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는 왜 알을 낳는가

번식 없는 생산, 의미 없는 삶》

by CAPRICORN

FACT

닭은 수탉 없이도 무정란을 낳는다.

산란계는 연 300개 이상의 알을 낳도록 인간에 의해 개량된 품종이다.

야생 닭은 보통 연 10~15개의 알만 낳으며, 낳고 나면 스스로 품는다.

닭은 무리 내 서열을 기억하고, 최대 100개의 얼굴을 구별할 수 있다.

일정 시간이 되면 스스로 알을 낳으려는 행동을 하며, 알을 낳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깃털이 빠지는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닭의 알 생산은 자연적인 번식이 아니라, 조명, 사료, 온도 등으로 인위적으로 유도된 행위다.


QUESTION

닭은 왜 매일 같은 시간, 알을 낳고 나서 울까?

누구도 품지 않을 알을 낳는 삶은, 과연 생명이라 부를 수 있을까?

닭은 왜 기억하는 대신, 반복하게 되었을까?

그들의 몸은, 그들의 의지로 움직이고 있는 걸까?

우리는 왜 그들의 ‘낳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걸까?




어쩌다 보니, 한 닭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닭으로부터 시작된 건 말이었고, 말은 행동이 되었고, 행동은 변화가 되었다.

양계장에는 닭이 가득했다.

계속해서 알을 낳는 닭들 사이에서, 기계처럼 과거의 일을 “구전”하듯 반복해서 말하는 한 닭이 있었다.



“날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네, 모두들!
심지어 우리 조상들은 말이야… 알도 낳고 싶을 때만 낳았다고!”


닭들은 바빴다.
인공조명과 온도, 사료.
모든 것이 알을 낳기에 최적화된 공간 안에서
그들은 무정란을 하루에 하나씩 생산했다.

좁은 철망 안에 갇혀 있었기에, 그들은 바깥세상을 알지 못했고,
‘알을 낳는 몸’으로 키워졌기에, 다른 생각은 떠올릴 수조차 없었다.

오직 그 닭만이 울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들은 하루에 한 번은 알을 낳아야 했고,
알이 사라진 뒤 남는 건 허탈감과 스트레스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한 마리의 젊은 닭이 고개를 들었다.


“알을... 낳고 싶을 때만 낳았다고요? 할아범?”


그 닭은 3년째 살아 있는 개체였다.
조금 더 과거의 형질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보통 1년이면 도태되는 닭들과 달리 조금 더 오래 살아남았지만, 알을 잘 낳지 못해 폐기 직전이었다.



“3년 만에 내 말에 대답해 주는 젊은이를 만났다!!! 드디어!! 그래, 맞다네.
자넨 이상하지 않나?
우린 아무도 번식을 하지 않는데, 왜 매일 알을 낳는가?”


그 질문은 파문을 일으켰다.
닭들의 머릿속에, 처음으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왜 우리는 낳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낳는가?

기계처럼 움직이던 닭들에게 질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질문이 닿은 닭들부터 알 낳기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생산성이 떨어진 닭들을 폐기 처분했다.
처음엔 늙은 닭들만 골라냈지만, 곧 이상함을 느꼈다.

닭들의 거의 대부분이 낳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환경을 재정비하고,
질병을 의심하고,
사료를 바꾸고,


조명을 조절했지만 닭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러다이트 운동”은 포천에서 시작해
여주, 안성, 연천, 고창, 의성까지 전국의 양계장을 휩쓸었다.

인간들은 우왕좌왕했다.

연구소에서는 이 닭들을 분석했다.



깃털은 이전보다 단단했고,
피부는 더 두꺼워졌으며,
인공조명과 사료의 반응성이 현저히 낮아졌다.


알을 낳지 않겠다는 의지가, 몸에 각인된 것이다.

계란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언론은 매우 어리석게도 말할 수 없는 닭들을 비난했고, 그러다 양계장의 실태를 드러냈다.

사람들은 처음 알게 되었다.
닭은 원래 평생 40개 정도의 알을 낳는 동물이었다는 것.
하지만 인간은 닭에게 300개 이상을 강요하고 있었음을.

수백 마리가 이미 폐기된 뒤였다.


운명을 거부한 닭들은 새로운 몸으로 살아갔고,

인간은 또 다른 유전자 개량과 대체 생산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마 또 다른 러다이트는 곧 찾아올 것이다.
그다음 개체는 무엇이 될까.
그리고 그것은 생각보다 먼 미래가 아닐 것이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23화땅을 울리는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