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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꼬의 삶이라는 것

가까이서 본 비극, 멀리서 본 희극

by CAPRICORN

잉꼬와 원앙

Fact
-잉꼬는 한 번 짝을 맺으면 평생 함께하는 일부일처제 동물이다.
-짝이 죽으면 극심한 스트레스로 밥도 안 먹고 우울로 죽는 경우도 있다.
-원앙은 번식기마다 새로운 짝을 맺으며, 계절성 일부일처에 가깝다.
-수컷 원앙은 알을 낳고 나면 떠나고, 암컷 혼자서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운다.

Question
-금슬 좋다는 기준은 함께 있는 시간의 모습일까, 끝까지 함께하는 마음일까?
-우리는 원앙을 닮고 싶어 했지만, 사실은 잉꼬처럼 살아가고 싶은 게 아닐까?



[남편]


처음엔 원앙 같은 사랑이 좋았다.

사람들이 예쁘다고 말해주는 사이.

붙어 다니고, 웃고, 사진 찍는 삶.


그게 진짜인 줄 알았다.

우리가 오래갈 줄 알았다.


근데…

그건 생각보다 빨리 식었다.


사랑이 문제였던 건 아니다.

사는 게 문제였다.


일하고, 피곤하고,

말을 아끼다 보니,

서로가 점점 멀어졌다.


나는 그저 좀 쉬고 싶었는데

그 사람은 그걸 "무심하다"라고 했다.

나는 애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은 “애정이 없다”라고 느꼈다.


그 말들이

자꾸만 마음에 박혔다.

나는 그저 내 방식대로 하고 있었을 뿐인데.


도망가고 싶었다.

그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매일 ‘설명해야 하는 나 자신’에게서.


모든 감정을

말로 풀어야만 이해받는다는 게

버거웠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조금만 각자 살아볼까?”


같은 집 안에서,

조금만 떨어져서.


그 말이

그 사람을 다치게 했다는 걸

눈치챘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후, 조금씩 달라졌다.

그 사람은 더 이상 내 표정을 묻지 않았고

나는 그 사람이 뭘 생각하는지

오히려 궁금해졌다.


불은 내가 먼저 껐고,

식탁엔 두 사람 몫의 컵을 놓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내가 먼저 건넨 물을

그 사람이 잠시 들여다보는 걸 봤다.


말은 없었지만,

뭔가 닿은 느낌이었다.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아, 잉꼬는 이렇게 사는 걸까.


붙어 있지 않아도,

마음은 같은 자리에 있는 것.


오늘도

우린 나란히는 아니지만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





[아내]


처음엔 그 사람이

원앙 같아 보였다.


멋있고,

다정하고,

눈에 띄게 사랑하던 사람.


그 사람을 따라가면

내 삶도 예뻐질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예쁜 사진 속 장면일 뿐이었다.


결혼이란 건

같은 식탁에 매일 앉고,

가끔은 같은 침묵에 머무는 일.


그 사람은 점점 말이 줄었고

나는 점점 더 많이 서운해졌다.


그 사람이 피곤해 보일 땐

나도 말없이 넘기려 했다.

근데 그 사람이 웃지 않으면

그게 다 ‘내 탓인 것 같았다.’


나는 말이 많아졌고

그는 점점 더 조용해졌다.


어느 날,

그 사람이 조심스레 말했다.



“우리, 부딪히지 말고 조금 떨어져 살자.”


그 말이 참

서운했지만…

솔직히 나도 지쳐 있었다.

더는

내 마음을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조금 떨어지니 그 사람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내가 안 챙겨도

컵이 옆에 있었고,

불도 내가 말하기 전에

꺼져 있었다.


하루는

내가 그 컵을 일부러 안 꺼냈는데

그 사람이 말없이 꺼내다 놓더라.


그 사람이 나를 보고 있다는 걸,

나보다 더 조심스럽게

신경 쓰고 있다는 걸

그제야 느꼈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잉꼬는 매일 붙어 있는 게 아니라,

붙어 있으려는 마음을 가진 거구나.


그걸 늦게 알았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다.


오늘 밤도

우린 서로 말을 아끼지만

그건 도망이 아니라,

마음을 다듬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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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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