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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표류자 Oct 07. 2023

오래 보게 해 주세요

[12주차] 2023년 5월 22일

나는 원래 소원 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소원을 빈다 해도 그것을 이뤄 줄 수 있는 신 따위의 존재가 나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나의 소원은 내 안에서 시작되어 내 안에 머무는 일시적이고 공허한 외침일 뿐이고, 다른 무언가에 닿지 못하고 사라져버리는 것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소원이란 무언가를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라기보다는, 스스로에게 내리는 일종의 명령 같은 것이다. 그러니 소원을 빌어봤자 저절로 바뀌는 것은 없다. 이를테면, '이번 시험 잘 보게 해주세요.'라는 소원은 '지난 시험보다 더 열심히 해서 꼭 성적을 올려야 한다.'라는 자기암시적이고 당위적인 명령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일 년에 딱 하루 있는 생일날, 촛불을 끄기 전 소원을 비는 시간 또한 같은 이유로 그리 내키지 않았다. 소원을 빌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지못해 끄집어내는 소원은 매년 같았다. '건강하게 해주세요.' 그 짧은 문장이 정처 없이 내 안에 돌아다니는 동안 얼른 촛불을 끄곤 했다. 정말 건강해질 수 있을지는 늘 의문이었지만 말이다.


‘오늘의 미션: 나무를 세 번 두드리고 나무에게 소원 빌기’


오늘 나무를 보러 가는 동안에도, 나무 앞에 서서도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나를 위한 소원을 빌 기회는 일 년에 한 번은 무조건 돌아오기에, 이번 기회만큼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소원을 빌고 싶었다. 그래서 요즘 내가 가장 마음을 두고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 내가 오래 함께 하기를 바라는 존재가 있는지 고민해 봤다.


나에게는 매주 토요일마다 만나는 작고 소중한 아이들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늘 같은 시간에 아이들을 찾아가 함께 뛰어놀기 시작한 지 벌써 일 년이 되었다. 날씨가 좋으면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나가 아이들과 넓은 공간에서 자유로이 뛰어놀고, 때로는 같이 공연이나 전시를 보러 가서 아이들에게 특별한 기억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오늘 나는 나무에게 그 아이들을 오래 보게 해 달라고 빌었다.


힘든 시기가 오면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을 생각하며 한 주를 버틸 때도 있다. 키가 내 키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어린 아이들이지만, 그 어린 아이들에게 마음을 기대게 될 때가 있다. 아이들은 그만큼 한 명 한 명 소중한 존재들이다.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에는 모든 순간을 사진 찍듯 눈에 담으려 노력한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을 생각하다가 가끔 눈물 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아마 내가 아이들을 못 보는 날이 오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때문인 것 같다. 각자의 어떠한 사정으로 그 약속된 만남이 깨지는 어느 날이 올 것을 늘 두려워했었다.


이제 나무가 나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든든해졌다. 그런데 나무가 과연 내 소원을 들어줄까? 생각해보니 이상하기도 하다. 나무가 왜 내 소원을 들어줘야 하지?


나무가 나의 소원을 이뤄 줄 수 있게 하려면 나도 나무에게 무언가를 해 줘야 할 것 같아서, 나무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하고 왔다. 이번 학기가 끝나더라도 지금처럼 나무를 찾아오겠다고, 나무를 잊지 않으려 노력하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나무를 세 번 두드리며, 나의 소원과 함께 약속의 말을 건네고 돌아왔다.


'그 아이들을 오래 보게 해 주세요. 나도 나무 당신을 오래 볼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아무리 멀리 떠나게 되어도, 지금처럼 일주일에 하루는 여길 찾아와서 당신을 볼게요. 그러니 그 아이들을 오래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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