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이야기
한국에서 프랑스차의 이미지는 디젤 엔진을 탑재한 강력한 연비 정도이다. 하지만 프랑스차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연비는 거들뿐 그들만의 색채와 기술력을 엿볼 수 있다. 지금은 보편화된 유압식 브레이크와 클러치를 가장 먼저 만든 곳도 프랑스이고 최초의 레이스가 열린 곳 역시 프랑스라는 점을 생각하면 프랑스차가 가장 홀대받는 곳이 한국이다. 세계 최초의 자동포탑을 만든 르노, 디자인의 혁신을 가져온 시트로엥(DS), 철공소에서 시작해 프랑스 국민차로 불리는 푸조까지 이들이 걸어온 역사만 나열해도 책 몇십 권쯤은 가뿐하게 나온다.
파리가 배경인 영화를 보면 어김없이 프랑스차가 등장한다. 아무래도 당연한 일이지만 프랑스차가 등장하는 영화는 늘 독특한 색감과 예술적인 터치, 그 안에 묻어 있는 사소한 디테일까지 어느 한 곳 튀지 않는 조화로움을 가득하다. 개인적으로 프랑스차가 가장 돋보였던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에릭 바나 주연의 2005년작 뮌헨을 꼽는다. 이 영화의 내용은 이스라엘 첩보 기관이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프랑스 등 유럽에 숨어있는 테러리스트들을 찾아내 암살하는 것이 주를 이루는데 1970년대 당시 거리 재현이나 소품 사용이 매우 뛰어나다.
이중 자동차도 빼놓을 수 없는데 이탈리아에서는 피아트와 알파 로메오, 란치아가 한 앵글에 잡히기도 하고 프랑스에서는 르노를 비롯해 푸조, 시트로엥 등이 등장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프랑스 정보원인 루이가 타고 등장하는 네이비 컬러의 시트로엥 DS이다. 비가 내린 파리 시내나 파리 외곽 비포장을 우아하게 달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시트로엥에서 DS를 따로 분리해 관리하고 있지만 DS는(원래는 모델명) 여러 가지 의미로 20세기 자동차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모델이다.
푸조가 등장하는 영화로는 뤽 베송 감독의 택시 시리즈(1998년~2018년)가 유명하다. 프랑스의 국민 브랜드답게 푸조는 일상생활에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 있으며 ‘택시’라는 일상적인 소재를 아주 재미있게 풀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이병헌이 출현했던 영화 레드 2(한국명 레드 : 더 레전드)의 파리 추격전에서는 바이크를 따라가는 포르쉐 911의 뒤를 이어 시트로엥 2CV가 좁은 골목골목을 누빈다. 이 외에도 007 시리즈를 비롯해 다양한 영화에 프랑스차는 소소하지만 익살이 가득하고 서민적인 이미지로 나온다.
자타공인 자동차 종주국
유럽에서 자동차 종주국을 논할 때는 항상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이 서로 앞 다퉈 나온다. 이탈리아는 자동차의 기원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만든 태엽 자동차에 두고 프랑스는 포병 장교였던 니콜라 조제프 퀴뇨가 만든 증기차를 들고 나온다. 독일은 칼 벤츠가 만든 페이턴트 모터바겐을 내세우지만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비해 등장시기가 늦었다. 페이턴트 모터바겐이 현재 공인되는 최초의 내연기관 엔진 자동차가 맞긴 하지만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우리는 독일보다 훨씬 전부터 그런 거 있었어 하지만 특허를 내지 않았을 뿐’ 하는 반응을 보인다. 이중 공식적인 최초의 자동차로 인정받는 차는 바로 프랑스의 퀴뇨가 만든 증기차이다. 그만큼 자동차 역사에서 프랑스가 갖는 위치나 역할, 족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다.
우선 프랑스차는 철저하게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발전해 왔다. 이 부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데 배기량을 늘리거나 높은 출력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이다. 혹자는 프랑스차의 숫자만 보고 ‘기술력이 없어서’라고 비아냥대기도 하지만 이것을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이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인데 최초의 모터스포츠 이벤트가 프랑스에서 열렸고 장 알레시와 알랑 프로스트 같은 걸출한 F1스타, WRC를 휩쓴 세바스티앙 오지에와 월드 챔피언 9회를 기록 중인 WRC의 살아있는 전설 세바스티앙 로브 같은 드라이버들은 프랑스 자동차 회사와 역사를 만들기도 했다.
시트로엥이 만든 트락숑 아방(1934~1956)이나 2CV(1948~1998), 푸조의 2시리즈(1929년~현재), 르노의 4CV(1947~1961)나 도핀(1956~1967)) 같은 소형차들은 프랑스 서민의 정서가 그대로 녹아 있다. 실제 유럽 판매량 1위부터 10위까지는 대부분 소형차들이다. 우리나라처럼 중대형 승용차가 많이 팔리는 기형적인 모습은 볼 수 없으며 이중 프랑스 소형차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시트로엥의 2CV 같은 경우는 개발 콘셉트 자체가 매우 재미있는데 비포장이 많은 농경국가인 프랑스 농부들이 내리고 타기 편하도록 천장이 높은 독특한 구조(오리라고 불림)를 기반으로 계란을 싣고 비포장을 달려도 깨지지 않을 정도의 서스펜션을 채택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이유 덕에 프랑스차 하면 작고 잘 달리고(빠른 것과는 다른), 특유의 움직임을 가진 재미있는 핸들링이 특징이다.
커피 그라인더와 후추통, 농기구, 자전거, 심지어 포탄과 라디오까지 만들던 동네 철공소에서 시작한 푸조는 프랑스차의 핸들링을 가장 설명하는 독보적인 회사기도 하다. 흔히 고양이 발바닥이라 불리는 푸조의 서스펜션은 평지에서는 승차감 중심의 부드러움을 선사하지만 코너가 나타나면 마치 발톱이 나오는 것처럼 차체의 자세를 잡아 준다.
프랑스차가 실용적인 서민의 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독일 회사 산하로 들어갔지만 부가티는 세대를 막론하고 가장 고급스럽거나, 가방 빠르거나, 가장 비싸거나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회사다. 클래식카 분야에서 알파 로메오와 함께 가장 인정받는 브랜드인 부가티는 독일 회사에 인수된 이후로도 그들만의 도전을 계속이어 나가고 있다.
또한 디자인 분야에서도 프랑스차는 독창적인 느낌이 가득하다. 투박한 미국차, 엔지니어링에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독일차에 비해 프랑스차의 디자인은 감각적이고 세련됐으며, 구석구석에 그들이 가진 유머와 해학이 살아 있다.
프랑스차는 전쟁과 오일쇼크를 겪으면 철저하게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혹자는 프랑스차의 이런 특징이 새로운 기술에 인색하고 기술개발에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오히려 프랑스 자동차 제조사들은 ‘그렇게 안 해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프랑스 자동차 회사들이 나태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가 알고 한국시장에 비해 유럽시장 자체가 성격이 다를 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발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