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자기 숨을 쉰다
몸이 붓는 것 같다던 아내가 고민 끝에 시작한 건 마사지다. 이유야 많겠지만 결국 순환이 잘 안 되는 몸을 사람의 손길로 풀어주는 방법을 선택한 거다. 잔소리꾼인 나는 "그게 다 운동 부족이라니까"하며 운동이 우선이라는 얘기만 자꾸 했는데 아내는 "당신도 운동 안 하잖아"라는 반박 불가의 사실로 입을 막았다.
"읍! 읍읍!! 으으읍!!!!"
'마사지는 일시적이지 근본적으로 개선시켜주지 못한다고! 운동, 특히 근력 운동을 좀 하는 게 어때?' 할 말은 많지만 속으로 꾹 삼킨다.
다행히 숨은 막히지 않았다.
겨울이면 찾아와서 숨을 막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추위고 둘은 미세먼지다.
(제민천 오리는 텃새)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일이 드물어서 자주 경험하지는 않지만 갑자기 추워진 날 문을 열고 나가 첫 숨을 들이쉬다 갑자기 폐 안으로 들어오는 찬 공기에 깜짝 놀라서 잠시 숨을 멈추고 생각하는 거다.
마스크를 쓸까,
목도리를 두를까,
그것도 아니면 콧속을 지나는 동안 찬 공기가 조금은 데워질 수 있게 천천히 숨 쉴까.
습관대로 많은 걸 떠올리지만 찬 공기 속에 머무는 동안 금세 익숙해진다. 대책을 세우지 않아도 칼바람 앞에서도 숨 쉴 만해지고 주춤하던 호흡도 평소처럼 돌아온다.
미세먼지는 사정이 좀 다르다. 어른이야 어떻든 그런가 보다 하면서도 날씨가 맑아 공기도 맑은 줄 알고 아이와 산책을 신나게 하다가 문득 미세먼지가 매우 나쁨이란 걸 알게 되면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마스크 어딨느냐, 이런 날에 산책을 하다니 잘못됐다며 자책 섞인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미세먼지보다 호들갑에 더 숨이 막히는 거다.
겨울엔 추운 게 당연하고, 미세 먼지야 하루 이틀 이야기가 아닌데도 그렇다.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아도 되는 일로 마음을 옥죈다. 몸에는 어떨지 몰라도 마음에 어느 쪽이 더 나은지 사람들에게 물으면 대답은 거의 같을 것이다. 한숨 나쁜 공기를 들이쉬는 편이 마음 다치는 일보다 나은 것이다.
추위와 나쁜 공기는 몸을 더 움츠리게 한다. 운동이나 바깥 활동을 할 수 없는 정당한 이유가 되는 거다. 그러면 몸은 더 굳고, 붓고, 약해진다. 그 약해진 틈을 비집고 감기나 호흡기질환이 찾아오기도 한다. 겨울의 계절 인사로 '숨 잘 쉬세요'를 채택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언제 어디에서든 몸을 활기차게 해주는 잘 쉬는 숨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몸이 약해지면 병이 드는 것처럼 마음이 약한 날에 더 쉽게 놀란다. 어린 시절 별 것 아닌 소리나 인기척에 놀라면 부모님은 '기가 허해서 그렇다'며 보약을 지어주셨다. 이게 다 무슨 소린가 싶은데 보약을 먹고 나면 또 담담해져서 좀처럼 놀라지 않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이게 되네'하는 실감에 여러 번 놀랐다.
좀 잘 놀라는 게 보약을 먹을 일인가 싶은데 침착하고 담담할 수 있으면 실수가 줄었다. 무던해지면 다툴 일이 줄었다. 몸을 보하고 기를 채웠더니 더 나은 사람이 됐다. 여러모로.
보약과 마사지는 운동이나 습관의 변화처럼 근본적인 해결이 되어주지는 못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근본적이지 않다고 쓸모없지도 않다. 나중의 좋은 사람도 지금의 좋은 기분, 더 나은 마음이 있어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하고 싶은 바르고 옳은 말이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다는 말에 최근에야 조금 공감하게 됐다.
'그 사람을 위한다면 지금 좀 불쾌하더라도 옳은 말을 해야 한다'라고 오래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런 말을 계속할수록 사람은 변하지 않고 서로 마음만 상해서 관계만 나빠졌다. 나는 상대를 나쁘다고 생각하게 되고, 상대는 나를 나쁘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를 위해' 하기 싫지만 '내가 한다'는 마음은 희생도 무엇도 아닌 게 되었다. 그저 공감하지 못하는, 숨 막히게 하는 사람일 뿐인 것이다.
심혈관이 약한 사람은 찬 공기가 치명적일 수 있고 호흡기가 예민한 사람에게 미세 먼지는 만병의 근원일 수 있다는 사실은 본인이 가장 잘 안다. 주변에서 걱정해서거나, 누구를 위해서 불필요한 잔소리를 더해주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숨이 차 하면 잠시 곁에서 기다려주고 마스크를 잊어버렸다면 가만히 챙겨주면 충분한 것이다. 별 것 아닌 일에 깜짝 놀라듯 수선 떨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그 수선 때문에 놀라기도 할 테니 말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익숙한 것에는 놀라지 않는다.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들이려면 마음이 불편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이 숨을 쉬고 있다는 걸 의식하지 않는다면 편하게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숨이 이상하다거나 불편하다거나 막힌다거나 멎는다는 느낌이 있다면 불편한 것이다. 불편하면 무엇이 불편한지 살펴서 피하거나 익숙해지기 위해 시간과 마음을 들이면 된다. 숨 쉬는 게 이렇게 쉽다.
말하기 쉽고 쓰기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한 번의 자연스러운 숨을 위해 우리 몸이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하면 이렇게 쉽게 숨 쉴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는다. '숨 쉬듯 천천히'를 쓰며 처음으로 숨 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됐다. 나의 숨을 생각하지 않으므로 다른 사람의 숨도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도 알았다. 변명할 말은 많지만 미안한 일이다.
모두가 자기 숨을 쉰다.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공기도 같지 않다. 예민한 날에는 옆 사람의 숨소리에도 숨이 멎는다. 내 숨이 멎었거나 내가 숨을 멎게 했거나 그런 때가 오면 이렇게 얘기해야겠다.
"미안합니다. 숨 쉬세요, 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