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두 달 전, 65세로 은퇴하는 내 선임 R에 대한 글을 브런치에 썼었다.
그녀는 내게 늘 든든한 울타리 같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제, R이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불쑥 내 사무실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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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움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를 꼭 안으려는 순간,
R이 말했다.
"실비아, 그쪽은 안돼. 이쪽으로 허그해. 나... 유방암 수술했어."
순간 내가 뭘 잘못 들었나 해서 다시 물었다.
사실은 정확히 들었지만 믿고 싶지 않았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R은 여전히 그 환한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말했다.
"2주 전에 수술했어. 이제 방사선 치료 들어가야 해. 은퇴하고 이틀뒤에 유방암이라는 검진 결과를 받았어."
믿기지 않아 재차 물었다.
"조직 검사 했다고?"
R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수술로 암덩어리를 떼어 냈고 지금 밴드에이지를 덕지덕지 붙여 놓은 상태라 이쪽으로는 허그를 못해"
아~ WTF!!!
입 밖으로 쏟아질 뻔한 욕을 삼키고, 눈물을 가까스로 삼켰다.
싱글맘으로 딸과 아들을 키우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R.
하지만 누구보다 순수했고,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고, 누구보다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R.
그녀는 딸과 12월 초에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여권이 만료되어 급히 갱신 서류를 준비하던 중에 캠퍼스를 방문했다고 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마음속에 이런 질문이 흘렀다.
인생은 정말 살 만할 걸까?
이런 뒤통수는 못된 인간들이나 쳐 맞아아지 왜 R에게 왜 왜?
사무실 벽에 걸어 놓은 내 그림들을 한참 바라보던 R이 말했다.
"저 그림, 참 좋다."
나는 말했다.
"R, 내가 저 그림, 너에게 주고 싶은데..."
R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너의 단 하나뿐인 작품이잖아. 내가 어떻게 그걸 가져."
그래서 나는 조용히 제안했다.
"R, 그러면 내가 저거랑 똑같은 그림을 하나 더 그릴게. 내가 그 그림 완성하면 연락할테니, 그때 우리 다시 만나자."
2년 전 붓을 놓았던 나는,
이번 주말부터 당장 붓을 잡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그녀를 위해 다시 펴는 붓끝이,
그녀의 앞길에 작은 빛이 되어 닿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