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어서인지, 아줌마가 되어서인지, 집에만 온종일 있어서인지 낯선 사람과의 교류가 즐겁다. 우연히 비슷한 개월 수의 아기 엄마와 친해져 연락처를 교환했다. 그녀의 프로필 사진을 보니 아가와 함께 웃고 있는 가족사진이 첫 번째 사진이다. 사진을 오른쪽으로 넘기면 예전에 올렸던 사진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넘겨볼수록 점점 아기는 어려지고 엄마는 젊어진다. 네 가족이 있다가, 첫째만 있다가, 부부 둘만 환히 웃고 있다가, 젊은 그녀 혼자 환하게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늘 보던 화장기 없는 모습이 아닌, 항상 보던 편한 옷이 아닌, 진하게 화장을 하고 화려한 옷을 입은 그녀가 있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 우리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지. 아기의 침 묻은 옷이 아니라, 꽉 끼고 조금은 불편한 레이스 원피스를 입고, 화려한 귀걸이와 목걸이, 반지를 하고, 파츠를 잔뜩 올린 네일과 페디큐어를 하고도 불편하지 않은 순간이 있었다.
나는 내 프로필 사진을 천천히 오른쪽으로 넘겨보았다. 사진 속의 나는 점점 젊어진다. 삼십 대 초반에서 이십 대 후반으로, 중반으로, 초반으로 돌아간다. 머리카락이 길었다가 짧았다가, 검은색이다가 갈색이다가 카키색이다가. 나의 젊은 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그러다 나는 한 사진에 한참 머물렀다.
에펠탑 앞에서 나는 웃고 있다.
23살, 혼자 떠난 유럽 배낭여행. 피렌체에서 산 스카프를 하고, 처음으로 사본 나이키 신발을 신고 나는 웃고 있다. 갑자기 잊었던 그 한 달여의 시간이 뭉게뭉게 떠오른다. 이십 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가던 그 시간, 대학생에서 취업준비생이 되던 길목, 몇 년 동안 모아온 돈을 아낌없이 쓰고도 아까운 줄 몰랐던, 그 시간. 개똥을 밟고서도, 기차를 놓치고 사기를 당하고도 금방 기분이 좋아지던 환상의 시간.
엄마인 내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좋은 핑계
20대의 나는 쉽게 새로운 것에 도전했다. 새로운 아르바이트, 대외활동, 복수전공, 홀로 떠난 배낭여행. 때로는 실패를 하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얻곤 했지만 실망하더라도 금방 회복했다. 소심하고 내성적이었지만 돌이켜보면 20대의 나는 많은 도전을 했다.
30대가 된 나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가 두려워졌다. 이제는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안정적이길 바라고, 실패가 두렵기에 리스크가 커보이는 일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 지금의 상황이 변하지 않기를 바랐다. 내게 변화하는 건 아이 하나로 충분하다 여겼다.
흥미로운 모임을 발견했을 때 참여하고 싶었지만 망설여졌다. 예전이었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했을 모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아이를 두고 내가 이렇게 길게 외출해도 되는 걸까? 하는 걱정이 첫 번째.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게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두 번째.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세 번째였다. 나는 오랫동안 고민하다 각종 핑계를 대며 새로운 모임에 가지 않기로 했다.
구직 사이트나 아르바이트 채용사이트를 보면서도 같은 마음이었다. 시간대가 괜찮아 보이는 일자리를 발견했다가도, 혹시나 아이가 아프면 아이는 어떻게 하지? 하는 괜한 걱정에 고개를 저었다.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보다가도 지원해도 어차피 내가 안 뽑힐 텐데 하는 생각에 사이트를 껐다. 새로 도전하기가 무서웠다. 지원했다 떨어지면 나의 쓸모없음을 다시 증명하는 길이 될 것 같았다.
엄마가 되고 나는 아이를 핑계로, 아이의 뒤에 숨었다. 세상에 나를 내보이기가 두려웠다. 아이를 낳고 나는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내게 참 좋은 핑계였다 아이를 키운다는 핑계로 해야 하는 많은 일을 놓아버리는 것을 정당화했다. 내가 일을 하지 못하는 건 다 못하는 건 다 아이를 키우는 것 때문이야, 내가 글을 쓰지 못하는 건 모두 아이를 돌보는 것 때문이야.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많은 일을 하는 엄마들이 있다는 것을. 직장을 다니고, 자격증을 따고, 공부하고, 자기계발을 하는 엄마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이를 키우는 것과 별개로 그런 에너지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엄마가 된 후 아이의 뒤에 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