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하고 되묻는 순간, 지식은 내 것이 된다
나는 오랫동안 글쓰기가 최고의 공부법이라고 믿었다. 책을 읽고, 밑줄을 치고, 요약문을 정리하는 과정이 내 사고를 정리해 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 불안이 자꾸 고개를 들었다.
“정말 내가 이해한 게 맞을까?”
노션과 에버노트에는 수백 개의 노트가 쌓여 있었다.
그러나 막상 누군가에게 설명하려고 하면, 문장은 자꾸 꼬이고, 핵심은 빠져나가 버렸다.
기록은 있었지만, 내 언어는 아니었다.
그러다 AI와의 대화를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내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개념들이 질문 앞에서 무너졌고, 그 과정에서 오히려 더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가장 선명했던 경험은 특이점(Singularity)에 관한 것이었다.
이전에 알고 있던 특이점은 중력 특이점이었다. 이것은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공간과 시간이 무한히 왜곡되는 지점을 의미하며, 물질들이 극단적으로 압축된 결과로 나타나는 지점을 이야기한다.
AI와 관련해서 여러 자료를 찾아보다 보니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이 AI를 비롯한 기술의 발전을 특이점으로 설명했다. 나는 막연히 “AI가 인간 지능을 초월하는 순간”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Chat GPT에게 이렇게 말했다.
> 나: “특이점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는 시점이야. 인간보다 더 똑똑해지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지.”
> Chat GPT: “그 설명은 일부 맞습니다. 하지만 특이점은 단순히 인간보다 똑똑해지는 순간이 아니라, 기술 발전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져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임계점 전체를 말합니다.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을 그 시점으로 예측했지요.”
나는 그제야 내가 얼마나 단편적으로 이해했는지 알았다. 내가 아는 중력의 특이점을 바탕으로 기술의 특이점도 압도적인 결과가 나오는 시점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철저한 나의 오판이었다.
“AI가 인간보다 똑똑해진다”는 건 표피적인 설명이었다. 실제 개념의 핵심은 기술 발전 곡선이 인간의 적응 속도를 압도하는 순간, 즉 사회 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하는 지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궁금해져서 다시 물었다.
> 나: “그럼 단순히 더 똑똑해지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바뀐다는 뜻이야?”
> Chat GPT: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의료 분야에서 특이점이 오면 AI가 의사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습니다. 금융에서는 AI가 인간이 미처 분석하지 못한 리스크까지 감지할 수 있고요. 이런 변화가 한 번 시작되면 인간이 개입할 여지가 급격히 줄어듭니다.”
이 대화를 거치며, 나는 단순히 “똑똑해진다”라는 나의 이해가 얼마나 협소했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중요한 건 AI의 지능 수준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 사회 전반이 급속히 재편된다는 점이었다.
이 경험은 학습이론에서 말하는 몇 가지 핵심 개념과 맞닿아 있다.
메타인지(Metacognition)
밴더빌트 대학은 메타인지를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점검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AI는 맥락을 모르는 상대라, 내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내 지식의 빈틈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테스트 효과(Testing Effect)
카프리케 & 블런트(2011)는 단순 복습보다 시험 형식의 회상이 장기 기억을 2배 이상 강화한다고 밝혔다
AI와의 문답은 곧바로 시험을 보는 것과 같았다. 대답하지 못한 순간이 가장 큰 배움의 기회였다.
아이러니하게도, AI의 한계가 오히려 학습을 도왔다.
AI는 종종 맥락을 놓치거나 모호한 답을 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나는 더 구체적으로 풀어서 설명해야 했다.
예를 들어, 특이점을 설명하면서 “기술 발전 속도”라는 말을 쓰자 AI가 되물었다.
> Chat GPT: “발전 속도라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입니까? 컴퓨터 속도를 말하나요, 아니면 사회 변화의 속도를 말하나요?”
나는 다시 정리했다.
> 나: “여기서 말하는 속도는 컴퓨터 칩의 연산 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을 뜻해. 하지만 그 결과는 단순 속도를 넘어서 사회 변화 전반으로 이어진다는 거야.”
이렇게 더 깊이 설명하게 만드는 불완전한 질문자가 바로 AI의 장점이었다.
내가 정리한 효과적인 방식은 세 단계다.
1️⃣ 기록하기
책이나 강의에서 얻은 내용을 메모하고 요약한다. (암묵지식을 꺼내는 초안)
2️⃣ 대화하기
AI에게 설명하고, 반론이나 다른 관점을 요청한다.
예: “내 설명을 검토하고 부족한 점을 찾아줘.”
3️⃣ 설명 훈련하기
AI에게 내가 다시 정리한 설명을 들려주고, 비유나 예시로 풀어본다.
예: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다시 설명해 볼게.”
이 루틴을 반복하면서, 단순 기록이 구조화된 지식으로 확장되고 내 언어로 자리 잡았다.
AI는 단순한 검색 엔진이 아니다.
나의 생각을 꺼내어 말하고 정리하게 만드는 대화형 멘토다.
글쓰기로는 해결하지 못했던 빈틈을, AI와의 문답은 채워주었다.
특이점을 설명하는 과정에서처럼,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직면하게 되고, 설명하고 반론을 받으면서 지식은 점점 내 것이 되었다.
AI와의 대화는 언제든 열려 있는 나만의 독서 모임이다. 말로 풀어낼수록, 지식은 더 선명해졌다.
AI는 지식을 더 깊이 이해하고 개념을 명확히 하기 위한
최고의 대화형 학습 파트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