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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un 26. 2024

예술과 혁명 사이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에리히 프롬 - 두 번째 이야기 -

“예술가는 혁명가와 비슷한 처지이다. 성공한 혁명가는 정치인이 되지만 성공하지 못한 혁명가는 범죄자다.”

 

-  에리히 프롬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


예술을 하며 밥 벌어먹고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과거 칸트의 3대 철학 저서(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 비판)에 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 칸트가 오랜 시간을 사유하며 도달한 그의 철학은 진선미(眞善美)(서평참조)를 말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진리를 알고 선을 행하며 예술로 나아가는 것이야 말로 인간이 가야 할 가장 올바른 길이라고 본 것이다.


가장 올바른 길은 가장 힘든 길이다. 그래서 올바르게 살기가 힘든 것이다. 먹고살기도 바쁜 세상 언제 진리를 탐구하고 선을 행하며 예술까지 섭렵하겠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우리를 그렇게 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생산(소득)과 소비(지출)의 양 방향을 오고 가는 시계추(시간) 속에 우리를 가둬둔다.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진리 탐구와 선행 그리고 예술은 자본주의 세상에서 그리 달갑지 않은 활동이다.


진리는 아는 것부터 쉽지 않을뿐더러 그것을 알고 선을 행하는 것은 더욱 어려우며 그것을 예술로 승화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혁명에 가까운 일이다. 혁명은 자신을 돌볼 수 없다. 


그래서 예술가로 산다는 건 혁명가의 삶처럼 고달프다.



an old man and an old woman who are reading in Mcdonald

오늘도 어둠이 걷히지 않은 이른 새벽 맥도널드로 출근했다. 오늘도 여전히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 앉아있다. 어랏! 그런데 할아버지 뒤에 못 보던 할머니가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닌가? 둘은 서로 모르는 사이 같아 보였다. 이른 새벽 맥도널드에서 글을 쓰는 할아버지와 책을 읽는 할머니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 쌍의 노년의 커플 같다. 나의 상상력이 발동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나 세 명이 맥도널드를 맥라이브러리로 만들었다. 나도 글을 써야겠다.


며칠 전 미술관을 찾았다. 거기서 한 백발의 백인 할머니를 만났다. 우연히 말을 걸어온 그녀와 환담을 나누었다. 그녀는 자신의 딸이 나온 신문기사를 나에게 보여주며 딸 자랑을 했다. 그녀의 딸은 화가였다. 오랜 시간 그림을 그려온 모양이었다. 그녀는 오랜 시간 그녀의 예술 활동을 지켜봐 왔을 것이다. 지금은 꽤나 유명해져 이곳저곳을 다니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예술가가 되었다고 했다. 이곳 미술관에서도 전시를 한 모양이었다. 미술관 직원들과도 모두 다 아는 사이 같아 보였다.

A old woman who I met in Mosman Art Gallary

“She always paints a man who naked upper body. "

(그녀는 항상 반 나체의 남자 그림을 주로 그려요)


그림이 아주 특색 있다. 남자의 상체에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 그림이다. 그녀가 남자를 바라보는 시각(프레임)이 담겨 있었다. 물론 그녀가 어떤 상상을 하며 그림을 그리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생각으로 그녀는 분명 과거 남자에 관한 자신만의 특별한 기억이 그림에 투영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는 기억과 상상을 연결해 새로운 창작을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어찌나 딸 자랑을 하는지 길거리에 서서 한참 동안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부모의 자식사랑은 어딜 가나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할머니가 딸 때문에 맘고생을 적잖이 했던 모양이다.


자녀가 예술에 자질이 있다고 생각되면 그때부터 부모의 삶은 고달파진다. 예술은 돈이 많이 든다. 그리고 돈이 들어간 만큼 회수될 가능성도 낮은 길이기 때문이다. 투자대비 수익률이 그리 좋지 않다. 그래서 가난한 집안에선 예술가의 길을 가기 쉽지 않다. 하지만 가난과 고난은 진정한 고귀한 예술로 나아가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두 종류의 예술가 


과거 예술가에 대한 나의 생각을 글로 쓴 적이 있다. (링크 참조) 돈을 퍼부으면 예술가를 만들 수는 있다. 부모의 든든한 보살핌과 지원사격 아래에서 성장한 예술가도 분명 있을 수 있다. 그렇게 성공한 예술가들을 우린 진정한 예술가로 볼 수 있을까? 이건 칸트의 철학에 빗대어 볼 때 진정한 예술로 나아갔다고 보기 힘든 경우가 더 많을 거 같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이가 과연 진리를 깨닫고 선행을 거쳐서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켰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Artist

첫 번째 진리를 깨닫는 길(혹은 인지하는 길)은 가장 우선되지만 가장 어렵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1781)에서 진리를 아는 것이 최우선이라 강조했다. 진리는 자아성찰과 수많은 인생의 경험(직간접) 속에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어렸을 때부터 예술만 하며 자란 자는 칸트가 말하는 진리와 선행(선악의 구분)의 단계를 건너뛰고 고속도로를 타고 예술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한 것과 같다. 그러면 이 예술은 오랜 시간 예술적 기교만 갈고닦은 덕분에 겉으로 보이기엔 아주 감각적이고 화려해 보일진 몰라도 그 안에 상상이나 생각은 진리와 선함을 담고 있지 않을 수 있다. 모르기 때문이다.


이건 어찌 보면 예술이라기보다는 디자인(상업적인 기교와 기술)에 가까운 것이다. 이건 다르게 표현하면 철학이 없는 예술인 것이다. 또 다르게 표현하면 감각(S)만 뛰어날 뿐 통찰과 직관(N) 영역이 결여된 예술과 같다. 감각이 뛰어난 사람의 예술은 기교와 흉내내기에 아주 특화되어 있다. 흉내 내고 따라 하는 건 아주 잘한다. 물론 이 능력도 중요하다. 뛰어난 감각이 통찰과 직관과 융합되면 금상첨화이다. 감각은 선천적인 요인과 후천적인 훈련으로 발견과 강화의 과정을 거치지만 직관과 통찰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삶의 경험(직간접 배움) 속에서 생겨난다. 간혹 어린아이들이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각종 예술적 능력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삶의 진리를 깨닫고 선악을 정확히 구분한다고 말할 순 없다.


그러니까 인간의 본성과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는 진정한 예술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후대에 이름을 남긴 유명한 예술가들의 삶이 그리 평탄하지 않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삶의 고난 속에서 끊임없이 인간과 삶에 대한 사유를 통해 그것을 예술의 형태로 표현해 낸 것이다.


“예술가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 에리히 프롬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중에서-


그들은 그 어떤 금전적 물질적 보상이 없어도 그것을 해야만 한다는 심리적 혹은 정신적 강박에 가까운 사명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들은 진리를 알고 선의 의미를 깨달으면 그것을 시각적 혹은 청각적으로 표현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알려주고 전해야 하는 사명을 실행에 옮기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마음에 그것이 샘솟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그것을 지속한다. 심지어 생계를 돌보지 않고 현실의 삶을 무시하면서까지 말이다.


“작품을 파는 데 성공하지 못한 예술가는 동시대인들에게 ‘미친놈’ 아니면 ‘신경증 환자’ 취급을 받는다’”


- 에리히 프롬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중에서-


서두의 문장에서도 설명했지만 이 점에서 혁명가와 예술가는 비슷하다. 다만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혁명은 폭력과 희생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지만 예술은 폭력이 없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인 것이다. 그래서 혁명이 실패하면 감옥행이고 예술이 실패하면 정신병원으로 가거나 길거리에 나앉는다.

빈센트 반 고흐 (1853~1890)

떠오르는 예술가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혁명가와 예술가는 죽고 나서 재조명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죽고 나서 그 영광이 빛을 발한다. 살아생전의 모든 시간은 고난과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죽어서는 이름과 업적을 남긴다. 칸트는 인간이 가장 고귀해지는 방법이 이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건 아무나 할 수 없고 또한 해야 할 이유를 찾기도 힘든 과정이다. 왜냐 먹고살기 너무 바쁘고 힘들다. 그래서 성인과 위대한 예술가들은 대부분 홀로 외롭고 고달픈 삶을 영위한 거라 본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남긴 것들을 보면서 그나마 아름답고 인간다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철학과 예술이 필요한 이유이다.  하지만 철학자와 예술가는 현실의 삶에서 동떨어진다. 왜냐? 현실에서 한 발짝 물러나 현실을 관조해야만 그것을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족쇄에 계속 끌려 다니기만 하면 철학과 예술은 피어날 수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족쇄의 고난을 몸소 겪어본 자들만이 진리가 무엇이고 선행의 필요성에 대해 깨닫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삶이 동물과 다름은 진리가 있고 선을 지향하며 예술로 승화하는 삶을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기 위해 산다면 그건 동물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대부분의 사람이 어린아이에게 큰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그건 감성적인 이유나 관습적인 이유를 제외하면 답은 바로 자발성이다.”


- 에리히 프롬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중에서-


어린아이와 예술가의 비슷한 점이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한다. 그것이 금전적 물질적 이득을 주는 것이 아님에도 한다. 아이들이 무엇을 스스로 만들고 나면 부모에게 쪼르르 달려와 보여주며 웃음 짓고 자랑하며 함께 그것을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이가 만들고 그린 것에는 그들의 상상이 담겨 있고 그들은 어른들이 그걸 보고 그 안에 담고 있는 상상을 그들이 느낄 수 있길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가 그리고 만들고 상상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참을 드려다 봐도 잘 모른다. 현실에 치여 상상력이 사라진 덕분이다.


어른 아이


예술가는 아이의 순수함을 간직한 채 성인의 몸뚱이로 커버린 자이다. 그 순수함이 이젠 멍청하고 어리석음이라는 다른 말로 바뀌어 버렸다. 사람들은 그런 자를 사회부적응자라로 표현한다. 아이가 상상력을 잃어가며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의 상상력을 빼앗아서 현실의 삶에 적응하도록 인도해야만 한다.


하지만 만약 부모가 부유하고 힘이 있다면 그런 자신의 아이의 상상력을 계속 지켜주고 보호해 줄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아이는 진리와 선함의 의미를 몸소 깨닫지 못하고 상상에만 빠진 아이로 성장한다. 그리고 그런 상상은 세상에 그 어떤 변화(긍정적인)를 가져다줄 수 없다. 그건 그저 환상에 그친다. 예술은 현실과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그것이 예술이 존재하고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예술이 현실의 부당함과 부조리와 처절함을 담고 현실에 보이지 않는 힘을 미쳐야 한다. 그것이 예술이 진리와 선행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힘이다.


세상을 좀 아름답고 평화롭게 바꾸고 싶은가? 그럼 예술을 하라.


모든 이들이 그런 예술가가 된 세상을 상상해 보라. 평화로워 보이지 않은가?

뭐 세상의 경제는 파탄이 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배는 좀 고플지도 모르겠다.

많이 고프려나?!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에리히 프롬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

- 존 스튜어트 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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