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장편소설 <청록의 시간>
그날 이후로, 유안의 기행이 시작되었다. 유안은 신하들에게 이상한 물건들을 모으고 만들라고 하명했다. 하령은 상단의 노비로 일하며 여러 물건들을 다뤄본 경험이 있었으므로, 유안이 말하는 이상한 물건들을 찾고 모으는 데에 석공과 약초꾼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후, 자신이 그들을 통솔하기로 했다. 또한, 유안은 회남의 이름난 대장장이와 목수와 도공들을 불러 모았다. 유안이 그들에게 만들라고 한 물건들은 아주 세밀한 것들이었다. 필요한 물건을 만들기 위한 도면은 아주 정밀하게 제작되었으며, 그들은 그런 도면을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하령이 길을 떠나고 대장장이와 목수가 기를 쓰며 물건을 만드는 동안, 유안은 홍렬서원 뒤쪽 산 중턱에 인부들을 불러 굴을 팠다. 그곳엔 지하수가 흐르는 커다란 동굴이 있었고, 마고는 그곳을 넓혀 은밀한 내실을 지었다. 그 동굴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인부들에게 함구하라 명했다.
유안의 이런 기행이 계속되자, 학자들은 그가 기어이 진나라 시황제처럼 불로장생하기 위한 연단술에 빠져들었다고 생각하기도 했으며, 어떤 이들은 그가 회남국의 선대 왕처럼 무기나 군사를 몰래 만들어 모반을 꾀하는 것이 아닌가 수군거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게 무엇이든, 왕의 기행에는 마고가 뒤에서 술수를 부린 것이라 여겼다. 그 여인이 온 뒤에 이런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몇 달이 지나자 대장장이와 목수와 도공들은 자신들이 만든 물건을 유안에게 가져다 바쳤다. 유안은 그 물건을 유심히 살펴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쓸만한 것 같은데, 어떻소?”
그러자 유안의 뒤쪽에서 마고가 걸어 나왔다. 마고는 굉장히 세심하게 물건들을 들여다보았다.
“지금의 기술 수준으로는 굉장히 정교하게 만들었습니다만, 조금 더 정교해야 합니다. 여기 이 튀어나온 부분은 연마석을 이용해 얼굴이 비칠 정도로 더 매끄럽게 다듬어야 합니다. 상대적으로 도공의 솜씨는 흠잡을 데 없이 아주 뛰어납니다. … 하지만.”
마고는 도공이 만들어 가져온 돌에 작은 철을 올려보았다. 철은 가만히 올려져 있었다. 마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
“온도와 재료 함량을 잘 맞춰 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돌을 만드는 데는 아주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므로, 제가 직접 만들어 보겠습니다.”
유안은 마고의 정교하고 세심한 관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시오.”
그 광경을 본 대장장이와 목수와 도공들은 이 일의 책임자가 마고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마고가 유안을 조종하는 것이 분명했다. 대체 이 듣도 보도 못한 물건들은 어디에 쓰는 것인가? 마치 자신들의 기술을 아득히 넘는 물건의 한 귀퉁이 귀퉁이를 만들어 가는 듯했다.
마고는 도자기를 굽는 가마로 향했다. 그곳에서 마고는 가마의 온도를 재는 듯, 손바닥으로 가마 벽을 만져보며 직접 풀무를 이용해 불을 때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람의 모습이 아닌 것 같았다. 마고는 지치지도 않고 불을 때, 보통의 도자기를 구울 때보다 훨씬 센 불을 만들어 굽기 시작했다. 그리고 숫자를 세더니 만들어진 돌을 꺼냈다. 그렇게 몇 번이나 시도하더니, 마고는 그 돌에 쇳조각을 올려 보았다. 그러자, 쇳조각이 돌 위로 떠올라 공중에 멈추었다!
“이제 됐습니다. 모두들 제가 하는 것을 잘 보셨겠지요. 그대로 하시면 됩니다. 재료는 제가 정확한 함량을 재서 분류해 놨으니 그걸 쓰시면 됩니다. 저렇게 쇳조각을 올렸을 때, 위에 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돌을 하나 더 만들어, 하나는 가지고 궁으로 돌아갔다. 마고가 떠나자, 도공들은 우르르 몰려가 그 돌을 보았다.
“이게 무엇인가…. 꼭 자철석 같네.”
“아니야, 자철석은 철이 들러붙는 거지. 이건 밀어내고 있지 않은가.”
“그냥 밀어내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떠 있게 만들 수가 있나?”
“… 아무튼 마고 그자는 인간을 아득히 뛰어넘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아 솔직히 두렵네….”
“어떤가, 마고. 자네가 생각하는 ‘그 기계’를 만들 수 있겠는가?”
유안은 그을음 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마고에게 물었다. 마고는 얼굴을 닦으며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이 기계의 관건이었던 핵심 부품의 재료를 만드는 데에 방금 성공했습니다. 나머지는 생각보다 정교함이 조금 떨어지지만, 금으로 세공해서 만들거나 대나무와 진흙을 이용해 조립하면 얼추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고는 조금 전에 만든 돌을 보여주었다.
“이것을 간직하시며, 앞으로 몇 년간 이어질 일들을 참고 견디시옵소서. 주변에서 말도 많고 일도 잘 안 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일이란, 이루어질 것 같다가도 아니 되고, 아니 될 것 같다가도 이루어집니다. 설령 죽음이 눈앞에 있게 되더라도, 대왕께서는 포기하지 마십시오. 가장 어둠 속에 있을 때, 희망의 태양이 고개를 내미는 법입니다. 대왕께선 이미 이와 같은 훌륭한 경문을 수없이 알고 계시지만, 실제로 마음을 잡고 그것을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때는 이와 같이, 처음의 결심을 상기시켜 주는 물건이 필요합니다.”
유안은 그 돌을 받아 들었다. 조약돌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그것은 쇠 같기도 하고 돌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 돌이 손에서 밀려나는 것 같았다. 유안이 손가락에 낀 반지 때문인 듯했다. 잡고 있던 손을 놓자, 그 돌은 손바닥 위에 떠 있었다. 유안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때,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대왕이시여, 하령이 돌아왔사옵니다!”
유안은 정신이 번쩍 들며 반쯤 감은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유안은 자신도 신선이 될 것이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렇구나. 과인이 직접 나가 보겠다.”
하령은 수많은 각종 진귀한 돌과 약초, 약병, 꽃, 버섯 등을 실은 수레를 대동하고 궁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들을 위해 몇 달 동안 회남을 넘어 회북까지 다녀온 이도 있었다. 하령은 이 모든 것이 정말 불로장생 묘약을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이미 시황제처럼 거기에 몰두하다 몰락한 선례가 있지 않은가. 아니다. 조금은 다를지도 모른다. 마고, 저 여인은 보통 사람과 다르다. 선녀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말을 따르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 아닐까? 하령의 머릿속엔 온갖 생각이 맴돌았다.
“어서 오시오, 무위장군. 길은 힘들지 않았는가?”
유안이 궁 밖으로 나오며 하령을 맞이했다. 유안의 뒤에는 마고가 따라 나오고 있었다.
“소신 무탈히 다녀왔습니다. 일러주신 물품들을 최대한 상급으로 구하였지만, 한번 확인해 보시옵소서.”
마고는 앞으로 나와 하나씩 확인했다. 돌을 깨 보고 버섯을 먹어보며 이것저것 살폈다. 그리고 만족한 얼굴로 하령에게 말했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품질이 좋아, 제가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물건들은 제가 일꾼들을 시켜 각 일터에 가져다 놓겠습니다.”
“대왕이시여, 말씀하신 일을 한 가지 더….”
하령의 말을 들은 유안의 얼굴빛이 변하였다.
“이리 가까이 오라.”
하령은 유안의 옆으로 가 귓속말로 아뢰었다.
‘오는 길에 장안에서 회남의 이야기들을 전해 들었는데, 대왕께서 불로장생의 묘약을 만들려고 한다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아마 천자께서도 그 소문들을 아셨을 것입니다.’
‘… 알았다. 가서 쉬도록 하여라.’
마고는 산 중턱의 굴에 들어가 대장장이와 목수가 가져온 것들을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꼬박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십 명의 인부들이 동원되었다. 그들은 그 안에서 만드는 것에 대해 함구하도록 지시를 받았으나, 사실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것이 무언지도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저 사람들은 마고가 산에 틀어박혀 있자, 그 산을 마고산이라 불렀다.
1년이 지나, 유안은 ‘그것’이 완성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험하진 않았지만 조금 가파른 길이었다. 수십, 수백 번은 오른 산길이지만 오늘은 한결 바쁘게 올라갔다. 신선의 길을 만나는 것이니까. 안 그래도 너무 연단술에 집착한다는 소문이 돌아 백성들도 신하들도 수군대는 터라, 유안은 요 1년 동안 산에 얼씬도 하지 않았었다.
산 중턱에 올라서자, 하령이 동굴 앞을 지키고 있었다. 하령은 유안을 보자 허리를 숙인 후, 동굴 안 한쪽으로 같이 들어갔다.
“이쪽입니다. 외부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보시다시피 병사들이 각 길목마다 지키고 있습니다.”
유안은 들떠있었지만, 문득 자신의 행실이 조금 걱정이 되어 뜸을 들이다 하령에게 살짝 물었다.
“무위장군. 자네가 보기엔 과인이 공연한 일을 자초하고 있다고 보는가?”
하령은 등불을 들고 내리막길을 묵묵히 앞장서서 걸어가고 있었다.
“대왕이시여. 소신은 그저 무관일 뿐이옵니다. 대왕께서 하시려는 일에 대해 미천한 소신이 어찌 알겠사옵니까. 다만 저는 천자의 눈이 염려되옵니다. 그 소문으로 인해 천자께서도 연단술이나 불로장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고 합니다. 만약 대왕께서 하시는 일이 성공한다면, 천자께서는 이 회남국과 대왕께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실지…. 소신은 그저 그것이 두렵습니다.”
유안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 역시 그러한가…. 하지만 과인은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했네. 보지 못하던 곳에 한 발짝 내딛는 일이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이것이 후대에 어떻게 평가될 것인지, 어떤 일을 가져오게 될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천자께서는 유교를 이념으로 삼으시면서도, 과인의 책을 받아들여 주실 정도로 군자의 도량을 갖추신 분이지. 그것을 믿는 수 밖에.”
동굴 안쪽은 꽤나 넓었다. 조금 더 걸어가니, 나무로 만든 커다란 문이 보였다.
“여기입니다. 이 석실 안쪽에 마고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았네.”
유안이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컴컴한 석실 안쪽에 거대한 그림자가 어렴풋이 보였다. 등불이 흔들거리며 윤곽이 더 드러나자, 유안은 그것을 보고 얼어붙었다. 언젠가 길을 지나다 돌 속에서 나온 그것의 유해를 본 적이 있다. 저것은 용이다. 인간 따위는 하찮게 짓밟을 수 있는 신이요, 하늘을 부려 구름을 만들고 비를 내리게 하며 태풍을 불러오는 신이요, 모든 곳의 태초와 멸망에 함께하는 바로 그 신. 거대한 용이 긴 몸으로 석실 전체를 둥글게 감싸 똬리를 틀고 있었고, 그 앞에 마고가 뒤돌아서 있었다. 마고는 유안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뒤돌아 석실 안쪽 등불들에 더 불을 붙였다.
석실이 환해지자, 용의 모습이 더 드러났다. 그것은 정말 용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거대한 똬리 같은 것이 둥글게 석실을 감싸고 있었고, 가운데에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대나무와 토기, 나무 톱니바퀴와 바퀴, 각종 쇠붙이 등으로 만들어진 용의 머리 같은 것이 의자를 잡아먹을 듯이 감싸고 있었다.
“마고. 이… 이것이 무엇인가?”
“놀라셨습니까. 이것은 옥체를 변화시켜 ‘청록의 시간’을 여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이옵니다. 용을 닮은 이 둥근 몸체는 아주 먼 후대에 ‘입자가속기’라 불리게 될 부분이지요. 소인은 많은 곳을 여행하며, 소인을 만들어낸 이들의 기술이 없는 곳에서 어떻게 하면 ‘청록의 시간’을 같이 여행할 인간의 몸을 만들 수 있을지 오랜 시간 연구했고, 이것이 그 답입니다. 인간의 몸을 바꾸는 일은 연단술에 나오듯 불로초나 선단을 만들어 먹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어려운 일이지요. 약초는 직접 혈관에 넣을 것이며, 연기를 마셔야 하고, 이 거대한 원형 기구로 만들어진 빛을 대왕께 비출 것이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꼭 필요하나 변화를 보조하는 것들일 뿐, 이 일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마고는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그릇에 담긴 작은 덩어리를 내밀었다. 그것은 얼핏 연한 두부처럼 생겼지만, 살짝 노란빛에 붉은 기가 돌았다. 핏기 어린 살덩이처럼 보였다. 유안은 애써 침착하며 물었다.
“이것은 작은 두부 같은데… 마치….”
유안은 마고의 대답을 듣고 하마터면 다리가 풀려 쓰러질 뻔했다.
“그건 소인의 뇌 조각이옵니다. 그것을 드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