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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소유할 수 없는 꿈의 이름
슈퍼카

자동차 이야기 

by 자칼 황욱익 Mar 02. 2025

1920년대 한 신문광고를 통해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인 슈퍼카는 자동차 분야에서 최고 정점에 있는 희소한 모델을 뜻한다. 1960년대 시작된 슈퍼카 전쟁은 오일쇼크와 경기불황을 거치면서 잠시 주춤하는 듯했으나 1980년대 맥라렌 F1의 등장으로 정점을 찍었고 마지막 내연기관들이 격돌한 2000년대 중반을 거쳐 최근에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탑재한 새로운 형태의 슈퍼카들이 등장했다. 슈퍼카는 말 그대로 성능이나 디자인 모든 면에서 일반적인 양산차를 초월하는 차를 뜻한다. 하지만 단순히 비싼 차가 모두 슈퍼카가 될 수는 없으며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슈퍼카라는 개념은 사실 정확하게 ‘어떻다’라고 정해진 것은 없다. 다만 누구나 가질 수 있고 흔하게 볼 수 있는 차를 슈파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과거 기술 경쟁의 정점에 있었던 슈퍼카는 자동차 제조사가 가진 철학과 전통, 기술적 차별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디자인, 상상을 초월하는 성능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돈만 있다고 누구나 딜러에 달려가 구입할 수 있는 차들은 제외되며 철저하게 자동차 메이커가 소비자를 고르는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 지금이야 기술적 상향평준화로 인해 과거 슈퍼카를 상징하던 V12 엔진이니, 정지에서 100km/h 가속에 걸리는 시간이니, 최고 출력이나 최고 속력에 대한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지만 자동차 메이커들은 아직도 암암리에 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 노력 중이다.

     

1963년 람보르기니 미우라로 시작된 슈퍼카 전쟁 

이탈리아의 자동차 디자이너 마르첼로 간디니가 마무리 디자인을 담당한 람보르기니 미우라는 20세기 슈퍼카 전쟁의 시작과 기원을 알린 모델로 유명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당시로서 획기적인 디자인, 운전석 뒤에 엔진을 배치한 미드십 레이아웃(엔진이 운전석 뒤에 있고 뒷바퀴를 굴리는), 350마력(지금은 평범한 수치지만 당시 100마력이 넘는 차가 거의 없었다), 한정 판매 등 그야말로 지구상에서 미우라를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미우라의 등장 이후 슈퍼카=미드십 레이아웃이라는 암묵적인 기준이 정립되었고 미우라의 등장으로 자동차 업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기존 고성능 자동차의 기준이 한 번에 바뀐 것은 물론이고 한정생산, 성능을 더 높인 가지치기 모델이 등장하면서 미우라의 값어치는 출시 이후로 현재까지 계속 높아지고 있다. 람보르기니는 미우라 이후에도 쿤타치를 내놓으며 슈퍼카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한다. 물론 람보르기니 자체가 슈퍼카만 제작하는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모델들도 있었지만 미우라, 쿤타치, 디아블로, 무르치엘라고, 아벤타도르 등으로 이어지는 최상위 라인업은 여전히 람보르기니의 아이콘 역할을 하고 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1980년대 본격적인 슈퍼카 전쟁이 시작되면서 가장 선두에 나선 메이커는 페라리이다. 1950년대부터 각종 모터스포츠 이벤트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페라리는 이미 250 GTO와 250 LM을 통해 성능과 전통을 정립했으나 보다 현대적인 슈퍼카의 시작은 1984년에 등장한 페라리 288 GTO이다. 페라리 역시 슈퍼카 브랜드가 아닌 스포츠카 브랜드로 보는 것이 맞다.(현재 슈퍼카만 제작하는 회사는 파가니 존다와 코닉세그, 부가티 정도다.) 그룹 B에 출전시키기 위해 개발한 288 GTO는 V8 트윈터보 엔진을 장착한 슈퍼카로 기술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기도 하다. 이후 페라리는 F40, F50, 엔초 페라리, 라 페라리, 라 페라리 아페르타, F80으로 이어지는 슈퍼카 라인업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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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포르쉐는 수평대향 트윈터보 엔진을 탑재한 959를 발표한다. 뒤쪽에 엔진이 있는 포르쉐의 전통을 계승하고 주행안정성을 위해 사륜구동을 채택한 959는 총 345대만 제작되었다. 첫 모델의 최고속력은 무려 317km/h로 당시 출시된 자동차 중에 가장 빨랐다. 포르쉐는 일반도로용 자동차 중에 가장 빠른 차라는 타이틀을 위해 959에 그들이 가진 모든 기술력을 집대성했는데 이는 이후에 등장하는 모델에도 적용되었다. 포르쉐 959의 대항마로 페라리는 F40을 공개했다. 포르쉐가 가진 기록을 깨기 위해 등장한 F40은 페라리의 설립자 엔초 페라리의 목표가(959의 기록을 깨겠다는) 가장 뚜렷하게 반영된 모델이며, 페라리 마니아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모델이기도 하다. 


맥라렌 F1으로 끝난 20세기 전쟁, 21세기 새로운 기준의 등장  

미우라가 슈퍼카의 기원으로 불리는 것처럼 1992년에 등장한 맥라렌 F1은 20세기 슈퍼카 전쟁의 종결자로 불린다. 천재 엔지니어 고든 머레이와 피터 스티븐스가 디자인한 맥라렌 F1의 최고 속력은 무려 386.4km/h로 이 기록은 2000년대에 들어와서 깨졌다. 완벽에 가까운 파워트레인과 공기역학 중심의 디자인은 일반적인 자동차와 그 성격 자체가 달랐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운전석이 가운데 있는 맥라렌 F1은 106대만 제작되었으며 맥라렌 F1 GTR(레이스 버전 28대)과 LM(프로토 타입 포함 6대)이 가장 희소가치가 높다. 맥라렌 F1 이후 웬만한 자동차 회사들은 슈퍼카 제작을 포기하거나 프로젝트 자체를 폐기하는 일이 늘어났다. 빈카운터들이(기술자가 아닌 숫자에만 집착하는 경영진) 자동차 회사를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슈퍼카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생각했을 때 채산성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맥라렌 F1을 기점으로 슈퍼카 시장은 사라지는 듯했다. 친환경과 경기불황의 여파는 더 이상 소모적인 기술경쟁을 원치 않았고, 자동차 시장 흐름이 바뀐 것도 그 원인 중의 하나다. 그 과정에서 슈퍼카라는 이름 붙인 정체불명의 차들의 대거 등장했다. 대부분은 투자를 위한 미끼 상품이었고 일부 자동차 메이커는 단순히 비싼 차를 위한 마케팅을 펼치면서 거기에 슈퍼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5

21세기가 시작되자 전통적인 슈퍼카를 생산하던 회사들은 또 한 번 슈퍼카 전쟁을 시작한다. 내연기관을 가진 올드보이들의 마지막 경쟁이라 불린 이 전쟁에는 포르쉐 카레라 GT, 메르데세스-벤츠 맥라렌 SLR, 페라리 엔초 페라리, 람보르기니 무르치엘라고, 파가니 존다, 코닉세그 CC, 부가티 베이롱, 마세라티 MC12 등이 등장해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특이한 점은 과거의 슈퍼카 전쟁처럼 속도나 기록에 대한 경쟁은 살짝 버려두고 자신들이 가진 철학을 내세웠다는 점이다. 


자동차 기술이 상향평준화된 21세기에도 슈퍼카 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과거의 시끌벅적하고, 소모적이며, 기술집약적인 경쟁 대신 이제는 효율성을 강조한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전기차들이 과거 내연기관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혹자는 이런 변화에 대해 내연기관이 아닌 동력원을 과연 슈퍼카라는 기준에 부합할까?라는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시대가 변했으니 경쟁의 도구도 변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예전처럼 자동차 회사들의 뜨거웠던 열정이나 불꽃 튀는 경쟁을 볼 수 없다는 건 자동차 마니아들에게는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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