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현재진행형 ing
80억 인구가 있으면, 80억개의 첫사랑이 있다. 그래서 모든 첫사랑을 존중한다. 꼭 성공한 사랑일 필요도 없고, 이루어진 적 없는 사랑도 누군가의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기면 첫사랑이 되기도 한다. 처음 사귄 사람을 첫사랑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고, 처음 사랑한 사람을 첫 사랑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또는 잊히지 않는 사랑을 첫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의 첫사랑은 사귄 것과는 무관했다. 그리고 처음 사랑한 것도 아니었다.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관계였기에, 나는 그것을 첫사랑이라고 부른다.
사랑은 꼭 성공해야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으면, 그것은 그냥 사랑이 아니라 삶에서 단 한 번쯤 오는 진짜 사랑이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결과가 바뀌지 않아도, 마음 깊은 곳에서 여전히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랑이다. 결과가 바뀌지 않아도, 마음 깊은 곳에서 여전히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랑. 그런 사랑은 후회가 아니라 감사로 남는다. 잃는다고 해도 잃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사람 말이다.
그렇다면, 성공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보통은 서로 사랑하고, 함께한 시간 동안 행복했던 사랑을 떠올린다.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은 사랑도 있고, 상처 없이 좋은 기억으로 남은 사랑, 혹은 자신을 성장시킨 사랑도 ‘성공한 사랑’이라고 한다.
나의 경우는 성공한 사랑이란, 그 사랑이 끝났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진심이었고, 상대와 나를 존중했고, 후회없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경험이라면 그건 이미 성공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랑은 결과보다는 그 과정과 감정의 진정성이 더 중요한 것 같다. 결혼만이 영원한 지속만이 성공의 기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사랑은 두통약 한 통이다. 나는 자주 두통에 시달린다. 그때마다 돈을 아끼지 않고 항상 새 두통약을 사다 주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래서 한두 알만 먹은 두통약들이 집에 아주 많다. 어떤 사람에 따라 사랑은 꽃다발일 수도 있고, 눈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사랑은 한두 알 빠져있는 두통약이다.
“예전 것이 있으니 그거 먹어“ 보다는, ”이번에도 새로 사줄게“
하며 나를 먼저 생각해주었고, 그 약들 하나하나가 사실은 나를 사랑한다는 조용한 고백이다. 소나기나 폭우처럼 몰아치는 사랑이 아니라, 이슬비처럼 조용한 사랑이다.
아픈 날이 있으면, 항상 위장약부터 해서 약국 채로 들고 올 기세로 약을 사오는 사람이 있다. 작은 바구니에 따로 담아둔 사랑이 아주 사랑스럽다. 나의 고통을 이해해 주고,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다. 아픈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여린 마음이고, 미리미리 먹고 나아졌으면 하는 마음이고, 내가 대신 아플 수 없지만 널 위해 하고 싶다는 표현이다.
혹시 이별하게 되더라도, 그 약 바구니를 보면 항상 그 사람이 떠오를 것이다.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여전히 그 사람을 사랑할 것이다. 함께 아픈 사람이 사랑이다. 내가 아플 때 나보다 더 걱정하는 사람, 병원에 함께 가주고 약봉지를 챙겨주는 사람. 그런 사람은 내 통증을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같이 겪는다. "괜찮아?"란 말 대신 "아직도 아파?"라고, 반복해서 묻는 사람.
마음으로 아픈 사람이 사랑이다. 내 슬픔을 듣고 함께 우는 사람, 아프다는 말조차 하지 못할 때에도 눈치채고 다가와 주는 사람. 직접 상처받지 않았는데도 나보다 더 아파해 주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내 감정의 무게를 짐작하고, 그 무게만큼 곁을 지켜준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함께 본 하늘을 얘기하고, 카페에서 무심코 마신 커피의 맛에 웃고, 문득 건넨 말 한마디에 눈을 마주보며 웃을 수 있는 사람. 별일 없는 일상에서도 너와 있기에 특별해지는 순간. 사랑은 꼭 큰 사건이 아니라, 그런 작고 잔잔한 순간에 깃든다.
사랑은 함께 변해가는 것이다. 처음의 설렘만 붙잡으려 하지 않고, 시간 속에서 함께 늙고 바뀌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예전처럼 자주 손을 잡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아는 사이. 변화에 맞춰 서로의 모양을 다시 그려가는 관계, 그게 사랑이다.
힘들고 지칠 때도 "나는 너를 여전히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게 사랑이다. 사랑은 언제나 쉽지 않다. 실망하는 날도 있고, 다투는 날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을 지나고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건 진짜 사랑이다. 그 말 한마디가,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가장 조용하고 단단한 다짐이다.
사랑은 정말 힘이 들고, 노력이 많이 드는 행동인 것 같다. 마음을 여는 것도, 함께 아파하는 것도,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모두 간단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로 다시 돌아가서 다시 사랑하겠냐는 물음에 망설이지 않고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랑이 끝이 났는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시 사랑할 수 있다는 용기, 한번 더 아파도 좋다는 마음이 진심을 증명해준다. 어쩌면 사랑은 그런 것이다. 반짝이는 순간만이 아니라, 그 순간을 지나고 나서도 내 안에 오래 남는 것. 내 안에 오래 남아,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것. 그 사람을 사랑한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든다면 그것은 이미 고맙고 아름다운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