는데 알고 보니 보라색 국화였다. 다행히도 몇 뿌리가 남아서 예쁜 보라로 피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여전히 잘 모르는 것 투성이다. 잡초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심은 적도 없는데 아무 데나 마구 무성하게 자라는 것들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들은 잡초에 해당한다. 뽑아도 또 나며 조금의 공간만 있어도 잘 자란다. 잡초도 나름 몸에 보가 되는 역할을 하는 것을 이웃 브런치 작가님(@강효정 님)의 글을 통해 알았다.
하지만 나의 정원에서 잡초는 여전히 불청객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잡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 질기디 질긴 생명력이야 본받고 싶지만 적재적소에 필요한 사람이라면 좋을 것 같다. '너는 잡초가 아니야.'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정원에서 꼭 아웃당해야 하는 잡초의 운명이 참으로 안쓰럽다고 느낀 적도 있다. 그러나 오늘도 나는 잡초를 뽑고 있다.
잔디
자주 보는 얼굴은 뭐가 달라져도 잘 몰라본다. 그런데 <루씨의 아침> 마당의 잔디는 매일 보는데도 하룻밤 사이에 키가 몇 센티나 자란 것이 확연히 보인다.
이발을 해 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 직장에서 퇴근하자마자 옷을 갈아 입고 부지런히 잔디를 깎는다. 잔디는 뽑아내야 할 잡초가 아니다. 그러니 정성을 들여 잔디를 손질해 준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흐른다.
지난 포스트 '여름 나기' 편에서 이열치열의 하나로 '잔디 깎기'를 포함시키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이것이야말로 이열치열이 아니고 무엇이랴. 기온이 무려 30도를 넘는 가운데 잔디를 깎았다. 집중해서 잔디를 깎는 일은 힘들지만 의외로 재밌다. 기계로 깎으니 할 만 한데 화산석 사이는 앉아서 가위질을 해야 한다. 바로 가위질을 할 때가 하이라이트로 힘들다.
텃밭
땀 흘리며 일하다가 잔디 옆의 텃밭에서 토마토를 따 물로 헹궈 입에 넣는다. 갈증이 조금 가신다.
텃밭에는 내가 심어 자라고 있는 수박의 색이 진해지고 있다. 원래 노지수박은 당도도 떨어진다고 한다. 크기가 매우 작지만 신비롭기 그지없다. 아까워서 보기만 한다.
이번 주말에는 한번 따서 잘라봐야겠다.
땀을 흘리면서 그 와중에 정원을 한 바퀴 돌아본다. 그중 오늘 나의 눈에 쏙 들어오는 나무와 꽃들이 있다.
배롱나무
<루씨의 아침> 정원에는 두 그루의 배롱나무가 있다. 내가 키워 오던 것을 이전한 텃밭 쪽 배롱나무와 올봄에 '전주 식물병원'에서 사서 심었던 동편 화단의 배롱나무다.
정말 사연 많았던 배롱나무다. 처음에 내가 잘난척하면서 배롱나무를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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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심었던 여러 나무 중, 동편의 배롱나무 한 그루만 문제가 되었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되어도 싹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원래 배롱나무는 싹이 날 때까지 껍질이 정말 맨질맨질하다. 보통 5월~6월 경에는 싹이 나고 꽃이 귀한 7월~8월경, 이글거리는 한 여름에 정원을 장식한다.
지난 공방에서 내가 심었던 배롱나무 한 그루를 캐 와서 수돗가 텃밭에 심었다. 바로 그 배롱나무에서는 싹이 나고 꽃봉오리가 맺혔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동쪽 화단의 새로 사서 심은 배롱나무에서는 싹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애초에 싹 없는 나무를 샀던 것이니, 내 탓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공방에 놀러 온 지인들은 처음부터 '저 나무는 죽은 것 같다'라고 말해서 "아직 싹 나올 때 아니야"라고 말하기를 반복하다가 점점 확신이 사라졌다.
솔직히 싹이 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지난겨울에 죽어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물을 충분히 주지 않아서 일수도 있다. 나무의 윗부분을 모두 싹둑 자른 후, 아래 부분을 움푹 들어가게 땅을 정리해야 한단다. 그리고 한 양동이씩 흠씬 줘야 삼투압 원리에 의해서 물이 뿌리 깊이 파고든다는 것이다.
아주 이른 시기인 2월 말이나 3월 초에 심은 나무들의 경우 이렇게 물을 주는 것에 열과 성의를 다 하지 않아도 잘 자랐다. 그 때문에 막 심은 나무의 물 주기를 잘 몰랐던 탓이기도 하다. 모르겠다. 6월에 싹이 난 배롱나무를 심었어도 잘 살아서 이곳으로 함께 온 배롱나무는 지금 잘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 샀던 동편의 배롱나무는 싹이 전혀 나지 않은 맨 둥산 상태라서 물을 아주 많이 주지는 않았다. 호스가 닿지 않아서 주로 물동이를 이용해 물을 주는 곳이다.
결국 사장님께 사진 찍어 보내고 하소연했다. 나에게 시달리던 사장님께서 나무를 다시 가져오셔서 심어 주셨다. 사실 농막에도 몇 그루의 배롱나무를 심었는데, 지난겨울 너무 추워서 한두 그루가 죽었다. 때문에 나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는 것이다. 살 때 분명히 싹이 나지 않으면 다시 주신다고 하셨지만 정말 죄송한 마음이었다. 8만 원 주고 샀던 나무였다. 그것을 캐 가시고 새로 가져오셨다. 돈은 받지 않으신다 하시는데, 톡으로 3만 원만 보내드렸다. 여름날 시원한 냉면이라도 드시라고 했다.
'전주 식물병원' 사장님께서 다시 심어주신 배롱나무에 드디어 꽃이 피었다.
공방에서 이전한 배롱나무에 지난해에는 꽃이 피지 않았다. 올봄에 사장님께 여쭤보니 초봄에 가지를 싹둑(적당히) 잘라 줘야 한단다. 그래야 그 부분에서 새순과 곁가지가 나오고 꽃을 피운단다. 이번엔 그렇게 해 보니 꽃이 만발했다. 8만 원 정도 주고 샀던 배롱나무가 몇 곱절 가치가 있게 잘 자랐다.
여름 태양에도 지지 않고 푸른 잎과 예쁜 꽃을 지닌 배롱나무는 정원수이자 최근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우리 교정에도 있고, 경기전 담벼락 따라서 쭈욱 일렬로 장식하여 포토 존이다. 드라이브할 때, 구례 가는 도로에도 엄청 많다. 보라색과 흰색도 있다. 내년 봄에는 연보라 색 배롱나무를 심어야겠다.
붉은여우꼬리 풀
붉은여우꼬리 풀이 뙤약볕에서 초록과 대비되어 빨갛게 빛난다. 지난해에 심었다가 실패한 식물이다. 가장 주된 원인은 과습이었다. 정말 물 많은 것을 싫어하는 식물이다. 그래서 물이 잘 빠지는 곳에 마사토를 많이 해서 심고 돌자갈들로 빨간 털 부분을 받혀 줬다. 땅이나 물에 닿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몇 달째 아주 잘 자라고 있다. 내년에는 여우꼬리를 더 심어야겠다.
꼭 귀여운 꼬리같이 생겼다. 예쁘고 사랑스럽다. 꽃말이 '동심'이란다.
능소화
신종 능소화가 피고 지고 또 피고 있다. 역시 덩굴식물의 위력은 대단하다.
신종 능소화와 대비되는 재래종 능소화야말로 능소화의 참 매력을 발산한다. 나의 공간에는 재래종을 심지 않았는데 내년 봄이나 가을에 한 그루를 심어 볼까 생각 중이다. 궁리 중인 이유는 너무나 흐드러져서 감당하기 벅찬 점이 있기 때문이다. 신종은 색이 더 붉고 요란하지 않다. 아무래도 재래종 능소화는 타인의 담벼락에서만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민들레도 잡초라 말할 수 있습니다. 정원에 민들레가 보이면 열심히 뽑지요. 그런데 친구가 담근 민들레 김치는 정말 특별하고 맛있었습니다. 그때만큼은 민들레도 잡초가 아니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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