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나와 밀당을 하는 건지
기욤 뮈소가 쓴 소설책의 처음 몇 페이지를 넘기면서는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서려 있었다. 내용에 집중하기보다는 '내가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이 책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와 같은 잡생각들에 신경이 더 많이 쏠렸다.
하지만 어느새 책은 50페이지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건 일종의 '사건'이었다. 그림 하나 없는 글자로 가득한 책을 쉬지도 않고 단번에 그리 많이 읽어 본 적이 삶에서 없었기 때문이다.
늦깎이 독서의 시작이 좋았다.
고비를 넘기니 확실히 소설책은 읽을 만했다. 기욤 뮈소가 글을 잘 써준 덕분에 책 한 권을 어렵지 않게 완독할 수 있었다. 책을 읽어 본 역사가 없었던 내가 첫 책으로 기욤 뮈소의 소설을 집어든 건 운이 좋은 일이었다.
만약 처음부터 자기계발서나 고전 같은 책을 접했다면 재미도 없고 따분해서 금세 질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21년 만에 책 한 번 읽어보겠다고 겨우내 책 한 권을 어렵사리 펼쳤는데, 만약 끝까지 읽지 못하고 '재미없네', '역시 난 책은 안 맞아'와 같은 기억만 남았다면, 아마 오늘까지의 삶도 지금 쓰고 있는 글도 없었을 것이다.
그 후 또다시 방문한 '움직이는 도서관'에서 기욤 뮈소가 쓴 소설책은 죄다 빌려봤다. 한 4,5권쯤 됐었던 것 같다. 한동안은 그 프랑스 형님이 만들어 낸 세계관 속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았다.
그렇게 여가시간에 뭔가를 읽는 습관이 일상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소설책을 열 권 정도쯤 읽다 보니, 문득 다른 장르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소설 말고 다른 장르는 뭐가 있는지도 잘 몰랐기에 막연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뭔가 내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요즘 들어서는 소설은 알면 알수록 깊은 울림과 진한 감동이 있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물론 소설이라고 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소설은 일단 이야기가 중심이고 어떤 메시지를 독자에게 대놓고 떠먹여 주는 타입은 아니었다. 소설을 제대로 읽으려면 저자보단 독자의 역량이 더 중요한 것 같았다.
더군다나 예전의 난 소설 특유의 울림을 알아볼 만한 안목이 없었다(사실 지금도 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소설책 한 권을 읽고 나면, 영화 한 편을 조금 더 느리게 그리고 조금 더 자세히 바라본 느낌 이상은 얻지 못한 게 사실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움직이는 도서관'은 어김없이 초소를 방문했다.
결심이 확고하진 않았지만, 소설책도 적당히 읽어본 거 같으니 이번엔 전혀 읽어본 적 없는 유형의 책을 골라보고 싶어졌다. 소설이 아닌 것들은 제목에서부터 티가 났다. 소설책의 제목은 은유적인게 많은데 비해 다른 책들은 하나같이 주장이 뚜렷해 보였다.
첫 소설책을 집을때도 그랬듯 소설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책들 중에서도 그나마 가장 눈길이 가는 책을 집었다. 그 책의 제목도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난 기억력이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 인생의 태도와 인간관계를 다루는 책이었다.
그런 류의 책들을 '자기계발서'라고 부른다는 것은 꽤 나중에나 알게 된 사실이었다.
어쨌든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자기계발서를 읽게 되었다.
며칠 후, 난 자기계발서의 마지막 장을 덮고 있었다. 그러면서 평생 잊을 수 없는 감정이 북받치며 가슴속에서 차오르는 한 마디를 토하듯 내뱉었다.
"와, 진짜 더럽게 재미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