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전달 겸해 궁금증을 묻는다
한참 동안 소식 없이 무소식이 희소식 인양 지내고 있었구나.
할머니랑 온 집안 식구들, 건강하니 화목이 덕목인 우리 집답게 모두들 잘 지내고 있겠지?
또한 너의 하는 일에서도 항상 즐겁고 건강하니 유쾌한 생활이겠지? 시몬아, 파이팅!이다.
아마 오늘은 집안 식구들 모두가 막내의 면회나 뭐 그런 일로 바쁠 것이라 여기고 있다.
나도 녀석의 일에 동참하여 같이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음으로 끝낼 일이고, 그저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항상 잘 지내고 있다고 전할 수 있는 모든 식구들에게 안부 전하는 걸로 대신하자.
이번 항차는 외항에서 대기하고 있는 시간이 제법 길어 뉴캐슬과 이곳을 합하면 벌써 보름을 아무 할 일 없이 지내고 있었구나.
물론 할 일 없다는 이야기는 항해를 안 해서이지, 정박 중에 하는 배의 정비라든가 하여간 그런 일도 있어 실은 그렇게 한가한 편도 아니었단다.
한편 나의 건강 체크 상황에서 혈당치 평균 위치가 아침 식사 후 2시간에 90에서 110 사이 점심 후는 103에서 125, 저녁 후엔 122에서 138이 이따금 170 정도로 올라갈 때가 있었다.
이것은 처방전대로 약 반 알을 먹고 있을 때의 경우이고, 약을 안 먹었을 때 재어보니 아침 82, 점심 127인데 비해 저녁에 193이 되어 그 후에는 약을 안 먹어 보는 일은 하지 않고 있다.
전체적으로 저녁때가 좀 높은 편인 것은 식사와 유관한 것으로 보고 저녁 식사에 특히 조심하고 있단다.
이렇게 나의 건강을 계속 체크하며 열심히 운동도 하여 별 이상은 없이 지나지만 계속 먹어야 하는 약 중에서 재고가 떨어져 가는 품목이 있어 우리의 주치의인 노의원을 찾아야 할 것 같구나.
Pletaal 50mg짜리를 하루에 아침 식사 후와 저녁 식사 후각각 한 알씩 두 번을 먹는데 그게 이번 광양에 들어갈 때쯤이면 한 열흘 분이나 남을까 정도라 엄마가 광양 올 때 처방받은 약 사 가지고 오도록 노 의원에 다녀오라고 해라.- 너의 형이 해도 될 일이긴 하다.
그때 한 가지 더 의사에게 이야기하여 참고되도록 할 것은 의사 처방으로 당뇨약과 함께 하루에 한 번 먹게 처방해 준고혈압 약인 흰 알약 한 알을 지금껏 먹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 그 약 이름은 노의원의 처방전 메모지를 냉장고 옆면 붙임판에 끼워 두었으니 찾아서 참조하렴.)
왜 안 먹었느냐 하면 이 배에 다시 승선한 지난 1월 14일부터 아침 점심 저녁 나눠서 세 번 이상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혈압 체크를 하여 최소(확장기)가 70에서 꼭 한 번 92 된 적이 있고, 계속 77에서 85 사이를 유지하였으며, 최대(수축기)는 115에서 한번 158을 한 적이 있지만 계속 120에서 135 사이를 유지하고 있어서 내 혈압이 정상이라 믿어 먹지 않게 된 것이다. 지금도 계속 체크하고 있단다.
의사의 처방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게 열심히 체크해서 혈압에 별 이상을 발견 못하였다고 느끼니 약을 먹기가 사실 싫더구나. 그 점을 꼭 말씀드려서 처방에 도움을 받도록 하여라.
발가락의 이상 감각은 별로 나아지는 경향이 아니고 오히려 조금씩 더해 가는 느낌이지만 그것 때문에 걱정이나 고민을 하는 정도는 아니며 위에서 먼저 이야기한 Pletaal이란 약이 그 부분을 위해 처방된 약으로 알고 있다. 노의원을 찾는 것은 이 편지를 받고 곧 가서 충분한 이야기를 하여 나에게 보충으로 묻고 싶은 것이라든지 알고 싶은 사항이 있다면 연락을 해주길 바란다.
아침 새벽에 하는 걷기 운동은 하루 만보 이상을 빼먹지 않고 하고 있으며, 음식의 섭취도 의식적으로 적게 먹고 있어 몸이 한결 가뿐한 느낌으로 몸무게도 84kg을 넘지 않고 있다.
엄마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몰라도 이제 나도 정년을 생각해야 할 시점에 와 있는 것 같다.
마음이야 아직도 한참이건만, 세상 사람들이 언젠가 자기도 그렇게 될 터인데 당장 먹은 나이만을 가지고 따지는 세대가 되어서일까? 어느새 나도 모르게 먹은 내 나이도 그런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된 세월이 된 모양이다.
너희들은 어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이 아비를 배만 타던 사람으로 세상 물정도 제대로 파악 못하는 좀은 무력하고 뭐 그런 부류로 무조건 갈라놓지는 말거라.
단지 너희들이 자신의 일에서 앞가림을 충분히 하고 남 앞서 나갈 수 있는 위치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면 하는 걱정이 오히려 내가 너희를 두고 하는 생각이란다.
그런 생각도 부질없는 걱정을 위한 걱정이라고 치부하며, 모든 걸 긍정적인 눈을 잣대로 삼기를 제일로 치는 생활을 앞으로 남은 세월 내내 하려고 작정을 하고 있다.
아마도 4월 20일이 넘은 날짜의 어느 날 광양에 들어가게 될 것으로 예상하며(현재로서는 4월 22일 정도임) 그때쯤이면 진짜로 꽃피고 새도 노래하는 따뜻한 계절이 되겠구나.
그러나 광양에서 우리 배에 대한 회사 내부 감사가 있어 꼼짝 못 할 것으로 여겨지니 너의 엄마가 내려와야 될 것으로 여기고 있다.
시간이 나는 대로 또 연락을 할게, 그럼 항상 건강하고, 할머니에게 아빠의 안부 빼먹지 말거라.
이제 이 자리쯤이 아빠의 백만 불이 넘는 사인을 해야 하는 자리가 되었다고 이야기할 때가 된 것 같구나.
아빠가 지금껏 배를 타면서 문서의 끝마침이 되는 자리에 서명한 것을 뜻하는 말이다.
생각해봐라 선하증권(Bill of Lading. B/L)이란 유가증권 한 장이 얼마짜리 정도 되었을까? 그런 증권을 수도 없이 내 사인으로 발행했으니 그만한 자부심은 가져도 되겠지... 그냥 해본 소리이다.
또 연락 하마.
2001년 4월 3일 호주 GLADSTONE 외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