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사회의 쓸모없는 부품이 되었다.
출산휴가가 시작되었을 때, 기뻤다. 무엇보다 임신 38주까지 근무했었기에 몸이 아주 무거웠다. 더군다나 당시에 한여름이었기에 임신 때문에 더운 몸이 더 더웠다. 출산휴가를 시작하고서는 아이를 만나고 싶어 빨리 갔으면 하고 바라던 시간이, 아이를 낳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줄어드는 휴직 기간이 서글펐다.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3개월로 아이가 5개월일 때 복직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이 출근하고 집에 덩그러니 아이와 나만 남았을 때 가끔 복직하는 나를 상상했다. 복직하면 편하게 화장실을 갈 수 있겠지? 복직하면 시간에 쫓기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겠지? 복직하면 예쁜 옷을 입고 화장을 할 수 있겠지? 어느 날은 복직하기가 싫었지만, 어느 날은 복직할 수 있다는 사실로 하루를 버텼다. 내 자리가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든든했다. 복직하면 아이와 함께하는 이 하루가 그리워지리라 생각하며 보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사회의 쓸모없는 부품이 된 기분이 들었다. 복직하더라도 더는 업무를 처리하지 못할 것 같았다. 매일 하던 엑셀의 단축키도, 한글의 매크로 하는 법도 생각나질 않았다. 회사 프로그램의 사용법도 전혀 기억나질 않았다. 복직해서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복직 후가 두려워졌다. 몇 개월 일하지 않았다고 고물이 된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육아휴직 중 지역이동으로 퇴사를 하게 되었다. 아이의 어린이집 문제로 고민을 하던 터라 다행이라고 생각되었지만, 더는 나를 기다려주는 회사가 없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로 고장이 나버린 톱니바퀴가 되어 사회라는 기계에서 탈락한 느낌이었다. 몇 년 동안 일한 짧은 경력도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마음이 심란할 때면 채용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그저 집에만 있는 여자
회사를 나오니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다. 그게 가장 괴로웠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매일 비슷하게 흘러갔고, 해야 할 일이 많고 번거로웠지만 아무도 내가 하는 일에 칭찬을 해주지 않았다. 나는 칭찬이 고팠다. 꼭 칭찬이 아니더라도 어떤 보상이 필요했다. 매달 같은 날에 들어오던 월급이라는 보상이, 상사의 칭찬이 그리웠다. 나는 육아의 굴레 속에서 어떤 성취도 느낄 수 없었다. 아이의 비위를 맞춰주는 무보수 노예가 된 느낌이었다.
나는 일하는 여자가 부러웠다. 워킹맘이 대단하고 멋져 보였다. 그러면서도 내가 재취업을 하는 상상을 하면 도망치고 싶었다. 일하다가 아이가 아프면 연차를 계속 쓸 수 있을까? 아이가 너무 오랜 시간 어린이집에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내가 벌 수 있는 돈보다 절약하면서 사는 게 더 이득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나는 그렇게 그저 집에만 있는 여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