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좀 괜찮은 문구인것같다."
"괜찮은데? 덕구랑 찰떡이야. 이걸로 할게."
동생에게 카톡이 왔다. 추모함 위패와 스톤함을 꼭 제부와 함께 선물해주고 싶다면서 그들이 주문한 위패에 어떤 글귀를 넣고 싶은지 천천히 말해달라며.
수술 후 이전보다 더 뭘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던 남편을 간호하면서, 우리의 현실을 직시했다.
부정의 단계가 길면 반드시 우리 둘다 일상이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걸, 서로 말은 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컴패니멀로스(Companimalloss : Companion Animal Loss)라는 걸 겪는 중이고, 자꾸 덕구의 죽음이 떠오르는 게 너무 괴롭고 미칠것 같았지만, 녀석을 슬프게만 기억한다는 건 무엇보다 덕구가 용서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너를 알고, 아끼고 사랑해준 사람들이 여기 있다고..그러니 천국에서 너무 신나게 놀다가도 하루 한번, 어려우면 한달 한번이라도 우리를 생각해주길 바라는 맘으로, 동생에게 [자유로운 덕구]이미지를 닮은 글귀를 카톡으로 보냈다.
덕구 is FREE!!!
죽은 건 결국 덕구의 육신일 뿐, 영혼은 이제 답답한 목줄도 잠긴 문도 어느 영역도 없이 훨훨 날아다닐거라고 생각하니 그렇게 슬프지만도 않았다. 천방지축 들개라이프 덕구는 이제서야 진짜 자유일지도 몰라.
동생이 선물한 귀여운 위패에도 덕구 is Free 가 있다.그렇게 추모함을 가득 채울 동생의 선물들이 도착하고 우리는 울다가도 하나씩 하나씩 덕구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쌓아올렸다. 제단에 기도하는 마음보다 사랑스럽게, 그러나 진심으로.
추모함과 위패로도 뭔가 아쉬움이 남아, 반려동물 장례에 관한 오브제들을 이것저것 온라인쇼핑으로 뒤지다가 갑자기 문득 지문트리가 눈에 들어왔다.
원래는 돌잔치나 결혼식에서 방문객들이 지문을 잉크에 찍어 만들어주는데, 나는 이걸 덕구에게도 선물해주고 간직하고 싶었다.
강아지 추모용으로 쓸 사진을 같이 보내주니 알아서 포토샵으로 예쁜 얼굴만을 따서 A3사이즈로 보내주었고, 가게나 집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조심스럽게 지문을 부탁했다.
우리 덕구를 한번 이상은 봤고, 그 아이가 [덕구]라는 이름을 가진 귀여운 흑시바였다는 것을 기억해주는 이들이라면 누구에게든.
다들 조금은 먹먹해했지만, 이내 밝은 표정으로 "덕구 좋겠네!"하면서 동참해주는 것이 참으로 고마웠다.
복구의 접종일에는 다시는 갈 수 없을 것 같은 동물병원에도 갔다.
원장님은 변함없이 복구의 접종을 잘 도와주셨고, 집으로 가기 전 조심스럽게 부탁한 지문트리에 너무 좋아하시며 찍어주셨다.
"아.. 이거 간호사선생님들도 오라고 해도 될까요? 덕구 좋아하려나...?"
"우와. 선생님들도요? 너무 감사합니다...!"
주체하지 못할 눈물을 닦으며 복구와 뛰쳐나와서는, 날이 더운데 털복숭이들 진료를 보시느라 고생하는 선생님들에게 줄 식혜와 꽈배기를 사들고 뇌물처럼 드렸다. 지문트리에 아주 비싼 지문들을 남겨주신 감사함을 담아.
원장님은 원장으로, 간호사 선생님들은 각각 00누나로 예쁘게 찍어주신 지문트리를 들고 돌아오는 길,
우리는 외롭지 않았다.
"오메. 강아지 이런것도 있어요?"
"와 이거 너무 좋다."
"덕구 좋겠네. 엄마아빠 사랑도 많이 받았는데, 이렇게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과 거래처 분들도 "늘 두마리였는데"하며 한 마리의 빈자리를 쓸쓸하게 바라보시다가 지문트리를 내밀면 기꺼이 자신의 엄지에 잉크를 묻혀 많이도 남겨주셨다.
49일이 되는 날, 이 지문트리와 조그만 음식들을 차려놓고 덕구를 정말 자유롭게 놓아줄 것이다.
물론 덕구의 영혼은 우리가 놓아주어도 그 언제든 어디서든 우리 곁을 원할 때 놀러올테니, 더이상 이전의 죄책감이나 상실감보다 추억과 감사가 채워지는 시간들이 늘어갔다.
이웃집 통키네 놀러갔다와서 에너지 만빵인 덕구 아이들이 두시간 가까이 쫓아다녀도 체력이 참 좋았다. 장볼 때도 함께 가면 늘 뒷자석에서 우리가 뭐사는지 감시하던 녀석.
덕구가 죽던 날, 장례식장으로 새벽까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반려동물과 아름다운 이별을 건네기 위해 찾아왔다.
그곳에 고양이도 있었으니, 덕구에게는 든든한 장례씩장 동기들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우리 아이처럼 사고로 떠났거나 오래 앓다가 떠난 친구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한다면, 덕구도 자기 이야기를 하겠지.
"나 김덕구, 교통사고로 이제 엄마아빠 곁에 매일 있을 순 없지만, 자유를 얻었다고."
이 녀석, 지 얘기는 하고 친구들 얘기는 안 듣는거 아닌지.
비오는 금요일.속이 간편한 쌀국수를 먹으러 가는 길을 지나치다, 남편과 둘이서 덕구가 얼마나 호기심이 많은 녀석이었는지를 얘기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지금 덕구는 뭐할까.
12시니 일어났을거고 어디 가 있을까 무얼 할까 생각하니 생각이 오만가지로 나면서 웃음이 났다.
"여보. 그 때 꿈에서 덕구가 시바 200마리랑 엉켜있었던 거. 그거 혹시 이녀석 조직에 들어간 건 아닐까?"
"호. 가능성 있지. 덕구파 결성."
"시바산 먼저 평정한 다음에 고양이별에 가서 고양이 와이프를 만나는거지."
"와 그럼 천국에다가 신혼특공으로 120평 집 마련까지 할수도 있는거 아니야.?"
"와씨... 덕구 성공했네?우리도 돈 많이 벌어야겠다. 힘내서 일하자! 가자 김복구!"
부질없는 대화같지만, 우리는 우리의 나름대로 덕구가 영혼으로 자유로워진 후의 일상을 상상하는 재미로 하루를 보내는 게 은근 기대되고 즐거워졌다.
우리가 40살 되면 덕구는 뭐 하고 있을까. 50살, 그리고 60살에는.?
고양이로 살고 있을까? 아니면 시바산에 좀 더 있다가 사람으로 환생했을까.
만약 사람으로 환생했으면 그 이름이 덕구라는 이름이 아닐 거라서 우리가 모르고 지낼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좋으니 꼭 좋은 걸로, 니가 원하는 걸로 태어나.
그래서 원없이 더 큰 사랑, 이 생에서 엄마아빠가 못해준 거 다 누리고 천천히 가.
"엄마.아빠. 나 집샀어. 나중에 놀러왕"
이런 시나리오로 나는 어쩔 수 없는 ENFP감성으로 남편과 함께 덕구의 천국 신혼집구경을 가는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어제 새벽, 나는 일곱번째 꿈을 꾸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 베란다로 보이던 그 고양이들 중 한마리가, 덕구인 듯 하여 [덕구야]하고 이름을 부르자마자, 덕구스러운 고양이 하나가 내 품으로 들어온다.
꿈에서 깨자마자 미친년처럼 뛰어가 남편이 잠든 침대로 돌진.
"여보!! 덕구 고양이 될건가봐!! 진짜 꿈에 고양이로 나왔어!!!"
"휴.... 진짜 나는 다시 태어나면 꼭 니가 키우는 개로 태어나고 싶다 정말.!"
이토록 진한 사랑을 전해준 나의 사랑스러운 덕구는, 올해 여섯살이다.
그리고 곧 49재와 10월의 생일을 맞이할 나의 사랑스러운 흑시바 아들에게, 이 허접하지만 사랑만은 가득한 에세이를, 녀석의 환생축하선물로 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