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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회남자 淮南子> - 1. 경계에 선 자

SF 장편소설 <청록의 시간>

by 카시모프
청록의시간1.jpg


기원전 130년, 한漢제국 회남.




“세상이 이리도 어지러운데, 청록의 강물은 도도히 흐르는구나.”


중원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강, 회수淮水. 한 도령이 나귀를 타고 그의 종과 함께 회수의 둔치를 따라 걷고 있었다. 도령은 고풍스러운 비단옷을 걸치고, 뽀얀 얼굴을 한 채로 강의 녹음을 즐기는 중이었다. 한편, 나귀를 끌고 가는 그의 나이 든 종은 불안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도… 도련님. 어찌하여 이곳까지 오자 하십니까? 이 주변은 흉악한 홍가 패거리가 설치는 곳입니다. 유랑하기에 적당한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쇤네는 겁이 나 죽겠습니다.”


종이 도령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나귀를 돌리려 하자 도령이 호통을 쳤다.


“네 이놈, 하령아! 홍가 패거리가 나타나면 네가 나를 지켜주면 될 일이 아니냐. 노비가 된 너희 가족을, 내 아버님께서 이곳 회남으로 데리고 오신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네 역할을 다해야 할 터인데…. 내 너의 공부를 모르지 않거늘, 어찌 그깟 산적 패거리 따위에 겁을 먹느냐? 그래가지고 사내라 할 수 있겠느냐? 나 숙영은 대대로 왕을 모신 진가의 장손이다. 그 정도는 무섭지 않으니라!”


하령은 어이가 없어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아무리 무술에 뛰어나고 공부가 깊다고 해도, 여럿이 한 번에 덤비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 또 화살을 쏘아대면 무슨 수로 막아낸단 말인가.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령을 데리고 이런 위험한 곳에 유랑이라니. 만약 위험한 일이 생기면, 그저 재빨리 도망가는 것이 목숨을 부지하는 길이다.


하령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한 손으로는 허리에 찬 검 손잡이를, 다른 한 손으로는 나귀의 고삐를 말아 쥐고 있었다. 둘 옆에는 청록색으로 물든 회수가 말없이 흘렀다. 황하와 장강에 비할 바는 아니나, 굽이쳐 흐르는 이곳 회수도 꽤나 넓고 미관을 자랑하는 강이다. 하지만 하령은 그 아름다움을 즐길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때, 하령의 눈에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저 멀리 바윗돌 위.


“도련님, 저기 웬 여인이….”


숙영은 그 여인의 모습을 보고 호기심이 동했다. 멀리서 봐도 여인의 도도한 자태가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숙영의 눈이 빛났다.


“음…. 나도 보았느니라. 인적이 드문 이런 곳에서의 인연이라니, 신비하고 기묘한 일이 아닐 수 없도다. 자, 어서 가 보도록 하자!”


“그… 그만두십시오, 도련님. 이런 곳에 여인네 혼자 앉아 있다니, 필시 귀신이나 요괴일 것입니다!”


숙영은 하령을 돌아보며, 하찮다는 듯이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쯧쯧, 하령아. 남월의 장수였다는 놈이 그리도 겁이 많아서야. 귀신이나 요괴는 아이들이나 무식한 백성들이, 겁먹고 윗사람의 말 잘 들으라고 지어낸 이야기니라. 나와 같은 대장부는 그런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말 안 듣는 게 자랑이냐….”


하령은 작게 중얼거렸다.


“뭐라… 했느냐?”


“아닙니다, 도련님. 나귀 새끼도 겁을 먹고 말을 안 듣지 뭡니까. 야이 미친 나귀 놈아, 도련님 말씀을 들어야지! 이럇!”


숙영과 하령은 천천히 여인이 앉아 있는 곳 가까이까지 갔다. 여인은 조금 전 물에 들어가 몸을 씻고 나온 것인지, 젖은 긴 머리칼을 말리고 있었다. 여인의 옷에는 붉은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그 옆에는 큰 칼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해는 벌써 뉘엿뉘엿 저물고 갈대와 버드나무는 산들바람이 지나가는 결을 따라 살랑거렸다.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 앉아 있는 여인의 모습은 그림에서 금방이라도 나온 듯 신비했다.


숙영은 나귀에서 내려, 뒷짐을 지고 슬그머니 다가갔다. 헛기침을 두어 번 하자, 그 여인은 고개를 돌려 숙영을 바라보았다. 여인은 냉기가 풍길 정도로 무표정했으나 눈은 옥을 깎은 듯한 청록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눈빛은 마치 회수가 굽이쳐 흐르는 듯 깊고 맑았다. 주변 공기가 시릴 정도의 아름다움이었다. 숙영은 가슴이 뛰는 것을 가다듬고 여인에게 말을 건넸다.


“어흠, 흠. 날은 저무는데, 여인이 이런 곳에 혼자 다니면 괜한 일을 당할까 염려되오. 낭자는 어디에 사는 누구시오? 내 그대를 집까지 모셔다 드리리다.”


여인은 대답을 하지 않고 숙영을 빤히 바라보다, 옥 같은 눈을 굴려 옆에서 긴장하고 있는 하령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전쟁을 겪은 하령은 그 차가운 눈빛에서 섬뜩함을 읽었다. 인간이 인간을 보는 눈빛이 아니다. 이상하게도 윗 존재에게 관찰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숙영은 그런 느낌은 전혀 모른 채로 허리를 세우며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어허, 장부가 먼저 말을 걸었으면 여인은 응당 답을 해야 할 것이 아니오?”


“도… 도련님,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 그만 가시지요.”


숙영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며 하령의 배를 툭툭 쳤다.


“하령아, 보아라. 그냥 평범한 여인이다. 사내자식이 말린 대추마냥 바싹 쪼그라들어가지고는, 쯧쯧. 너 같은 것을 데리고 어디 여인에게 농이나 치겠느냐?”


“니미, 지는 말똥버섯 같은 게….”


하령이 작게 중얼거렸다.


“뭐라… 했느냐?”


“아… 아닙니다. 나귀 새끼가 똥을 지리고 있다 했습니다. 휘유, 냄새!”


그때 여인이 침묵을 깨고 입을 떼었다.


“… 공께서는 뉘신지요?”


숙영과 하령은 놀라 여인을 돌아보았다. 여인의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또박또박했다. 어딘지 이 지역 사람은 아닌 것 같았지만 곱게 자란 기품을 느끼게 했다. 차가워 보이지만 단아한 용모와 말투는 숙영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숙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실례가 많았소이다. 나는 이 회남의 왕을 모시는 진가의 숙영이라 하오. 날이 좋아 이 주변에 유랑을 나온 참이지요. 혹 낭자의 함자를 여쭈어봐도 되겠소?”


“…외람된 질문이오나, 이곳 왕의 존함이 혹 유안입니까? 또한 작금은 어떠한 세상인지요.”


여인은 숙영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눈을 살짝 밑으로 깔며 되물었다. 그 눈길이 기이하여 숙영은 또 한 번 침을 꿀꺽 삼킨 후, 평정심을 찾으려 애쓰면서 대답했다.


“허허, 낭자. 세상일이야 언제나 그렇듯 누군가는 왕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죽고 썩어 흙이 되기도 하지요. 전쟁으로 나라가 서기도 하고, 나라가 없어지기도 하는 일은 흔한 세상이오. 그러나 근래에 회남은 태평성대하다오. 대왕께서는 전쟁보다는 학문과 지식을 갈구하시는 터라. 낭자께서 이곳의 예법을 잘 모르시는 것 같아 말씀드리면, 대왕의 존함은 그리 함부로 말하면 아니 되오. 허나 그 방자함 또한 낭자의 아름다움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구려. 어흠, 나는 세상일엔 관심이 없소. 그저 그대, 낭자의 안전이 염려될 따름이오.”


“유안이 이곳의 왕이라…. 그렇다면, 이 강은 황하와 장강 사이에 흐른다는 회수입니까?”


“그렇소. 이 강이 회수인 것을 모른다면 아주 멀리서 오신 듯한데…. 낭자께선 어디에서 오셨소?”


청록색으로 물들어 흐르는 강물 위로 붉게 흔들리는 노을의 윤슬이 내려앉아 반짝거렸다. 회수라 불리는 이 강은 황하가 흐르는 회북과, 장강이 흐르는 회남을 나누는 경계의 강. 중원의 겨울과 여름을 가르는 강. 경계에서 굽이쳐 흐르며 남북을 오가는 수많은 생과 사, 희로애락을 지켜보는 강이다.


경계의 존재는 하나를 갈라 둘이 되게 만들고, 또한 둘 사이에 걸쳐 양편을 오고 가서 둘을 하나 되게 만들며, 존재를 존재하게 만든다. 회수는 그렇게 중원을 존재하게 하는 중요한 강이다. 중원에 산다면 모르는 이가 없는 이 강을 어찌하여 모르는가. 그러나 여인은 숙영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더니, 금세 얼음이라도 녹일 듯 따듯한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소인, 아주 먼 서역에서부터 회남왕의 소문을 들어, 이렇게 힘들게 찾아왔습니다. 근자에는 대왕께서 세상에 없던 새로운 음식을 만드셨다 하니, 그것을 한번 맛보고 싶었을 따름이지요.”


“허허, 낭자께서도 두부의 소문을 들으셨구려! 대왕께서 여러 분야에 통달하신 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음식에도 조예가 깊으신 줄은 정말 몰랐소. 이미 회남의 많은 집들은 두부를 만들고 있다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가난한 백성은 먹기 힘들지만…. 두부 한 점에 고소한 황주 한잔 하면 그 맛이 기가 막히지요! 궁 근처에 가면 비싸지만 두부를 맛있게 하는 곳을 알고 있는데, 내 거기까지 낭자를 태워 드리리다! 어떻소? 어흠, 허나 그전에, 낭자의 함자라도….”


쉬익, 파악!


숙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화살 하나가 날아와 숙영과 여인 사이 땅에 푹 박혔다. 숙영과 하령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돌아보았고, 여인은 검을 검집 채로 들고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그들의 주변엔 십 수 명의 산적들이 빙 둘러 활을 겨누었고, 커다란 말을 탄 세 명이 그들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말은 그들의 바로 코앞까지 와 앞발을 들어 올리며 위협적으로 멈춰 섰다. 그러나 산적패가 지나가던 행인을 습격한다고 하기엔 그 살기가 갈대밭을 태울 듯 이상할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말에 탄 사내 중 덩치가 커다란 사내가 창을 뽑아 들고 여인을 가리키며 호통쳤다.


“네 이년! 그 검은 어디서 났느냐!”


숙영과 하령은 덜덜 떨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호… 홍가 패거립니다, 도련님!!”


숙영은 하령의 옷깃을 잡으며 살려다오, 살려다오 울먹거렸다. 하령은 어쩔 수 없이 검을 뽑으려 했으나, 말에 탄 다른 두 명이 재빠르게 창을 꺼내 하령과 숙영의 목을 겨누었다. 하령 혼자서 이들 모두를 상대할 순 없었다. 그리고 싸움은 기세가 중요한데, 이들의 이상할 정도로 원한 가득한 살기에 하령은 이미 눌려버렸다. 그때, 말을 타고 있는 덩치 커다란 사내가 여인에게 말했다.


“네가 들고 있는 그 검은 시황제께서 나의 증조부에게 하사하신 검이다. 진나라가 망하고 집안도 같이 망해 비록 지금은 이렇게 도적질이나 하지만, 언젠가는 대업을 이루고자 그 검만은 지키며 살고 있었고, 형님께서 그 검을 항상 지니고 다니셨다.”


여인은 검을 슬쩍 뽑았다. 그러자 말에 탄 사내는 조금 움찔거렸다. 여인은 사내를 신경 쓰지도 않고 검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진시황이 하사한 검이라…. 과연 명검이오.”


그 모습을 본 홍가는 눈꼬리가 범같이 치켜 올라가며 사방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쳤다.


“형님께서는 저 언덕 위에서 고깃덩이가 되었다! 같이 계시던 형수님도 머리는 어디 갔는지 없어지고, 사체는 곤죽이 되어있단 말이다. 그 검은 형님의 검이고, 네 옷은 형수님의 옷이며, 그 옷에 낭자한 피는 그들의 피가 아니더냐!!”


숙영이 다시 자세히 보니 여인의 옷에 그려진 매화는, 사실 매화가 아니라 붉은 피가 낭자해 튄 자국이었다. 숙영은 이 상황이 너무도 무서워 덜덜 떨며 그만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하령은 그 꼴을 보고 숙영에게 속삭였다.


‘아이 씨… 제 옷에까지 묻지 않습니까, 도련님!’


‘나 좀 살려다오 하령아…. 난 이렇게 죽으면 아니 된다….’


하령이 검을 잡으려 하자, 희번득하는 창끝이 하령과 숙영 두 사람의 목 끝에 닿았다. 창을 든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만히 계시는 게 좋을 겁니다… 나으리.”


홍가는 창끝으로 천천히 여인의 목을 겨누며, 옆에 있는 숙영과 하령을 힐끗 쳐다보았다.


“저런 버러지들에게 형님께서 당하셨을 리가 없다. 네년은 누구냐? 누가 형님을 그렇게 만들었느냐? 어서 바른대로 말하렸다!!”


여인은 고개를 들어 똑바로 홍가를 쳐다보았다. 그 눈에선 두려움의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씁쓸한 듯 눈을 내리깔고 미간을 추켜올리며, 가슴에 손을 얹고 조용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여인이 중얼거렸다.


“… 당신의 형님과 형수님은 소인의 몸 안에 있소. 뜻한 바는 아니나, 미안하게 됐소이다.”


홍가는 처음에 무슨 뜻인지 몰라 가만히 있다가, 점점 그의 눈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 눈에는 분노 반, 두려움 반이 섞여 있었다.


“형님을… 먹었단 말이냐!!!”


“글쎄, 뭐라 하든 결과는 다르지 않은 것 같소. 어차피 죽을 자들은 죽게 될 것이오.”


“…!! 네 이년…!!”


홍가의 창이 여인의 목을 두 동강 내려는 순간, 여인은 미끄러지듯 몸을 돌리며 순식간에 검을 거꾸로 올려 쳤다. 그 검은 홍가의 두 팔을 자르고 그대로 목을 푹 찔렀다. 그 검이 어찌나 빠른지 홍가는 검을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말에서 고꾸라졌다. 숙영과 하령을 겨누고 있던 두 사내는 놀라서 창끝을 여인 쪽으로 돌렸다. 하령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검을 빼어 들어 자신의 목을 창으로 겨누고 있던 사내의 겨드랑이를 뒤에서 찔러 베었다. 그때 여인은 숙영과 하령을 겨누던 다른 사내의 창을 동강 내며 하령 쪽으로 날아와, 목을 그대로 베어버렸다. 여인의 검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붉은 난을 그리듯, 공중에 선혈이 그어졌다. 여인은 하령의 옆에 착지한 후, 하령을 보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하령은 검을 고쳐 잡고 등을 돌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나머지 산적들을 주시했다. 하령의 온몸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이 여인은 누구인가…? 이런 검술은 수많은 전쟁 중에도 본 적이 없다…!”


순식간에 대장을 잃은 산적들은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다 그중 몇이 겨누고 있던 활시위를 놓쳐 화살이 날아왔다. 여인은 둥글게 검을 돌려 날아오는 화살을 모두 동강 냈다. 거짓말 같은 여인의 무공에 하령은 얼어붙어버렸다. 여인은 살기를 내뿜는 안광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위압적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더 해 볼 것이냐!!!”


그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에 산적 무리들은 모두 덜덜 떨며 활을 버리고 도망갔다. 산적들이 모두 사라지자, 그 여인은 익숙한 듯 검을 휘둘러 피를 털어내고 검집에 검을 넣었다. 여인은 하령을 돌아보고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심하시오. 그대들은 죽이지 않을 것이니.”


하지만 이미 숙영은 거품을 물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하령은 식은땀을 흘리며 들고 있던 검을 내렸다. 어디선가 코를 찌르는 냄새가 풍겼다.


“우리 도련님께서는 똥까지 지린 모양이오. 나귀 새끼마냥 아무 데서나 저런다니까. 그나저나, 당신은……. 회남왕을 죽이러 온 것이오?”


“… 죽이러 왔다면, 그 검으로 나를 막기라도 할 셈인가?”


하령은 입을 이죽거리며 대답했다.


“나는 본디 이곳 사람도 아니고, 남월에서 한나라와 싸우다 져서 잡혀 온 노비요. 이곳저곳 팔려 다니며 종노릇 하다가, 지금 주인께서 내 식솔들을 데려와 먹여 살려주시고 잘 대해주셔서 사는 데 불만은 없는 정도요. 당신이 우리 불쌍한 똥 도령에게 해를 가하려 한다면 모르지만. 난 여기 왕이 누구든 어찌 되든 내 알 바 아니오.”


여인은 피식 웃었다.


“당신들 덕분에 지친 삶이 조금은 재미있었소. 나는 두부를 먹고 싶었을 뿐이니, 너무 경계하지 마시오. 대신 당신들의 나귀를 좀 빌리겠소.”


“낭자가 홍가 패거리에게 무슨 일을 한 건진 모르겠지만, 그 일이 아니었어도 우리는 꼼짝없이 홍가 놈들에게 죽었을 것이오…. 살려주어 고맙소. 은인을 기억하고 싶은데, 혹 존함이라도 알려주실 수 있으시오?”


여인은 익숙한 몸짓으로 나귀를 타며 검을 거꾸로 돌려 허리춤에 찼다. 붉은 노을빛이 여인의 반쪽을 붉게 빛나게 만들었고, 하늘의 절반은 이미 밤이 되어 별이 떠오르고 있었다. 마치 여인은 낮과 밤, 그 경계에 서 있는 듯이 신비해 보였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여인은 하령을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마고. 내 이름은 마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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