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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un 05. 2024

집을 짓듯 글을 짓다

지상최대 웹소설 공모전에 참여하며... [부제_집짓기와 글짓기 사이]

쓰고 있던 소설을 지웠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그 원고들을 읽어 내려갔다. 중간 퇴고를 시작했다. 소설이 단편에서 장편으로 넘어가면서 이야기는 점점 방대해져 간다. 마치 한 점에서 시작한 우주가 끝없이 확장하며 뻗어나가듯이 그렇게 소설의 이야기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이 우주의 법칙을 따라 끝을 알 수 없이 뻗어가고 있었다. 


쓰고 있던 장편이 10만 자를 넘었다.  쓰다 보니 A4지 100장이 넘는 분량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보다 더 큰 이야기를 품기 시작했다. 이제 나도 어떻게 써 내려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 모든 이야기는 결코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쓰고 또 쓰다 보니 이것 속에 저것이 있고 저것 속에 이것을 발견하며 연결되고 확장되며  또 새로운 이야기가 생겨난다. 마치 어지럽게 연결된 뇌의 신경망처럼 그 경로와 방향을 알 수 없이 거대한 우주 속을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퇴고(推敲)


오랜 옛날 당나라의 한 시인이 시구를 짓다가 퇴(推: 밀다)와 고(敲: 두드리다) 이 두 글자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가 다른 이의 조언을 받아들여 고(敲)라고 고쳐 썼다는 이야기가 이 글자의 유래이다. 


한자를 보다가 도저히 '글을 고치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지 않은 이 두 한자가 이상해서 찾아봤다. 글자 하나하나가 품고 있는 의미와는 전혀 상관없는 단어의 의미는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그래서 종종 언어는 그 언어 문화권에 속해있지 않은 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들이 많다. 언어는 역사(이야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쓰다 보면 이런 경험을 한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아 보이는 두 가지의 현상과 인물과 기억들이 서로 연결되는 일, 장편을 쓰다 보면 이런 경험을 자주 한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그것들이 연결되고 그것들이 연결된 이유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가령 이야기 속 한 인물이 커피를 주문할 때 항상 플렛화이트(Flat white)에 하프 슈거(설탕 반스푼)를 얘기한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건 그냥 그 사람의 취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표면적인 단순한 행위가 이야기에 나타나고 나중에 그 행동의 원인과 그것으로 인해 또 다른 일들이 연결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주 사소하지만 퇴고라는 글자가 지금에 까지 이어져 온 것은 당시 그 시인의 생각은 사소했지만 나중에 그가 이뤄낸 일이 컸기에 그 일화 속 사건이 모든 이가 아는 단어의 의미가 되었다. 

  

과거를 돌아보다.


퇴고가 필요하다. 중편에서 장편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면  다시 한번 뒤를 돌아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왔고 또 어디쯤 가고 있으며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이 어떻게 될지 가늠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엑셀 시트를 열었다. 그리고 소설들의 각 주요 인물의 배경과 성격, 직업, 혈액형, 나이 그리고 MBTI까지 디테일한 정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방대한 이야기 속에서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인물들의 정보를 정리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이 인물들의 정보들에 오류와 모순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이 모순이듯 이야기도 모순을 품을 순 있지만 이미 드러난 인물들의 사실적 정보는 되돌릴 수 없다. 허구가 거짓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야기의 모순은 그것을 풀어가면서 또 다른 이야기가 탄생하지만 드러난 사실적 정보에 근거해서 벌어져야만 한다. 그렇기에 이 방대한 정보들을 내가 모두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 기억은 항상 변형되고 왜곡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장편소설은 이 변형되고 왜곡되는 기억들을 바로 잡으면서 계속 나아가야 한다.


다중 우주


썼던 소설들을 다시 읽어 내려가면서 새로운 상상들이 개입하기 시작한다. 그것들을 중간중간에 새로운 에피로드로 집어넣으면서 이야기는 또 다른 세계관을 품기 시작한다. 신기하다. 이게 천체물리학자들이 말하는 다중우주인가. 나도 이런 생각이 어떻게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지만 항상 새로운 상상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기대하며 글을 쓰게 된다.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고 또한 기쁨이다.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 낼 수 있는 몰입의 시간이 가장 즐겁다. 

Multiverse

신은 분명 모든 인간들에게 이런 무한한 가능성을 준 것이 분명하다. 다만 인간은 그 주어진 능력의 반에 반도 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것이리라. 아니 어쩌면 그 뇌의 각 부분(뇌영역)을 단편적으로만 사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뇌의 무궁한 능력을 사용하지 못한다. 몰입을 통한 기억과 무의식의 연결과 융합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인간이 AI가 대신하지 못하는 유일한 영역이 아닐까?


공모전


우연히 또다시 웹소설 공모전 소식(2024 지상최대 웹소설 공모전_네이버+문피아)을 접했다. 3년 전 이 공모전(2021년)에 참여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공모전을 준비하며 썼던 에세이[소설가가 되는 길]를 다시 읽었다. 

2024 지상최대웹소설 공모전

벌써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때 출품했던 작품이 본선에 오르면서 난 전에 없던 환희의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글이란 콘텐츠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는 작가라는 직업은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매력적이 되기 위해 견디고 감수해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때 나도 작가로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기대에 부풀었다. 큰 기대는 언제나 큰 실망을 안겨주기 마련이다. 공모전에서 떨어지고 누구에게도 드러내진 않았지만 내 안에 들어찬 실망감이 일상을 무너뜨리고 무기력이 찾아들었다. 그 이후 한동안 글을 쓰기 힘들었다. 전에 없던 슬럼프가 찾아들었다. 


공모전이라는 것이 그렇다. 작가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기대를 부풀려 일상의 평정을 잃게 만든다. 글쓰기의 산업화가 만들어낸 폐해일까? 공모전을 겨냥해서 쓰는 글은 언제나 이 욕망을 품게 마련이다. 무의식에서 생겨난 이야기들을 의식해야만 하는 모순이다. 


공모전이란 분명 뚜렷한 의도를 가지는 글쓰기가 될 수밖에 없다. 아니 그렇지 않았더라도 작가는 그것을 준비하는 동안 그렇게 변해갈 수밖에 없다. 공모전의 취지와 의도는 언제나 내가 쓰는 이야기를 자본적 가치로의 전환이 가능한가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주최자들이 그 큰 상금을 내걸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큰 상금은 나의 이야기가 그 큰 상금보다 더 많은 돈을 가져다줄 수 있을 거라는 심사자와 투자자들의 믿음을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럼 그 이야기는 나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그 의도를 파악하고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일상의 일부


그렇게 과거 웹소설 공모전에 떨어지고 한동안 소설을 쓰지 않았다. 대부분 일상의 에세이와 독후감을 쓰면서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고 확장하는 글쓰기를 즐겼다. 나만의 세계 속에 머물기로 했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던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냥 글 쓰는 과정 속에서 기쁨을 찾는 방법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Flow state (몰입)

이른 새벽 아직 짙은 어둠이 세상을 뒤덮고 있는 시간 일상의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커피 한잔과 함께 시작하는 글쓰기는 이제 일상의 일부분이 되었다. 하루 중 이 시간이 가장 기다려지고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이 몰입의 시간은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으며 오로지 나의 무의식과 장기 기억 속을 여행하는 시간이다. 사람들은 이걸 심리학 용어로 “플로우 상태(Flow state)”라고 말하더라. 난 이 상태에 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만약 최상의 플로우 상태를 경험하고 나면 기분이 날아갈 듯 기쁘다. 이 상태를 경험한 후에는 보통 단편(짧게는 4,000~5,000자 길게는 8000자까지)이 초고가 완성된다. 뼈대가 갖추어진 한 편의 글이 완성되는 것이다. 물론 이건 또다시 퇴고 과정을 거치면서 다듬고 삭제하고 추가하며 살을 붙여야 한다.


집짓기와 글짓기 사이


이건 마치 목수가 집의 골조공사(Framing) 완성하고 난 후 거기에 벽을 세우고 미장을 하고 페인트를 칠하는 과정과도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건 기초이다. 제대로 된 뼈대가 완성되면 글은 무너지지 않고 완성되기 마련이다. 시간이 좀 더 걸리고 덜 걸리는 건 얼마나 외관을 더 예쁘고 아름답게 꾸미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물론 이것도 중요하다. 모든 건축(하우스 공사나 인테리어 공사)이 마감공사에 신경을 쓰는 이유이다. 보기 좋은 떡이 맛있는 법이다. 


아름답고 깔끔하게 만들어진 외관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당기기 마련이다. 사실 난 이걸 잘 못하는 편이다. 목수는 기본적으로 뼈대(framing or structure)를 만드는 것이 주된 일이다. 물론 내장(인테리어) 공사는 기본 뼈대가 있는 상태에서 살을 붙이는 공사이지만 이건 꼼꼼하고 섬세한 내장 목수들의 주종목이다. 난 처음 외장 목수로 시작했다. 그리고 나중엔 내장 목수일도 하기 시작했지만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처럼 아직은 꼼꼼함과 섬세함이 부족한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글을 퇴고할 때 이 부분도 신경을 많이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글은 초고를 쓸 때 뼈대가 올라가면서 집의 전체 윤곽이 드러나는 그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 


하지만 공모전은 보여주기가 중요하다. 웹소설 공모전은 모든 완전한 뼈대를 보여줄 수 없다. 심사기준(120화 중 30화 정도의 분량으로 심사)이 프레임을 모두 완성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뼈대를 올리면서 마감작업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편법적인 글쓰기이다. 왜냐 웹소설은 장편이다. 그것도 대하소설 분량의 아주 긴 장편이다. 그것을 다 쓰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다. 이건 풀 코스 마라톤(42.195km)을 뛰는 것과 같다. 이건 그 자체로도 아주 힘들며 의미가 크다. 


공모전 심사는 쓰다만 글의 완성도와 흥미도를 가지고 판단한다. 중편 소설 분량을 가지고 심사한다. 그럼 작가는 짓다만 집에 마감공사를 진행해야 한다. 집 안팎의 외관을 그럴듯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뒤에 가려진 골조와 배관과 배선들이 어떻게 될지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짓다만 집에 마감공사를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집도 글처럼 미리 보기를 원한다. 이건 모델하우스로 비유하면 될 듯하다. 목수의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지붕 프레임이 덮이지도 않았는데 벽을 세우는 격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콘텐츠의 산업화는 속도전이다. 누가 더 빨리 돈이 될 것 같은 콘텐츠를 빨리 보여주느냐가 관건이다. 인간은 시각화되지 않은 것에 욕망과 욕구를 느끼기 힘들다.


다시 도전


그래서 난 의문이다. 이렇게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중간까지 만들어진)이 끝까지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그래도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하지만 서두르진 않으려 한다. 공모전 때문에 급하게 짓다만 집에 마감공사를 하진 않을 것이다. 그건 결국 다시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하는 불상사를 만들지도 모른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집은 지붕부터 짓는 것이 아니다. 주춧돌부터 세우고 천천히 뼈대를 올려가는 것이다. 여태껏 세웠던 뼈대를 다시 점검하고 있다. 보강공사를 하면서 좀 더 튼튼한 프레임을 올릴 것이다. 골조가 튼튼한 집은 50년 100년을 간다. 


과거 역사에 이름을 남긴 소설가들은 그런 이야기를 썼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고전이 되었다.  이 이야기가 공모전에 입상하든 하지 않든 나는 계속 써나갈 것이다. 그전부터 그렇게 써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쓸 것이다. 다만 그 쓰는 공간을 다른 곳(문피아 글 짓는 목수 - https://novel.munpia.com/419925 )으로 옮겨서 쓰는 것뿐이다.


그곳엔 수많은 작가들이 수많은 이야기를 짓고 있다. 수많은 세계 속에 또 다른 작은 세계가 점점 커져가고 있다. 마치 다중 우주 속에 나라는 또 다른 우주가 빅뱅으로 생겨나 점점 커져가듯이… 


나는 집을 짓듯이 글을 지어갈 것이다.




[발리에서 생긴 일]_글 짓는 목수

P.S. 기존에 써내려 가던 [발리에서 생긴 일] 웹소설은 현재 다시 퇴고(수정과 첨삭) 작업을 거쳐서 공모전 게시판에 새롭게 포스팅 중입니다. 공모전 규정으로 인해 브런치 플랫폼에 기존의 웹소설을 동시에 게재하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랍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발리에서 생긴 일] 웹소설은 문피아 플랫폼을 이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문피아 [발리에서 생긴 일] https://novel.munpia.com/419925 


독자님들의 많은 응원과 격려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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