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대하여 (2)

2부 - 언젠가는

by 박경민


if 말고 while의 소제목은 모두 음악입니다.

왜 음악을 사용했는지에 대해서 써두려고 합니다.

감성은 나이를 먹으면 변하니,

나중에 제가 '왜 이 음악을 사용했지?'라고 묻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제목으로 사용한 곡들로 PlayList도 한번 만들어 봤습니다.

Playlist [if 말고 while] 사랑의 반복을 닮은 노래 - YouTube


음악의 결을 따라 이야기를 쌓아가거나, 이야기에 맞는 것을 찾기 위해 음악을 골라 듣던 시간들이 생각나네요.

기회가 되신다면, 음악도 한번 즐겨보시길...




Act II ― 언젠가는

7. Everything Happens to Me, 티모시 샬라메


훈의 서사에는 재즈를 활용하고 싶었다.

재즈는 잘 몰라서 이곡 저곡을 찾아가면서 들었다.

그러던 어느 주말 우연히 티비에서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을 봤다. 티모시 살라메가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장면, 사랑이 자꾸만 엇나간다고 노래하는 남자.

바로 훈의 서사 첫 장면이 정해졌고, 가사를 본문에 넣었다.


I've telegraphed and phoned

and sent an airmail special too

Your answer was goodbye

and there was even postage due

I fell in love just once

and then it had to be with you

Everything happens to me


…단 한 번 사랑에 빠졌는, 그게 하필 너였어

모든 불행은 꼭 나에게만 일어나지



8. 비밀의 화원, 이상은


훈에게 E와의 만남은 기적이지 않았을까?

두 사람이 서로를 처음 마주 보는 순간이 극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닫힌 문을 열고 누군가에게로 향하기로 결정한 순간, 그리고 서로를 마주 보는 둘...

그래서 아래와 같이 만남을 순간을 적었다. 극적으로 읽혔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였다.

플랫폼 벤치에 앉아 있는 여학생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포니 테일로 묶은 머리,

가을의 포근한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피부,

허리를 곧게 편 채 앉아 있는 실루엣.

훈은 단번에 알아챘다.
E였다.

그녀가 급행열차를 타기 위해 벤치에서 일어서는 순간, 훈도 무의식적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전철의 문이 닫히려는 찰나—훈은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문틈 사이로 밀어 넣었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스스로도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그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할 것만 같았다.

문이 닫히는 마지막 순간, 아슬아슬하게 몸은 빠져나왔지만 가방이 문에 끼어 버렸다.


“출입문이 닫힐 때는 손이나 몸이 끼이지 않도록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 방송이 요란하게 울리며 전철의 출입문이 다시 열렸다.

당황한 채로 서있던 훈은 재빨리 가방을 잡아당겼고, 전철에 타고 있던 사람들과 플랫폼에서 급행열차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를 향했다.

그녀 역시 몸을 돌려 조용히 눈길을 건넸다.

가방을 빼낸 훈은 먼지를 툴툴 털며 고개를 들었고, 이내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그녀 뒤로 급행열차가 플랫폼을 따라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살짝 바람에 흔들렸다.


이 만남 이후 둘은 가까워진다.

E 역시 전부터 훈을 마음에 두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비밀의 화원의 가사처럼 이 만남 이후, 훈은 그전과는 다른 훈이 되었다.


난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아

그대를 만나고부터

그대 나의 초라한 마음을

받아준 순간부터 랄라라릴라



9. 입술이 달빛,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훈과 E의 첫 키스 장면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2006년 홍대 롤링홀을 떠올렸다.

막시밀리언 헤커 공연을 보러 갔던 그날, 게스트로 무대에 섰던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를 처음 보았고, 그날 이후 한동안 그들의 음악을 즐겨 들었다.

훈의 대학 시절은 마침 그 무렵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E와의 관계가 점차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그 시절의 공기를 넣고 싶었다. 그 공연에서 소아밴이 '입술이 달빛'이라는 곡을 불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첫 키스라는 순간을 상징하기엔 이 제목만큼 정확한 단어는 없었다.

이곡은 이후 Hidden Track에서 다시 등장한다. E의 기억을 통해...


한참을 나란히 걷던 두 사람은, 단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에 나란히 앉았다.

겨울밤의 묵직한 달빛 아래서, 그녀가 조용히 훈을 바라보았다.

훈도 고개를 돌렸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달빛이 그녀의 입술 위로 얇게 내려앉았다.

그 순간, 훈은 마음 한구석이 조급하게 뛰었다.

‘혹시 내 착각일까? 지금 이 온기가, 나만의 환상이라면?’

그를 스치던 찰나의 불안이 머릿속에 자리 잡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다가와 훈의 목도리를 살짝 잡아당겼다.

그 짧은 움직임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10.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코나


우밤당낮.

고등학생 때 이곡을 들으며, 첫사랑 그리고 함께하는 밤을 상상해보곤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의 밤을 다루는 회차에 이 곡을 제목으로 먼저 정하고, 본문을 후에 적었다.

굉장히 달콤하다고 생각되는 음악이고, 가사도 소중함에 대한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훈은 어렸고 서투른 사람이었다.

어리고 서툰 남자에게 사랑의 감각과 사랑의 마음은 구별해 내기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 어쩌면 생각보다 그런 사람이 많을 수도 있고...


그날 밤, 훈은 사랑을 했다.

그저 안아주고, 안기고, 그렇게 가만히 숨을 섞는 일.

어쩌면 지금처럼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순간이 진짜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훈은 옆에서 잠든 E의 얼굴을 바라보며, 잠들기 전까지 몇 번이고 그 생각을 되뇌었다.

그것이 사랑에 대한 오해인 줄도 모른 채.



11. Almost Blue, Chet Baker


역시 재즈다.

이 곡은 모든 감정이 식어버린 뒤, 마지막 남은 온기마저 조용히 사라지는 순간에 흐르는 음악처럼 들린다. 모든 불행이 꼭 자신에게만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Blue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훈의 문장들은 어쩌면 나쁜 남자처럼 읽힐지도 모른다.


훈은 요즘 자신이 젊은 여자에 집착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것은 그들이 특별히 더 아름답거나, 더 매력적이어서가 아니었다.

단지 그게 좋았다.

스물한 살쯤의 순수함.

아직 아무것도 모를 때.

인생도, 사랑도, 자기 자신도.

그렇기에 그들과 관계를 맺을 때면, 온전히 그 순간에만 몰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는 사랑이 무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남자였을 뿐이다.

나이는 먹었지만, 여전히 어리고 서투른 남자아이.

혼자 있을 때면, Almost Blue처럼 보이는 사람.

그래서 그는 한때 뜨거웠던 젊음과 청춘을 아직도 붙들고 있는지 모른다.



12. 그대 춤을 추는 나무 같아요, 카더가든


여기서부터는 훈과 E의 사랑이 서서히 식어가는 이야기다.

그리고 앞에도 언급했듯 이들의 사랑이 식어가는 이유는 훈이 어리고, 서투른 남자였기 때문이다.

카더가든의 나무 가사에는 아래와 같은 문장이 나온다.


그대 춤을 추는 나무 같아요

그 안에 투박한 음악은 나예요


이번 회차 제목은 '그대 춤을 추는 나무 같아요'지만, 실제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그 안에 투박한 훈의 모습이었다. 카더가든의 나무라는 곡이 주는 사랑 노래이며, 이별 노래 같은 느낌도 글의 내용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훈과 서서히 이별을 준비하는 E가 아직은 함께하고 있는 시간.



13.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잔나비


결국 E는 훈을 떠난다. 훈은 E를 붙잡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헤어졌다고 해서, 실패한 사랑이라고 해서 그것이 뜨겁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헤어졌다고 해서, 실패한 사랑이라고 해서 그것이 불 품 없는 기억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노래의 가사처럼 분명 또다시 찾아오기 때문에 우리는 이별도 사랑만큼 잘해야 한다.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 품 없지만

또다시 찾아오는 누군갈 위해서

남겨두겠소


하지만, 훈은 그러지 못했다.

이별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이후 공허한 while 루프만을 반복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훈은 생각했다.

‘E와의 시간, 추억, 그리고 내 마음을 어디쯤에 내려놓아야 할까.’

‘그녀는 지금, 어디쯤에 있을까.’

‘그리고 나는, 이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14. No Distance Left to Run, Blur


훈은 시애틀로 유학을 떠났다.

난 시애틀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회색 하늘과 축축한 공기 그리고 비가 훈의 마음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제목을 볼빨간사춘기의 Seattle Alone으로 정했었다.

하지만, 훈의 유학 생활을 계속 써 내려가며 훈의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니, Blur의 No Distance Left to Run이 더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남지 않았으니까. 곡의 분위기도 좀 더 blue 하다.

그리고 내가 연애소설을 쓸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 계기가 Blur였다. (BadHead)


I knew it would end this way

I hope you're with someone who makes you feel that this life is the night

And it settles down, stays around spends more time with you

I got no distance left to run


위의 가사처럼 훈은 E의 곁에 머물며 그녀의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Intermission II : My Foolish Heart, Keith Jarrett


인터미션 2, 드디어 훈과 미연이 시에나라는 공간에서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게 되는 첫 장면이다.

그들은 각자 다른 이유와 마음을 가지고 이곳을 찾아왔다.

둘 다 어설프고 투박한 마음을 갖고 있었으므로 My Foolish Heart로 제목을 정했다.


미연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사랑에 조건을 걸어야만 했고,

훈은 스물한 살의 그림자에 갇힌 채 감정 대신 감각만을 붙들고 있었다.

처음에 글을 쓸 때 그런 두 사람이 만나, 사랑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을 생각했는데 이제야 둘이 만났다. if와 while이라는 서로 다른 상황에 빠져있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1부와 2부를 썼고, 드디어 3부에서 둘이 if와 while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을 if문과 while문으로 정의하는 것 또한 어쩌면 어리석은 일일지 모른다.

사람의 마음을 코드 몇 줄로 표현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 어리석은 언어가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한 진심 어린 시도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소설 <if 말고 wh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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