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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May 26. 2024

죽음과 사랑 사이

[죽음] 베르나르 베르베르 (부제_만약 내일 죽는다면...)

“흔히들 죽음은 실패이고 출생은 승리라고 생각하지. 죽음은 무조건 부정적인 것과 연결 짓고 출생은 긍정적인 것으로 여기지. 하지만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정반대야. 죽음은 우리를 모든 육신의 고통에서 해방해 주는 거니까. 우리는 순수한 영혼이 되지. 가벼워지는 거야. 반대로, 곰곰이 따져 보면 태어나는 게 그리 좋은 건 아니야.”


-  베르나르 베르베르 [죽음] 중에서 -


생명의 탄생은 항상 경이롭다. 하지만 생명의 사라짐을 경이롭게 여기진 않는다. 왜일까?
 이건 바로 내가 타자의 죽음만 경험하기 때문이 아닐까? 죽음은 죽는 자 보다 죽는 자를 지켜보는 이가 더 많은 고통을 끌어안는다. 우리는 삶의 고통 속에서 매일을 살아가지만 언제나 더 이상의 고통이 없는 죽음을 더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누군가의 죽음은 당사자의 고통이 아니라 그 죽음을 목도하는 자들의 고통만 더해갈 뿐이다. 그래서 삶이 길어질수록 그 고통은 점점 더해져만 간다.

 


“카톡!”


새벽에 메시지 진동 소리에 잠이 깼다. 부고(訃告)였다. 웬만해선 잠이 잘 깨지 않는 나이지만 그날은 나도 모르게 어둠 속에서 손을 뻗어 핸드폰을 확인했다. 나와 가장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낸 죽마고우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과거 한국에서 사회활동과 사교활동 그리고 종교활동을 할 때는 이런 부고가 마치 일상처럼 찾아들곤 했었다. 직장 동료 그리고 거래처 관계자들의 가족의 부고부터 주말마다 다니는 각종 동호회 지인 가족의 부고 그리고 얼굴만 알고 말도 한 번 섞어보지 못한 교회의 지인 혹은 이름만 듣고 얼굴도 모르는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부고 등등 일주일이 멀다 하고 누군가의 죽음의 소식을 접했다. 누군가의 죽음의 소식이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처럼 다가오면 우리는 타인의 죽음에 대해 무뎌지게 된다. 관계가 많아지고 복잡해질수록 우리는 이런 것들에 무뎌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많은 상갓집을 모두 찾아다닐 시간과 돈은 없다. 그렇다고 모두 다 무시할 수도 없다. 그때부터 그 죽음의 가치를 매기게 된다. 가야 할 장례식인지 가지 않아도 되는지 아니면 가지 않고 부조만 할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심심한 위로의 메시지만 보내고 말 것인지 머리가 복잡해진다. 시간과 돈과 감정 중 무엇을 써야 할지 결정하고 행동해야 한다.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죽음을 애도하는 시간도 사랑의 타이밍처럼 놓치면 돌이킬 수 없다. 죽은 자와 떠나간 사랑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는 정말 수없이 많은 장례식장을 들락거렸다.


“오늘은 잔업하지 말고 일찍 나가자 상갓집 가야니까”


첫 직장에 입사 후 처음으로 직속 상사를 따라서 고객사 누군가의 장례식장에 갔을 때가 기억난다. 난 상을 당한 사람이 누군지도 잘 몰랐다. 그저 고객사의 부서장쯤 되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의 직속 상사는 나에게 누군지도 알려주지 않고 그날 장례식에 가야니까 당일 검은색 정장으로 입고 출근하라고 알려줬다. 그리고 퇴근 시간이 되자 그는 언제나 그랬다는 듯이 책상 한쪽 서랍을 열어 매고 있던 화려한 색깔의 넥타이를 벗어서 서랍에 넣고는 서랍 안 구석에 처박혀 있던 검은색 줄 넥타이를 꺼내더니 목에 걸고 잡아당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야~ 너 검은색 넥타이 없어?”

“네. 없습니다.”

“아놔~ 최대리 쟤 넥타이 좀 줘라~”


나는 또 다른 상사가 자신의 서랍에서 꺼내준 검은색 줄 넥타이를 똑같이 목에 걸고 그를 따라 장례식장에 참석했다. 장례식장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나와 상사는 고인의 초상화 앞에서 연달아 두 번의 절을 하고 또다시 상주인 그 부서장과 맞절을 했다.


그리고 직속상사는 부조함에 여러 장의 부조 봉투를 한꺼번에 집어넣었다. 대표이사의 이름이 적힌 봉투부터 부서장과 다른 관련 있는 직장동료들의 부조 봉투를 모두 배달하는 임무까지 띠고 있었다. 빈소에 들어가기 전 봉투가 많아서 몇 장은 내게 나눠주며 나보고 부조함에 넣으라고 했다. 상가 집은 이런 여러 장의 부조 봉투를 가지고 가지고 온 조문객들로 넘쳐나는 듯 보였다. 그때 나는 왜 사람들이 그렇게도 기를 쓰고 대기업에 취업하려고 하는지 조금 이해가 되었다. 보다 많은 협력사를 거느린 대기업은 보다 많은 문상객과 부조 봉투를 불러드린다는 놀랍고도 씁쓸한 진실을 깨달았다. 사람과 돈 그리고 술과 음식들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초상집이 마치 잔칫집처럼 느껴졌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상사는 상주에게 교과서에 적혀있을 법한 짧은 멘트를 전하고 돌아섰다. 상사는 빈소를 두리번거리더니 갈 곳을 찾았는지 나를 데리고 고객사의 다른 직원들이 앉아있는 곳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상사는 고객사의 다른 직원들과 함께 소주잔을 비우며 심각한 표정으로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조문을 온 것인지 업무 미팅을 온 것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그 심각한 표정이 겉으로 보기엔 초상집 분위기에 제법 잘 어울려 보였다. 오고 가는 대화의 내용과 보이지 않는 마음 상태는 그리 중요치 않았다. 심각하고 침울한 표정으로 구색만 맞추면 되는 자리 같아 보였다.


[울 아부지 돌아가셨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내가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몇 해가 지난 뒤였다. 그때 나의 죽마고우 중 한 명이 처음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했다. 그때 받은 부고는 달랐다. 그냥 뉴스기사 읽든 스쳐갔던 수많은 죽음들과 아주 달랐다. 그때 나는 회사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한동안 뇌가 멈춘 듯 멍한 상태로 있었다. 그와 함께 했던 시간과 품고 있는 추억이 많았기 때문일까. 그가 지금 어떤 기분일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회사 일을 마치고 장례식장을 찾았다. 그가 검은 상복을 입고 초췌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그의 어머니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빈소에 앉아있었다. 그는 그냥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이 거의 없었다. 일 년에 한두 번씩 집으로 찾아오는 아버지는 항상 망망대해를 떠돌아다니는 뱃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기독교식 장례에 따라 간단히 고인의 사진 앞에 헌화를 하고 아무 말 없이 그를 안아주었다. 사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혹은 ‘ 주님의 소망과 위로가 함께 하기를 바란다’는 판에 박힌 위로의 말은 하고 싶진 않았다.


“왔어? 여기 앉아!”

“왜 이렇게 사람들이 없어”

“음.. 그러게 좀 전에 교회사람들 한 팀 왔다 가고 휑하네”


그리고 빈소에는 이미 와 있던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자리했다. 사람이 별로 없는 빈소는 휑한 느낌이었다. 더욱이 옆에 다른 빈소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려 더욱더 휑한 느낌이 들었다. 화환도 2~3개 밖에 없었다. 교회에서 보낸 것과 그의 아버지와 함께 바다를 누볐던 동료들이 보낸 것으로 보였다. 땅에서 살아야 할 인간이 바다에서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 이렇게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사회생활도 시작하지 않은 그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너무도 고요했다. 마치 빈소에 빈자리에는 산사람이 아닌 죽은 자들이 앉아있는 것만 같았다. 나와 3명의 죽마고우는 밤새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켰다. 나는 그때의 그 장례식을 잊을 수가 없다.  


‘과연 죽은 자를 보내는 행위는 과연 죽은 자를 위한 것인가?’


그때 나는 생각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들은 사람이 북적거리는 장례식과 썰렁한 장례식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말하는 자들은 모두 산 자들이다. 결국 장례식은 죽은 자를 통해 살아있는 자들의 삶을 비교하는 자리 같아 보였다.


“근본적으로 어느 누구도 진심으로 자기 자신의 죽음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나 무의식 속에서 자기 자신의 불멸을 확신한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베르나르 베르베르 [죽음] 중에서 -


죽음의 순간까지 인간은 가진 것과 그 영향력을 비교당한다. 만약 사람이 죽고 귀신이 되어 이런 광경을 보고 있다면 어떨까? 아무것도 가질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벌거벗은 몸으로 산 사람들을 내려다보면서 혀를 차며 비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다 누리지도 못할 것들과 다 가져가지도 못할 것들에 집착하며 삶을 고통의 시간들로 채워가는 건 우리가 타인의 죽음만 수 없이 지켜보면서 자신의 죽음은 전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내일 죽는다면 오늘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얼마 전 저녁 식사 모임에서 누군가가 질문했다.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다들 이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건 우리가 당장 죽을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내일을 위한 계획이 있고 그 계획은 그다음 날 혹은 몇 달 뒤 혹은 몇 년 뒤의 먼 미래의 계획을 위한 것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 당장 죽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일상은 항상 비슷하고 따분하게 반복된다. 우리는 항상 미래를 위해 변화한다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간임을 모르고 살아간다.


“그냥 잘 거예요”


누군가 이렇게 대답했다. 다른 이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내일 죽는데 지금 잔다는 말이 어찌 보면 우스개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런데 그때 문득 어린 시절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때가 떠올랐다. 잠을 자다가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 녁 닭이 울 때 즈음 스스륵 세상을 떠나던 할머니의 표정은 너무도 온화하고 평온해 보였다. 사방팔방에서 찾아온 가족과 친척들이 그의 곁에 둘러앉아 그의 마지막을 지켰다. 심지어 주변에 사는 이웃사촌들까지 앞마당에 몰려와서 그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사랑하는 이들에 둘러싸여 죽음을 맞이하셨다.

The lovers who is hugging on the bed on the last day of the world


“난 내일 죽는다면 오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와 함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싶어”


당신도 나의 답변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아니라면 음… 해줄 말이 없다.


인간은 한평생 대부분의 시간을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성공을 위해 발버둥 치며 살아가지만 내일이 없다는 것을 알면 이런 것들은 모두 무의미해진다. 그때 비로소 가장 순수한 인간으로 돌아간다. 마치 엄마 품에 안긴 갓난아기처럼… 우리는 태어났을 때로 되돌아가고 싶은 회귀본능을 가졌다. 그것이 가장 따뜻하고 포근하게 잠들 수 있는 것임을 우리의 무의식이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진실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잠들고 싶은 것이다.


죽음과 사랑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 같지만

죽음이 다가오면 사랑이 떠오른다.


[죽음] 베르나르 베르베르 with Donut and 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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