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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男과 실용女 중년부부, 다시 켜진 크리스마스트리

by 실비아

영하 30도까지 떨어진다는 이번 주 날씨 예보에 겨울왕국 주민들은 벌써부터 후덜덜 몸이 떨린다. 하지만 라디오에서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럴과, 동네 곳곳에서 반짝반짝 예쁘게 불을 밝히는 장식들은 겨울왕국 주민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우리 집에도 연말이면 늘 거실 한켠에 놓인 크리스마스트리가 알록달록 불을 밝혀왔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내 게으름 때문에 그 트리는 지하실 창고 박스 안에서 찌그러진 채 겨울을 보내왔다. 사실 트리를 설치하고 장식하는 것은 번거롭지 않은데, 나중에 그 장식을 떼고 다시 트리를 정리하는 과정이 너무 번거로운 일처럼 느껴져서였다.


올해도 그냥 조용히, 아무런 장식 없이 연말을 보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지난 주말, 남성호르몬이 줄어들고 부쩍 감성적으로 변한 남편이, 여성호르몬이 줄어들고 점점 남성적인 성격이 되어가는 나에게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제안했다. 대학교 4학년 아들은 이제 거의 "남"이 되어가고 있고, 세상에 이젠 우리 둘 뿐이라는 전우애로 똘똘 뭉친 우리 부부는 둘이서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해보기로 했다.


지하실에서 무거운 트리박스를 끌어올리는 건 쉽지 않았다. 끙끙... 남편과 함께 밀고 당기며 겨우 트리 상자를 1층으로 끌어올려 3단 나무를 조립해 콘센트를 딱 꽂는 순간, 반짝반짝 알록달록 빛이 들어왔다. 상자들에 가득한 오너먼트들을 하나씩 걸고, 맨 꼭대기엔 별을 하나 올려놓으니, 꽤 그럴싸한 트리가 완성됐다. 그리고 상자에 담긴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꺼내 집안 곳곳을 장식했다.


바깥 날씨가 추운 건 그렇다 쳐도, 사실 집안도 꽤 쌀쌀하다. 난방비가 비싸서 겨울엔 집안 온도를 18도로 맞추고, 손님 올 때만 20도로 올린다. 그런 집안에 트리 불빛이 뿜어내는 따뜻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온도는 여전히 18도지만, 괜히 집 안 공기가 조금 더 포근해진 느낌이었다.


이렇게 보면, 중년의 호르몬 변화도 나쁘지만은 않다.


쌀쌀한 겨울, 집안에 크리스마스 트리와 장식이 뿜어내는 따뜻함이 온기를 더한다.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한 동네 산책길, 석양이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였다.


항상 저 자리에서 내다보며 우리 동네 수문장 역할을 하는 흰색 푸들, 귀엽고 또 귀엽다. 오늘도 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형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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