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옆에 두고 할 수 있는 일은 적다. 그나마 휴대폰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순간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져 집중력이 필요한 일은 할 수 없다. 그럴 때 좋은 곳은 맘카페다. 그곳의 회원들은 모두 나와 같이 아기를 키우는 사람들이고, 필요할 때 질문하고,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다. 외로울 때도 맘카페를 부유했다. 맘카페를 보면 외로움이 조금 달래졌다. 하지만 일시적이고 일방적인 소통의 장이라는 단점이 있다.
2.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들어가다.
너무나도 외롭던 어느 날, 맘카페를 보다가 엄마들끼리 오픈채팅방을 모집하는 걸 발견했다. 주로 같은 생년, 비슷한 달, 같은 지역 등의 조건을 달고 사람을 모집했다. 나도 같은 지역의 같은 생년의 아기 엄마들이 모인 채팅방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나의 쭈뼛한 인사에 모두가 환대해주었다. 아, 이렇게 같은 아기 엄마라는 이유로 공감할 수 있고 친해질 수 있다니. 코로나가 덜하던 시절에는 몇 번 만나 놀기도 했다. 혹시나 다단계나 사이비종교 같은 사람이 있을까 봐 걱정했지만, 전혀 그런 사람이 없어 다행이었다. 단톡방 분들과 정보교류도 하고 적적할 때 수다도 떨고 만나기도 하며 좋은 육아 동지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다대다의 모임이어서 그런지 잘 만나지 못해서인지 깊은 교류는 어렵다.
3. 같은 아파트 친구를 사귀다.
아이가 100일이던 시절, 이웃집에 인사하러 가니 우연히도 몇 달 차이 안 나는 아기가 있었다. 우리는 적게는 일주일에 한 번, 많게는 두세 번도 만나고 카톡을 하며 친하게 지냈다. 그분이 없었더라면 긴 주말부부 생활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사를 하고서도 가장 원하는 건 아파트 친구였다. 산책하는 아기 엄마에게 인사를 걸까도 생각했지만 용기가 없었다. 우연히 같은 아파트에서 비슷한 개월 수의 아기 엄마를 만났다. 같은 아파트에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하고 언제든 만날 수 있으니 외로움이 덜해지는 느낌이다.
4. 취미생활을 하다.
일주일에 많아야 두 번, 적으면 한번을 하던 운동을 어느 순간 하루에 5~6번 할 정도로 빠지기도 했다. 운동하고 나니 스트레스가 풀리고 체력이 좋아져선지 아이와도 더 잘 지내게 되었다.
게임도 시작했다. 게임은 정말 마약과도 같아서 엄청나게 몰입하고, 게임을 끝낸 뒤에도 게임 생각이 나서 외로움이 싹 사라졌다. 가끔 내가 게임을 하는 게 시간을 버리는 것 같아 아쉽지만, 순간의 즐거움이 되고 하루의 활력소가 되니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책도 다시 읽고 있다. 한창때는 일주일에 세네 권씩 읽었는데, 육아를 시작하고 나서는 분기마다 한 권도 읽을까 말까 했다. 지금은 매일 짧은 분량이라도 읽으려고 노력한다. 책을 읽으면 얻을 것도 많고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
넷플릭스도 결제했다. 영상을 보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설거지하며 넷플릭스를 보니 너무 즐겁고 설거지할 때를 기다리게 된다.
이렇게 혼자 하는 취미가 많아졌다. 이렇게 취미에 몰입하고 나니 달라진 것이 무척 많지만, 그중 하나는 덜 외롭다는 점이었다. 관심 있는 분야의 자료를 찾아보고, 유튜브를 찾아보고, 기록하는 등 거기에 몰입하고 나니 누군가의 연락이 없어도 외롭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취미가 있어야 한다.
5. 모임에 참석하다.
나는 외로울 때면 모임을 찾아 헤맸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는 즐거움을 알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모임이 없어지거나 축소되었고, 나도 외출하는 것이 편하지 않았다. 그러다 줌으로 하는 비대면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쓰는 시간을 가지는데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이 있으니 참 좋다. 그것도 어디서 이야기하기 힘든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너무나 유익한 시간이다.
6. 글을 쓰다.
외롭거나, 괴롭거나, 행복하거나, 무언가를 깨달을 때면 글을 썼다. 내 글에 댓글이 달리면 외로운 감정이 덜어졌다. 혼자 외딴 섬에 있는 것 같았는데, 다른 사람과 함께 있다는 걸 깨닫는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나는 인터넷에 계속 글을 올렸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D-day를 기다리며
D-day를 기다리고 있다. 그 디데이는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는 날.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내게도 여유가 생기고 하지 못했던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재취업을 해서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재취업을 못하더라도 듣고 싶던 강의를 듣고 배우러 다닐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바빠지고, 외롭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그 디데이를 나는 기다리고 있다.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내 이름 세글자로 불리는 그날을 다시 기다리고 있다.
물론 그 D-day가 와도 나는 외로워질 수 있다. 나란 사람은 관계 속에서 나를 재정립하는 사람이기에, 혼자 하는 것보다 타인과 함께 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어 하는 모든 일을 타인과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모두는 서로가 다른 관심사를 가졌으므로. 나는 혼자서도 많은 일을 해내야 한다. 나는 혼자서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내실을 다져야 한다.
결국 나의 D-day는 정말로 홀로서기를 하는 시도가 될 것이다. 아이 엄마라는 타이틀을 떼고, 아이를 앞장세워서 했던 속 편한 모든 행동에서 벗어나서, 아이 뒤에 숨었던 나 자신이 다시 걸어 나올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