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사 『청혼 : 너를 위해서라면 일요일엔 일을 하지 않겠어』를 읽고.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언제나 고민하는 건 이런 거다.
"내 사랑이 언제, 어디에서 올까?"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목을 빼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기'를 반복한다.
정말 성실하고 열심히.
세상의 많은 부분은 물리 법칙을 공유한다.
사랑도 그렇다.
작용이 없이는 반작용도 없고, 적도에 사는 한 마리 나비의 날갯짓이 남태평양 섬을 휩쓰는 태풍이 될 수 있다.
이 책의 뒤표지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연애는 사고가 아니라 여행이다.
'사고'가 충돌 따위를 말하는 사고인지, 생각하는 사고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이 책 속 내용으로 추측해보면 후자의 사고일 거다. 그러니까 연애는 생각으로만 이루어지는 정적인 게 아니라 움직이는, 움직여야 하는 것이라는 말이 아닐까.
전에 어떤 책인가를 읽고 이런 제목을 붙였었다.
사랑은 소유가 아닌 사유다.
'사랑과 연애를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는가?'하는 물음에 이제는 '아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한때는 사랑과 연애가 같은 것을 다르게 말한 것이거나, 다만 단계가 다를 뿐 목적지는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전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랑과 연애는 다르다.
사랑하면 소유하거나 소유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생각', '사고'다.
닫히거나 갇히게 되면 누구나 갑갑함을 느끼게 되고, 그 관계는 더 이상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하게 될 텐데, 연애에도 사랑에도 도움이 될 리 없다.
'사유'라고 적었던 건, 그 사람을 생각하고, 그 사람을 위한 것을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이해를 넓혀나가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서로를 사유하지 않는 연인, 사유가 없는 사랑도 때로는 멋질 수 있다는 걸 안다. '미친 사랑'은 분명 매력적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미친 사랑이라고 해도 서로에 대한 사유와 이해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어느 것에 더 무게를 싣는가의 문제인 거다.
이 책을 지은 오기사의 사랑이 연애처럼 여전히 여행이라면, 그 여행은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닌 둘이 함께 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어떤 의미에서 연애는 혼자 하다 혼자 끝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랑은 그렇게 오지도 않고, 그렇게 끝나지도 않는다. 함께 하며 서로를 느끼고 생각하는 시간, 그것 자체가 사랑일 테니까.
책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다.
책을 지은 이 '오기사'는 건축가이면서 영어 책을 쓰기도 했고, 그림도 잘 그리는, 그런데 일이 사람보다 중요했던 지독한 워커홀릭이었다. 그랬던 오기사가 이런 책을, 오직 사랑을 말하기 위해 쓰고 그린 그 사람만을 위한 책을 쓰게 만든 건 '사랑'이다.
나중에 오기사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내가 지은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은 당신과의 사랑입니다."
너무 닭살일까?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보고 있으면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게 될 테니까.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서로의 호감을 어떻게 알아차리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오기사는 그 여자에게 푹 빠져버렸고, 어디에 가든 함께 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짧은 시를 지어 보내는 일이었다. 그 여자의 마음을 위로하고, 힘이 되고, 웃게 하고,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많은 연애가 자신이 잘 못하는 것을 고치는 과정을 통해 시작되고 진행된다. 오기사는 자기가 잘하는 걸로 시작한다. 연애를 잘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필사적이었다는 느낌을 받은 건 나 혼자였을까.
그렇게 필사적으로 오기사는 그 여자를 향한 사랑을 자꾸만 드러내고 보여주려 한다.
건축을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음을 지어서 보여주는 것이 최고의 표현 방법이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실전 연애 상담서가 아니기에 이 책은 사실 연애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방법에서는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 그 사람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아마도' 세상에 유일한 것, 그것을 통해 시작하면 되는 거다.
받아들여지거나 거절되거나 그건 지금 생각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오기사의 그 사람을 향한 커다란 마음이 가장 잘 드러나는 건 제목이다.
워커홀릭이 일을 포기하겠다고 하는 말, 다만 '너를 위해서'말이다.
오기사를 모르는 사람은 '그게 뭐야'라고 하겠지만, 오기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깜짝 놀랄 일이다.
우스개로 말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이렇게 적었다.
"너를 위해서라면 일요일엔 책을 읽지 않겠어."
책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네가 더 소중하다는 의미로.
누군가는 이렇게 조언하기도 했다.
"함께 읽으면 되잖아."
그것도 좋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니까.
오기사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에게 약속했다.
언젠가 이 모든 것이 실현되는 날이 실제로 올 때,
혹은 삶의 과정에서 일부라도 구현할 수 있는 순간을 맞는다면
재료 자체만으로 그녀를 드러내는
그녀의 이름을 딴 공간을 꼭 만들어주겠다고 말이다.
오직 '그녀'를 위해, 그녀로 된 그녀의 공간을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
건축을 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고백 아닐까.
그런 능력이 없는 나는 다만 '너'를 생각하며 글을 쓸 뿐이다.
'너'에게서 얻은 힌트로 된 이야기를 지어볼 뿐이다.
남의 고백록을 들춰보는 일이 부끄럽지 않았던 건 그의 사랑 이야기에서 생략됐을 무수한 머뭇거림과 망설임, 두려움과 아쉬움을 함께 봤기 때문이다. 훔쳐보는 것이 아닌 응원하는 일.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런 기분이었다. 누구를 향한 응원인지 몰라도 응원하고 싶은.
오기사는 이야기 속 그녀와 결혼해 잘 살고 있는 모양이다.
아직까지는 그녀의 이름을 딴 공간을 만들지 않은 것 같기도 한데, 이루어지겠지.
연애 기술이나 기교를 말하지 않고, 우직하게 마음을 그려 담아낸, 이런 책도 가끔은 나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