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5
지난 글에 썼듯이, 리스본 첫날 가이드 투어를 하고 이틀 후의 다른 투어까지 예약했다. 벨렘Belém 지구를 도는 코스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약속 장소인 동 페드루 4세 광장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트램을 타고 벨렘 탑Belém Tower으로 갈 예정이다. 30분 정도 먼저 도착해 맥도널드 옆에 있는 카페에서 아침을 먹는다. 아메리카노 한잔으로 모자라 에스프레소를 한잔 더 마시지만, 어째 기운이 돌아오지 않는다.
벨렘 탑을 보고 나와, 노점에서 오렌지 주스를 한잔씩 마신다. 자전거처럼 생긴 페달을 직접 밟아 믹서기를 돌려 짜 먹는 방식이다. 주스를 들이키며 포르투갈 역사 이야기를 잔뜩 듣고,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관람하고, 에그타르트가 처음 만들어진 가게에 들어간다. 파스데이스 드 벨렝(Pasteis de Belém), 벨렝의 파스데이스. 옆에 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전수받은 레시피로 만드는 에그타르트다. 하나만 주문하려는 나에게 가이드는 적어도 두 개는 시켜야 섭섭하지 않다고 한다. 일반 에그타르트에 비해 달거나 느끼한 맛이 없고 무엇인지 모를 감칠맛이 돈다. 원조다운, 절대 실망하지 않을 맛이기는 하지만, 역시 내게는 하나만 먹는 게 깔끔했을 것 같다. 특히, 그다음 코스가 타임아웃 마켓이라는 리스본의 맛집이 모여있는 유명 푸드코트라면 더더욱.
타임아웃 마켓 가게들의 각종 메뉴를 소개받고, 가이드를 가운데 두고 사진을 찍은 후 벨렘 지구의 투어는 끝이 났다. 하지만 우리는 저녁 8시 30분에 다시 만날 예정이었다. 첫째 날의 알파마 투어와 오늘의 벨렘 투어 둘을 다 하면, 야경 투어라는 2시간짜리 밤 투어가 무료였던 것이다.
타임아웃 마켓은 핫 플레이스답게 어마어마한 인파가 있었다. 우리는 역시 해물 요리를 주문했다. 이미 몇 차례 맛본 바칼라유Bacalhau와 문어요리도 다시 먹어보고 싶었다. 바칼라유는 절여서 말린 대구를 물에 다시 이틀 정도 불려서 만든 요리로 짭조름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또, 문어 요리는 짧은 시간에 데쳐 쫄깃한 식감이 드는 우리나라의 숙회와는 달리, 오랫동안 삶아서 매우 부드럽게 조리된다. 그런데 애피타이저로 먹으려고 선택한 오징어 먹물 튀김이 문제였다. SEA ME라는 퓨전 일식 가게였는데 그 안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곳이었나 보다. 20분 넘도록 줄을 서 주문을 하고, 15분 정도를 더 기다려 음식을 받았다. 식당을 빠져나올 때는 3시쯤이었다.
이제 뭐하지. 야간 투어까지는 아직 5시간 이상이 남아있었다. 오래간만에 생긴 개인 시간이었다. 잠깐 숙소에 들러 쉬고 올까 생각도 했으나,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라 포기했다. 대신 가이드 투어를 예약하기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 구경하기. 그렇다고 너무 아무 곳에나 자리를 잡는 것은 또 싫어, 거리를 조금 헤매었다.
동 페드루 4세 광장의 서쪽에 있는 캔 정어리를 파는 가게를 먼저 구경했다. 정어리를 파는 가게 치고는 너무 화려하다. 가게 이름은 O Mundo Fantástico Da Sardinha Portuguesa, 한국어로 옮기자면 ‘포르투갈 정어리의 환타스틱 월드’ 정도이다. 꼭 사탕 가게처럼 꾸며놓은 곳이다.
그 가게 오른편의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곧이어 가파른 계단길이 나온다. 그 계단을 계속 오르면 상 호케 성당Church of Sao Roque이 나오고 그대로 오른편으로 꺾어 조금 더 오르면 알칸타라 전망대Miradouro de São Pedro de Alcântara가 나온다.
내 걸음은 성당에 이르기 전에 멈췄다. 아니, 사실은 성당 근처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계단 중간중간 잠깐씩 나오는 평지에 테이블이 늘어서 있었다. 아까 올라올 때 봤던, 호객 행위를 하는-하지만 한국처럼 과하지는 않은- 중년의 웨이터에게 맥주만 한잔 할 거라고 얘기했다.
좁은 골목 계단 사이로 상 조르즈 성St. George’s Castle과 그 아래 옹기종기 모인 모라리아Mouraria 지구의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는 곳이었다. 전망대의 탁 트인 광경도 좋지만, 이런 좁은 골목은 묘한 안정감을 준다. 행인에게 계속해서 메뉴판을 드미는 웨이터마저 왠지 듬직하다.
의자에 가방을 올려두고 자리를 잡았다. 옆 테이블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담소를 나누는 관광객들과, 스케이트 보드를 들고 계단을 오르는 학생과, 조금은 피곤한 모습으로 젊잖게 호객 행위를 하는 웨이터를 바라보며,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하아…
그제야 내 몸은 비로소, 리스본에 있음을 실감했다.
표지 사진 : 맥도널드 옆 카페(Jeronymo)_ⓒK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