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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비 Apr 01. 2019

한국영화를 읽다_오발탄(1961)

전후 서울의 상처를 담은 문예영화

해방 이후 한국영화계에는 문예영화의 바람이 붑니다. 본격적으로 기업화되어가던 영화계는 정부의 지원정책에 힘입어 대중의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 수많은 작품을 쏟아냈습니다. 한편 질 좋은 작품으로 대중을 유혹하고 영화를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선 예술로 편입시키고자 한 시대 역시 1960년대인데요. 이 과정에서 이미 예술성을 인정받은 문학작품을 영상화하는 '문예영화'의 부흥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 시기 문예영화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평가받는 두 영화가 우리에게는 문학교과서 속 작품으로 더 친숙한 <오발탄>과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입니다.


‘아름다운 영화’로서 무난하게 수작의 반열에 오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와 다르게 <오발탄>은 검열과정에서 상영금지에 이르고 마는데, 이는 오발탄이 건드리는 지점이 한국사회가 외면하고 싶었던 가장의 몰락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은 할아버지-아버지-아들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가부장사회에 단절을 가져왔습니다. 많은 가정이 와해되었고, 도시화로 인한 핵가족 형태는 가족의 결속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죠. 거기에 전후의 궁핍은 남성들의 경제력을 앗아갔고 ‘백수 남성’과 ‘양공주 여성’의 시대는 경제권의 성별 전복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영화 <오발탄>은 이러한 사회적 맥락에서 두 인물이 사회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 도시에 만연한 허무주의와 분노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철호의 여정


주인공 철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양심을 지키며 자기의 역할을 받아들이려는 현실적인 인물입니다. 그의 삶의 태도와 고뇌는 영화 시작 부분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납니다. 도입부에 스크린은 턱을 괴고 고개를 숙인, 흡사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생긴 조각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조각상은 바깥을 등지고 철창 안쪽에 갇혀 있고 밖에는 불빛이 깜빡입니다. 번쩍이는 빛은 서울의 밤거리와도 닮았네요. 안쪽에 동상은 인간적 가치인 양심을 지키려고 숙고하지만, 그 결과 답답한 현실에 갇힐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철호의 싸움은 시종일관 양심과의 싸움입니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그의 치통인데, 철호에게 양심은 썩은 이처럼 고통스럽지만 뽑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생과 논쟁하는 장면에서도 철호를 속박하고 있는 양심이 상징적으로 드러납니다. 철호는 논쟁을 피해 방바닥에 드러눕는데 이때 철호의 머리 위로 주판과 결혼사진이 화면에 잡힙니다. 주판은 그의 직업과 관련되어 있으며 결혼사진은 가장이라는 그의 위치를 재확인시키는 물건입니다. 역설적으로 철호는 해방촌이라는 공간에 위치한 집에 누워있지만, 계리 사무실의 직원으로서,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의 온갖 ‘노릇’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묶여 있는 존재입니다.


KMDB, www.kmdb.or.kr


철호의 갈등은 영호가 체포된 후 택시를 타기까지의 과정에서 폭발합니다. 영호의 소식을 듣고 나가는 장면부터 택시에서 기절하는 결말까지 철호는 계속해서 공간의 이동을 거치며 방황합니다. 이 과정에서 클로즈업되는 철호는 시종일관 눈을 내리깐 채 수심에 잠긴 표정이고요. 터덜터덜한 걸음걸이와 그림자가 진 얼굴은 인물의 절망을 대사 없이도 훌륭하게 전달합니다. 인물이 이동함에 따라 시간이 지나고 하늘이 어두워지는데, 이 역시 인물의 암울한 모습을 부각합니다. 장소를 이동하면서 고조되는 감정은 마지막 독백을 통해 해소됩니다. “가자!”는 대사는 미쳐버린 어머니를 답습하는 비명이자, 어딘가로 갈 능력이 없는 정신적 불구상태의 철호가 이룰 수 없는 결핍입니다. 그의 외침을 뒤로하고 신문을 들고 뛰는 장면과 서울의 도로가 화면에 잡히는데요. 이는 물리적으로는 어딘가로 향하고 있으나 정신적 방향성을 상실한 철호의 모습을 서울의 공간적 특성으로 확장시키는 장치로 보입니다.



영호의 여정


반면 동생 영호가 전후 서울에 반응하는 방식은 분노입니다. 영호는 X자로 짜인 침대 지지대 뒤편에 가려진 채 처음 등장합니다. 부상을 입고 제대하여 일자리 없이 사는 영호는 X자 뒤에 가린 모습처럼 사회적으로 억압된 상태입니다. 이는 다른 군인들에게도 해당하는 상황이고 그들은 강한 유대감을 공유하며 군인 시절의 가치를 그리워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전후 신체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불구가 된 그들은 분노를 폭력적으로 드러내는데, 술을 마시고 큰소리로 군대식 말투를 흉내 내고, 식당 유리와 그릇을 깨는 상황을 예시로 볼 수 있습니다. 유리가 깨지면서 나는 쨍그랑 소리는 후에 총을 쏘는 소리까지 연결됩니다. 총은 사건을 절정으로 이끄는 도구이자 영호의 욕망을 나타내는 소재입니다. 영호는 군대 시절의 상징과도 같은 총을 통해 그가 잃어버린 남성성을 되찾기를 바라며 그 방법은 형과 대비됩니다. 형과 용기에 대하여 언쟁을 할 때 그는 과장된 몸짓으로 화면 이곳저곳을 활보하며 형을 올려다보고 대들며 말합니다. 그는 사회의 규범을 지키는 인물에게 대적함으로써 규범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다음 행동을 장전하는 셈입니다. 


KMDB, www.kmdb.or.kr


영호는 뜻을 실행에 옮기지만 이내 잡히고 맙니다. 영호와 경찰의 추격전은 관객에게 긴장감을 선사하며 자칫 늘어질 수 있는 영화 후반에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특히 추격하는 상황을 경찰차, 통신하는 경찰, 그리고 도망가는 영호의 모습을 번갈아 배치하여 표현하였는데, 잦은 화면 전환으로 박진감을 고조시키는 것이 꼭 할리우드 영화 같습니다. 한편 영호가 도망치면서 지나친 목을 매단 여자와 시위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당대의 시대상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막다른 길에 도달한 영호를 궁지에 몰린 당대인들과 동일시하는 효과를 낳기도 합니다. 결국 영호는 경찰에게 잡혀 투항합니다. 이때 마지막으로 영호가 천장에 총을 한 발 쏩니다. 목표 없이 하늘로 쏘아진 총알은 제목인 오발탄을 연상하게 하며 동시에 법의 영역 밖으로 나가고자 시도하였지만 목표에 닿지 못한 그의 상황과도 닮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오발탄>은 근대 서울을 살아가는 하층민의 고통과 그에 대한 반동의 방식을 그리고 있습니다. 전후의 상처가 짙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두 인물은 상처를 외면하거나, 상처에 대고 총을 쏩니다. 주목할 점은 철호의 억압이든 영호의 반발이든 끝내 목적지를 찾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형제는 서울을 방황하며 “가자!”라고 아무리 외쳐도 도달할 곳이 없는, 실로 슬픈 오발탄들인 셈입니다.




참고문헌

Eunsun Cho. The Stray Bullet and the Crisis of Korean Masculinity. Wayne State University Press. 2005.

김선아. 근대의 시간, 국가의 시간: 1960년대 한국영화, 젠더, 그리고 국가권력 담론. 소도.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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