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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un 13. 2024

주연과 조연 사이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고 난 후...

“조연은 없다. 누구나 주연이다. 다만 그것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 글짓는 목수 (Carpenwriter) -


송태섭(미야기 료타, 168cm, 59kg), 어린 시절 열광했던 슬램 덩크(Slamdunk) 속 그는 나의 우상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만화 속의 그는 ‘강백호(사쿠라기 하나미치, 189.2cm, 83kg)’라는 빨간색의 크고 개성 넘치는 캐릭터에 가려 있었다. 하지만 30년이 지나서 다시 본 슬램덩크 속에선 그는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려져 있던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또 다른 영웅이 탄생하고 있었다.

송태섭


머리가 지끈거린다. 뇌가 멍해진다. 글을 쓸 수가 없다.


오랜 시간 글을 쓰다 보면 생기는 현상이다. 머리를 식혀야 한다. 과열과 과부하에서는 뇌가 작동하지 않는다.

이럴 땐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흥밋거리를 찾아야 한다. 영화를 한 편 봐야겠다. 정말 생각 없이 보고 싶은 오락영화가 필요했다. 더 이상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웃으며 재밌게 볼 수 있는 그런 영화가 필요했다.


[The first Slamdunk], 그렇게 만화 한 편이 생각났다. 30년 전으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다.

마지막 승부 (1994)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 한국을 비롯해 동아시아에는 농구 붐이 불고 있었다. [슬램 덩크]를 시작으로 NBA의 마이클 조던과 나이키 농구화 그리고 [마지막 승부]라는 한국 드라마까지 흥행하며 학교의 농구장은 항상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농구공을 들고 농구장으로 향했다. 슬램덩크와 NBA 그리고 마지막 승부 속에 등장한 장면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농구장에서 친구들과 그것을 따라 하며 땀을 흘렸다.


"야, 넌 일단 벤치에 있어 나중에 후반에 상황 보고 끼워줄게"


나는 당시 키가 상당히 작아서 농구경기에서 항상 찬밥 신세였다. 알다시피 농구에서 가장 중요한 신체조건은 뭐니 뭐니 해도 키다. 가슴 아프지만 나는 키 작은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키 작은 나에겐 농구에 대한 관심만큼 농구경기에 참여할 기회는 자주 오지 않았다. 친구들과 모여서 농구경기를 할 때면 나는 항상 후보 선수로 그들의 경기를 구경만 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승부를 가리는 경기는 언제나 우월한 신체 조건을 가진 녀석들에게 우선권이 돌아가기 마련이다.


나는 농구 경기가 끝나고 친구들이 집으로 돌아간 해 질 녘 학교 운동장에 홀로 남아 농구공을 튀기며 드리블과 슛 연습을 하며 언제일지 모르지만 나에게 돌아올 기회의 날을 기다리며 땀을 흘리던 때가 있었다.


스포츠에서 신체적 열세를 가진 자들의 성공 신화는 항상 끊임없는 연습과 훈련을 통해 기초체력을 다지고 남다른 스킬을 키움으로 탄생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포츠 스타들은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일류가 되었다. 물론 신체적 우월함으로 스타가 되는 자들도 있다. 그들의 성공 스토리는 전자의 것보다 드라마틱하지 않다.


물론 내가 송태섭처럼 그걸 극복하고 농구를 잘하게 되었다는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난 그냥 농구를 계속 잘 못했다. 그런데 내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재밌는 추억 중 하나는 그 당시 내가 슬램 덩크 만화를 보면서 내가 실제로 농구를 잘하는 것보다 더 빨리 농구를 잘하는 방법이 뭘까에 대해 고민했던 것 같다.


가상의 주인공이 되다


나는 중학교 때 일주일에 한 번 있는 특활(특별활동) 시간에 만화 그리기 동아리에 들어갔다. 거기서 내가 주인공이 되는 농구 만화를 그렸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때 난 내가 그림 그리기에 정말 소질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하지만 그림엔 소질이 없는데 스토리 텔링에는 소질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내가 만화를 그리면서 가장 답답했던 건 만화 속 대사와 스토리는 이미 저 멀리까지 다 생각했는데, 그림이 그걸 따라오지 못해서 너무 답답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스케치북에 만화책 한 권 분량의 만화를 완성했다. 난 그걸 자랑스럽게 친구들에게 보고 줬다.  그들은 내 만화를 쓰레기 취급 했지만 난 스스로 내가 그린 만화를 보면서 혼자 즐거워했다. 자기만족의 취미였다. 비록 3류 슬램덩크 짝퉁 만화였지만 모든 위대함은 모방에서 시작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뭐 그림은 결국 모방에서 끝났지만… 이야기는 많다. 단지 시간이 없을 뿐.


그 당시 적어도 난 농구장에서는 후보선수나 조연이었지만 내 만화 속에서 나는 항상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만화 속에서 레이업슛, 3점 슛, 페이더웨이슛, 덩크슛까지 모두 던지면서 코트를 누비고 다녔다. 


내가 농구 만화를 그릴 때 항상 떠올리던 인물이 있었는 데 그것이 바로 ‘송태섭’이었다. 그래서 그 만화의 주인공은 키 작은 히어로였다. 내 기억으론 ‘강백호’의 똘끼를 가진 캐릭터에 ‘송태섭’의 이미지를 더한 새로운 퓨전 캐릭터를 만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빠른 스피드와 현란한 드리블 실력으로 작은 키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농구 코트의 중앙에서 공수를 조율하는 포인트 가드의 모습은 나를 흥분시켰다.

송태섭

주연보다 조연에


어딜 가나 주목받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주인공이다. 주목받는 자는 주목받지 않는 자가 주변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리더의 존재는 팔로워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리더는 팔로워에서 탄생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소크라테스에게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있었다. 공자에게는 안회와 자로가 있었으며 예수는 12명의 제자가 있었다. 그들은 나중에 또 다른 리더가 되었다.

 

슬램덩크에서 주인공이라고 하면 누가 뭐라 해도 ‘강백호’라는 캐릭터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농구의 문외한인 한 양아치 학생이 한 여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시작한 농구의 길 위에서 펼쳐지는 휴먼드라마. 시놉시스가 매력이지 않은가. 이런 스토리는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 혹은 들어본 공감 가는 스토리이다.


시작은 사소하지만 간절함을 품고 커진다.


누가 들으면 놀랄 일이지만 나는 과거 대학생 시절 한 여학생의 마음에 들기 위해 춤을 배웠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내가 과거 춤을 췄다고 하면 다들 놀란다) 허약하고 왜소한 체격에 내성적인 성격을 지녔던 내가 대학시절 댄스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무대 위 공연을 위해 밤낮없이 땀 흘리며 춤을 연습했기에 체력과 끈기가 생겼고 대중 앞에서 화려한 조명과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 보니 내성적인 성격은 점차 외향성에 가려지기 시작했다.


그 모든 변화의 시작은 한 여자의 관심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 여자의 관심을 얻진 못했다. 오히려 춤을 배운 것이 오히려 독이 됐다. 하지만 춤을 배우고 연습하는 과정과 시간 속에서 내가 경험한 것들은 내 삶에 아주 큰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게 이야기는 사소하게 시작됐지만 간절함을 품고 커져갔다.

강백호

‘강백호’는 마중물


강백호가 슬램덩크의 탄생을 이끌었지만 그 뒤에는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조연들이 주연이 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이야기는 한 명의 캐릭터의 색깔이 만들어지면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그 캐릭터가 끌어들이는 다른 주변의 캐릭터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거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이건 마치 마블 세계관과도 같다. 우리가 마블 코믹스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아이언맨'이지만 아이언맨과 함께 하는 다른 영웅들이 등장하며 그들이 또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면서 여러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세계(Multi Universe)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나도 이야기를 쓸 때 항상 이런 점을 염두에 둔다. 주인공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면서 등장하는 주변인물에게도 그들만의 이야기를 품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여지를 남겨둔다. 그걸 웹소설에서는 여기저기 떡밥을 던져놓는다고 얘기하더라. 물고기가 떡밥을 물 수도 있고 안 물 수도 있다. 하지만 던져놓으면 이게 언제 어떻게 맞물리고 연결될지는 이야기를 써나가 봐야 알 수 있다. 작가의 상상과 무의식이 그걸 물면 또 다른 세계가 탄생하고 아니면 물릴 때까지 쓰면 된다.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고 미약한 시작에서 창대한 이야기로 퍼져나간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 [욥기] 8:7 -


나는 오랜 시간 교회를 다녔지만 아직도 성경의 주기도문과 십계명도 못 외운다. 하지만 왠진 모르지만 어린 시절부터 이 구절만큼은 어떻게 까먹지 않고 항상 기억하고 다녔는지 모르겠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아마도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이거였기 때문이었나 싶다. 모든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것을 계속 이어가다 보면 어느새 창대하게 퍼져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야기는 항상 사소하게 시작해서 창대하게 퍼져간다. 빅뱅에서 안드로메다까지...

 

주연과 조연 사이


이런 나의 성향 때문인지 나는 항상 남들이 우러러보거나 관심 가지는 것들 보다는 소외되고 남다른 것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어딜 가나 항상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들에게 더 관심을 가진다. 무대 위에 서 있는 주인공보다 무대 구석에 서있는 행인 1,2,3을 보면서 그들은 주인공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한다. 그래서 난 주류가 되지 못하고 항상 비주류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주류와 비주류도 시기만 다르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다. 사랑도 타이밍이고 이야기도 타이밍이다. 적절한 시공간에서 이뤄지고 발견되는 법이다. 아직 이뤄지지 않았고 발견되지 않았다면 사랑을 위한 감성과 이야기를 위한 내공을 키워야 할 시기인 것이다.  


조연은 주연을 빛내는 법이다. 주연이 빛나면 언젠간 조연도 빛나게 될 수밖에 없다. 이건 진리이다. 당신이 누군가를 빛나게 하고 있다면 다음은 당신이 빛날 차례이다. 누군가가 빛나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자들은 결국 자신의 빛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리라.


오랜만에 추억의 [슬램덩크] 만화를 보며

나의 이야기 속 주연과 조연 사이에 펼쳐질 또 다른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슬램덩크




발리에서 생긴 일 (웹소설: 문피아)

https://novel.munpia.com/419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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