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음 May 11. 2021

할아버지가 되려면 공룡 한 마리 값은 필요하다.

29살 삼촌의 육아일기 #06

저녁 6시는 아이에게 가장 지루한 시간이다. 밖에서 뛰어다닐 만큼 뛰어다녔고, 집 안에서도 책 읽고, 장난감 놀이하고, 티브이까지도 본, 아주 진 빠지는 시간이다. 이제 놀만큼 다 놀았으니 할 것은 없고, 아이는 엄마만 기다리게 된다.


이때 할아버지 즉, 나의 아버지가 들어오신다.


아버지는 저녁 약속에 나가시기 전 잠깐 손주를 보고 가려고, 그 시간에 종종 들어오신다. 처음에 조카는 할아버지에게 인사도 해줬지만, 이제 익숙해지다 보니 할아버지가 들어와도 누워서 손으로 안녕해주는 게 다다.


그때 안방에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할아버지가 선물 사 왔는데? 이거 안 볼 거야?”


분명 방금 전까지 할아버지에게 제대로 눈길조차 주지 않던 조카는, ‘선물’이라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 간다. 그리고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소리를 지른다.




요즘 조카는 공룡 기차 애니메이션에 빠져있다. 얼마전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실 때 그 애니메이션을 보셨는지, 손주에게 특대 공룡을 선물하셨다. 그 크기가 조카랑 맞먹었다.



조카는 신나서 공룡을 끌어안는다. 심지어 ‘잡아먹기’ 기능이 있어서, 공룡 입에 뭘 넣으면 뱃속으로 들어간다. 매일 공룡 기차 애니메이션을 보던 조카는 이렇게 큰 공룡을 보자 너무 좋아했다. 집으로 갈 시간인데, 공룡 놓고 내일 여기서 놀라고 말해도, 무조건 가져가야 한다고 떼를 쓰기까지 했다. 아버지는 그런 손주를 보시면서 흐뭇해하셨다.


그다음 날, 아버지가 저녁 약속 전에 잠시 또 집에 들르셨다. 항상 누워서 손 인사만 해주던 조카는 벌떡 일어나서 할아버지에게 달려간다. 할아버지 다리를 붙잡으며 뽀뽀세례를 퍼붓는다. 할아버지는 그런 손주가 예뻐서 안아주자 이번에는 볼에 뽀뽀를 계속한다.


    “이야~ 선물 사줬다고 이렇게 달라지나?”


이 상황이 흐뭇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눈치 빠른 손주를 감탄하시면서 아버지는 웃으셨다.




어머니는 그 공룡 값을 할아버지의 품위 유지비라고 했다.


애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도, 선물 주고 뭐 사다 주는 사람 좋아하는 거라고 하셨다. 그러니 할아버지도 할아버지 대우받으려면 공룡 한 마리 정도 사주는 품위 유지비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나도 이 어린애가 뭘 알까 싶었지만, 공룡을 받고 달라진 모습을 보니 아이지만 머리는 트여있구나 생각했다. 정말 어머니 말대로 입으로만 “사랑한다” 하면 아이는 모르는 것 같다. 맛있는 것도 사다 주고, 장난감도 사다 줘야 아이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것 같다.


그 자격을 받으려고 오늘도 아버지는 새로운 공룡을 사고 계신다.


이전 05화 특명! 조카에게 책을 읽혀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