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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경 Sep 15. 2023

누가 기억할까, 만가의 레이꼬와 가쯔라기를

-만가를 읽으신 분 중, 한 분이라도 살아계시기를 기도드립니다...

1971년. 나는 점점 공부에 취미를 잃어갔다. 어쩐지 세상이 돈짝만 하게 보였다. 집안 형제들은 어른의 보살핌 없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랐다. 그들도 급속한 집안의 변화에 어리둥절한 채 잡초처럼 커가는 중이었다.

2학년 담임을 맡은 남선생은 사십 대 중반 정도 되는 역사 선생이었다. 아버지 또래였다. 평양 사투리를 쓰는데 아주 구수했다. 그는 극우적인 당시의 역사관에 대하여 은근한 의사표시를 할 줄 알았다. 이른바 의식이 있는 선생이었던 것이다. 그가 어떻게 해서 남쪽으로 내려왔는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어떤 한(恨)이 보였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아내가 없다고 했다. 아내 없는 중년의 남자. 홀로 사는 남자. 그것을 바라보는 나에게 그것은 은근하고도 짜릿한 슬픔이 되었다. 


일본 대중소설인 만가(睌歌)에 꽂혀있던 나는 담임을 가쯔라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일기장에다 사랑하는 가쯔라기,라고 쓰면, 순간 몸 어딘가가 간질간질해지고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정부(情夫)라는 말을 흠모하다시피 한 것은. 나는 아내 없는 가쯔라기의 정부나 첩이 되고 싶었다.

睌歌는 나에게 최초로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해 준 소설이었고, 그 소설은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짐작컨대 그 소설을 읽은 어른들이 느끼는 감정을 내가 몇 배 더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소설 속의 가쯔라기를 너무도 사랑했고, 그 가쯔라기를 사랑하는 레이꼬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그는 나의 첫사랑이 되었다. 풋사랑이라고 쓰고 싶지만 그 상처와 고통은 풋사랑을 넘어선 것이어서 어쩔 수 없다. 가쯔라기는 학교 도서관을 담당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자연스레 도서위원이 되었다. 이미 학교에서 글 잘 쓴다고 이름이 나 있던 나로서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나는 학과 시간 이외에도 도서관에서 가쯔라기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방과 후, 도서관 열쇠를 들고 도서위원만 드나들 수 있는 서고에 가서 앉아있으면 어느 틈엔가 가쯔라기가 들어온다. 그는 책을 읽는 내 뒤에 조용히 서서 내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알려고 애썼다. 그에게 나는 흥미로운 관찰거리였을 것이다. 나는 내 뒤에서 나를 관찰하는 가쯔라기의 숨소리가 가까이 들려오는 그 시간을 즐겼다. 그때 행복했을 것이다. 가쯔라기가 내 어깨에 손을 대고 ‘이제 그만 가야지, 문을 닫아야겠다’라고 말할 때, 나는 그가 나의 독서를 방해하지 않기 위하여 한동안 망설였다는 것을 안다. 가쯔라끼가 서고에서 무엇인가 뒤척이고 쓸 때, 나는 일부러 가쯔라기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그의 나달한 양복 깃을 슬며시 쓰다듬기도 했다. 가쯔라기의 고독해 보이는 가슴께에 일부러 넘어져 안기고도 싶었다. 고도의 치밀한 작전 끝에 한 번 그렇게 -우연을 가장하느라 나는 얼마나 공을 들였던가- 안긴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심장이 폭발하는 줄 알았다. 사람들은 열네 살을 너무 어리게 보는 경향이 있다.


가쯔라기는 마지막까지 남아서 책을 보고 있는 나를 귀여워했다. 에밀졸라가 쓴 드레퓌스 사건이나 칸트의 실천이성비판 같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대견하긴 했을 것이다. 나는 책을 들면 웬만해서는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 습성이 있어서, 일단 끝까지 읽었다. 그것은 좋은 습관인 것 같다. 아이들이 핑크 소설이나 루팡, 홈즈의 탐정 소설에 빠져있을 때였다. 하지만 뛰어난 아이는 도처에 있었다.


당시 열몇 살 된 여학생이 쓴 소설 ‘조용한 슬픔’(아니면 안단테 칸타빌레인지도 모른다)을 읽었는데 이어령이 서문에 온갖 찬사를 다 늘어놓은 것을 보고 질투에 휩싸였던 기억이 난다. 소설은 나의 로망이었다. 꾸며낸 이야기는 매혹적으로 다가왔고, 나는 그때부터 이야기를 꾸며내기 시작한다. 문제는 꾸며낸 이야기가 현실이었다는 점이다.


어느 봄날, 나는 가쯔라기와 스물여덟 살의 기혼 여성이었던 음악선생과 서로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나는 수렁에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상상과 사실과 진실 사이를 오가며 길고 긴 줄다리기를 했다. 그 수렁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더욱 깊게 빠져들었다. 그곳에는 미묘하고도 심각한, 엄청난 삼각관계가 있었다. 나는 한국판 ‘睌歌’를 기획하고 연출하고 주연을 했던 것이다.


중학교 시절은 상복이 넘쳤다. 당시 서울대 국문과를 나온 젊은 국어선생은 나에게 열광했다. 그녀는 마치 기자회견하듯 나에게 질문했고, 나는 어깨를 꼿꼿이 세우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녀는 나를 매우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말했다. 너는 작가가 될 거다.


나는 어느새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간파했다. 이런 글을 쓰면 좋아하고, 이런 글을 쓰면 감탄하고, 이런 글을 쓰면 놀라자빠지고를 아는 이상, 글쓰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 나는 늘 상을 탔다. 한 반에 지금은 소설가가 된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도 그 요령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사이좋게 상을 나누어 탔다. 내가 일등 하면, 그 아이는 이등, 그 아이가 장원하면 내가 준 장원 하는 식이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유명해졌다.


3학년 언니가 나를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1교시, 2교시, 3교시, 수업을 마칠 때마다 언니는 나에게 분홍 편지를 주고 갔다. 그녀도 문학소녀였고, 굉장한 문장력을 가지고 있었고, 상도 곧잘 타서 학교에서는 알아주는 언니였다. 좀 불우한 환경이었고, 그녀 역시 나에게 몰두함으로 어떤 도피처를 삼았던 것 같다. 그녀는 수업 시간 내내 나에게 편지를 쓰고, 그리고 그 편지를 시간마다 배달했다. 우리 사이는 곧 소문이 났다.

S 언니,라는 말도 그때 처음 알았지만 그 언니가 나를 쳐다보던 그 형형한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그 눈빛을 보고 나는 깨달았다. 사랑은 저렇게 미치는 것이로구나...

그때 내 눈빛도 점차 그 언니처럼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은 미처 알 수 없었다.


가쯔라기는 우리 집의 갑작스러운 파산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중학교 입학할 때의 가정환경조사는 엄마를 대의원인지 육성회의인지 하는 학부모회의에 초빙할 정도였지만 겨우 일 년이 지났을 뿐인 2학년의 가정환경조사서는 거의 모든 것이 제로로 돌아간 상황이었던 것을 그는 1학년때의 담임과의 교류를 통해 알고 있었던 듯 보였다. 그는 나에게 각별하게 다정하게 대했다. 마악 사춘기가 시작된 나를 관찰한 그는 잘못하다가는 비뚤어질 수도 있겠다 싶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한없이 비뚤어지고 싶었다. 가쯔라기가 성적이 떨어졌다고 야단하면 다음 시험은 일부로라도 더 성적을 떨어뜨렸다. 공부하지 않는 방법은 간단했다. 늦도록 도서관에 남아 사강의 소설이나, 일본 단편 문학선, 아니면 펄 벅 시리즈, 세계 문학 전집을 가볍게 읽어치우면 되는 것이니까. 그 해, 도서관의 책을 몇 백 권쯤 읽었을 것이다. 열네 살, 사랑의 상처와 책의 오르가슴을 알게 된 해였다.


그 해 겨울, 나는 친구의 꼬드김에 동네 교회에 다니게 된다. 성탄절 연극을 하는데 조연에서 엑스트라 중간쯤 되는 자투리 배역을 맡게 되면서였다. 친구는 주연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또래 남학생들을 보았고, 같이 포크댄스를 추고,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면서, 도서관과는 또 다른 파라다이스를 느꼈다. 남학생과 빵집에만 같이 가도 정학을 받는 시절이었으므로 그곳은 일종의 치외법권 지역이었고, 교회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었다. 

나는 교회 활동에 깊게 빠져들었다. 교회에서도 문집을 냈는데 나는 짧은 소설을 썼다. 연애소설이었다. 교회학교 교사를 비롯한 남학생들은 나를, 글을 주시했다. 나는 서서히 그 짜릿함을 즐기기 시작했다. 나는 충분히 자랐다고 생각했고, 더 이상 세상에서 궁금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세 개의 페르소나로 분리되었다. 내 몸속에는 새로운 삼각관계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신과 사랑과 글. 열네 살은 그것을 깨닫기에 적은 나이는 아니었다. 




일본의 프랑소와 사강이라고 불린 하라다 야스코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만가>가 23년 초에 상영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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