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31도, 우리는 함께 움직였다.

by 실비아

남편이 운행하는 우리 집 출근 셔틀은 늘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한다. 목적지는 Century park역.

승객은 둘, 아들과 나다. 우리는 그곳에서 LRT (Light Rail Transit)를 타고 대학교 역에 내려, 캠퍼스 내 각자의 공간에서 하루를 보낸다.


퇴근 셔틀은 오후 4시 45분, Century park 역에서 다시 우리를 태운다.

봄 여름 가을에는 집 근처 버스 정류장과 LRT역을 오가는 10분 남짓의 이동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눈 내리고 기온이 곤두박질치는 겨울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계절에 남편의 셔틀 서비스는 아들의 학업과 나의 돈벌이 직장생활을 지탱하는, 작지만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그런데 오늘은 예외였다. 우리 집 출근 셔틀은 이른 새벽 6시 45분, 캠퍼스까지 연장 운행되었다. 아침 8시 30분, 마지막 과목 기말고사를 앞둔 아들을 위한, 아빠의 배려였다. 우리는 운명 공동체, 나도 한 시간 일찍 사무실에 출근했다. 이런 배려에는 지난주,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웠던 날 발생했던 출근길의 아사리판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지난 목요일 아침, 기온은 영하 31도까지 떨어졌다. 체감온도는 그보다 5-7도 정도 더 낮았으니 아마 영하 40도에 가까운 "날 것의 추위"가 이곳 겨울왕국을 덮친 날이었다. 이런 날에는 바깥에서 1분만 걸어도 패딩이 꽁꽁 얼어붙고, 몇 분만 더 있으면 정말 얼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날이면 어김없이 에드먼턴의 LRT가 말썽을 부린다.


이 도시의 대중교통인 LRT는 지상과 지하를 오가며 우리의 발이 되어준다. 겨울왕국의 혹독한 날씨를 고려해 LRT는 시공되었지만, 실화인 것 같지 않은 이곳의 추위 앞에서는 신호시스템과 기계가 버텨주지 못한다. 문제는 늘 날씨가 가장 나쁜 날, 매우 춥거나 또 눈폭탄이 쏟아진 날에 찾아온다.


그날 아침, 셔틀에서 내려 Century Park LRT역 (지하가 아닌 지상역)에 걸어 들어가니 이미 엄청난 인파가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운행 지연의 신호였다. 영하 30도의 공기 속에서 15분쯤을 기다려, 슬금슬금 기어 오듯 들어오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출발역부터 열차 내부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간신히 자리를 잡고 꽁꽁 얼은 손과 발을 녹이는 중이었다. LRT는 다음 역인 Southgate 역으로 가는 동안 10번도 넘게 멈췄다. 걸어가도 이것보단 빠를 것 같았다.


그리고 열차는 Southgate역 (이곳도 지상역)에 도착했다. 이곳에도 많은 승객들이 추위 속에 덜덜 떨며 오랜 기다림 끝에 나타난 LRT에 올라타려고 안간힘을 쓰며 몸을 밀어 넣었다. 간신히 문을 닫고 열차는 South Campus역을 향해 출발했다. 여전히 멈춤과 서행은 계속됐다. 그리고 South Campus 플랫폼에 도착하자 방송이 흘러나왔다.


"South Campus역과 Belgravia역 사이 LRT 운행이 중단되었습니다. 북쪽으로 가시는 모든 승객은 하차하시고 이곳에서 버스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이 열차는 다시 Century Park역으로 돌아갑니다. 모든 승객은 이곳에서 하차하시기 바랍니다."


이게 말인지 방귀인지?!?!


승객들은 일제히 열차에서 내려 버스 승강장으로 향했다. 열차의 양 끝에 타서 버스 승강장에 먼저 도착한 승객들은 정차해 있던 University Express나 4번 버스를 잡아탔다. 그러나 어디에도 비상 대체 버스는 없었고 ETS (Edmonton Transit System) 직원도 보이지 않았다. 이 추운 날, 수백 명의 승객들은 각자도생 바로 그 자체였다.


그 사이 또 다른 열차가 platform으로 들어왔다. 버스 승강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승객들이 이번 열차는 다음 역까지 갈 수 있겠지라는 희망을 가지고 우르르~ LRT 승강장으로 몰려갔다. 아들과 나는 4번 버스 승강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기로 결정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LRT 승강장에서 방송이 들려왔다. 같은 방송이었다. 열차는 더 이상 북쪽으로 운행하지 않으니 모두 내리라는 내용이었다. 버스승강장에서 희망을 품고 LRT로 몰려간 인파와 LRT에서 새로 내린 인파는 더 큰 무리가 되어 버스승강장으로 몰려왔다. 그때 4번 버스가 천천히 버스 승강장으로 들어왔고, 버스 운전수는 눈앞에서 펼쳐진 아사리판에 무슨 상황인 줄 모르고 어리둥절했다. 아들과 나는 서로 밀고 밀리는 성난 인파 속에서, 꼭 저 버스를 타야 한다는 일념으로 버스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간신히 문을 닫은 버스는 수많은 인파를 플랫폼에 남기고 천천히 South Campus역을 떠났다. 버스를 기다리는 중 uber를 부를까 생각했는데 5분 거리 요금이 40불까지 치솟아 그냥 앱을 닫았다.


그 주와 이번 주, 캠퍼스는 기말고사 기간이다.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늦게 캠퍼스에 버스를 타고 들어서며, 그날 아들에게 시험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캠퍼스에 도착해 버스 문이 열리자마자, 총알처럼 튀어가는 학생들이 있었다. 아침 8시 30분에 시작하는 시험에 늦은 학생들의 처절한 뒷모습이었다.


같은 LRT로 출근하는 사무실 동료는 나보다 30분 늦게 도착했다.


가장 추운 날, 겨울왕국 주민들은 그렇게 완전히 버려졌다.

매달 또 매년 우리에게서 여러 명목으로 악착같이 돈을 떼어 운영되는 도시의 시스템은 정작 가장 필요한 순간에 아무도 곁에 두지 않았다. 그 아침, South Campus역에는 어느 누구 하나 우리를 돕는 이가 없었다.


각자도생.... 웃프지만 현실이다.


그래서 오늘, 마지막 기말 시험을 앞둔 아들을 위해 우리 운명공동체 세 사람은 아주 일-찍 그리고 함-께 움직였다.


아들은 지금쯤 시험을 마치고, 집에서 Uber Eats로 점심을 시켜 먹은 뒤 깊고 달콤한 잠에 빠져 있을 것이다. 남편과 나는 오후 4시 45분, 다시 Century Park역에서 만나 스윗홈으로 향할 것이다.


각자도생.... 살수록 뼈저리게 느껴진다.

지금은 남편과 아들이 나의 운명 공동체이지만, 언젠가 혼자 남겨질 그날의 각자도생은.... 정말 힘들 것 같다.


발 디딜 틈 없는 LRT내부, 아사리판은 이미 시작되었다. 추위에 중무장한 어린 학생들이 가득하다.


운 좋게 올라탄 4번 버스, 미끄러운 도로에 차사고로 인해 소방차가 길을 막고 있었다. 기말시험기간 말끔하게 하고 다니는 학생은 별로 없다. 모두들 추리닝에 떡진 머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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