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00. 너를 헤매는 밤

자라보고 놀란가슴이 솥뚜껑을 만났을 때

by 김먼지

"안돼. 안돼!!!!.

PTSD였다. 남편도 나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비명을 내지른 건.


동생부부가 놀러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집 건너편 상가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가 건너야 할 4차도로 횡단보도에는 이미 빨간불.

모두들 초록불로 바뀌길 기다리며 서 있는데 동생이 뭔가 움직거리는 걸 알아채고 가만히 본다.

"언니 왜 저기 목줄없는 개가 돌아다니지??"

강아지는 위태위태하게 헤드라이트 불빛 사이를 헤엄치며 걷고 있었다.

"어??아 저 개 어떡해 너무 위험해보이는데."

"빵빠-앙!"

큰 차들이 몇번을 지나가고 다행히 큰 길를 건넌 강아지를 우리는 마구 따라갔다.

"얘 주인 찾아주자."

"버려진 아이라서 아무도 안찾으면 그냥 우리가 키울래."

그러나 동생이 꽤나 씩씩한 결심을 내서 한 말을 비웃듯 꽤나 깊이 서운하게,

떠돌이 개는 자취를 감추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울음을 내뱉던 나를 보는 게 덕구도 힘들었던걸까.

아니면 자꾸 하늘에서 세상을 유흥삼아 달려야하는데 이놈의 개엄마가 맨날 덕구야 하고 징징대니 귀찮았으려나.

대차게 뛰어다니며 6년 견생을 시끄럽게 살다가 마지막마저 떠들썩하게 세상을 떠난 녀석의 육신이 한줌 스톤으로 오롯하게 유리병에 담긴지도 조금 있으면 4개월이 다 되어간다.


늘 집개같지 않고 들개같았던,

아니 개보다는 고양이같았던,

그런 녀석이 어제 남편에서 오늘 새벽사이, 그의 꿈에 왔다갔다고 한다.


목줄없이 뛰는 덕구를 잡은 꿈이었는데, 덕구가 죽었다는 사실보다 이 아이를 잡아야 한다는 고집때문에 잡은 덕구를 안고 펑펑 울었다는 남편.

너는 어제 아빠꿈에 다녀간거군.

혹시 그 강아지 주인 좀 찾아주라고 나왔던거냐.

이유야 어찌 됐든 간만에 얼굴 보여줘서 고맙다.




덕구를 보내고 나는 덕구의 꿈을 많이 꾸었다.


첫번째 꿈에는 덕구가 무슨 커다란 방 같은 데에서 이 사람 저 사람의 가방을 뒤지다가 담배를 꺼내물고 달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보고 싶던 덕구였는데 나는 멍청하게도 입에 담배가 물려있는 나의 아들을 야단을 쳐서 내쫓고 말았다. 그리고 나서 다음날 눈이 안 보일 정도로 울었다.

"나 어떡해....덕구가 꿈에 처음 와줬는데, 내가 덕구를 입에 담배 물고 있다고 내쫓았어. 나 덕구한테 미안하다고 보고싶다는 말도 하고싶은 말도 너무 많았는데 여보, 나 덕구 혼내버렸어! 나 어떡해..."

쉴새없이 흐르는 눈물을 본 남편은 말없이 안아주며 덕구는 착해서 다시 꿈에 나와줄거라며 오늘은 일찍 자자고 했다. 그렇게 두번 다시 내 호통에 나오지 않을 것 같던 덕구는 3일 뒤에 내 꿈에 다시 나와주었다.




두번째 꿈에는 덕구와 내가 주방에 있었다.

우리집 주방은 오래된 27년된 빌라로, 거실과 안방은 넓지만 부엌이 길고 좁게 방처럼 따로 나뉘어져 있다. 그래서 오븐에 아이들의 고기를 굽거나, 특식을 만들겠다고 고기들을 잘게 잘라 끓이고 볶고 지지고 할 때면 덕구는 언제나 복구보다 빠르게 주방 출입구를 점령한 채 엎드려져 내가 하고 있는 요리를 구경하곤 했다.

그곳에 덕구가 나와준 것만으로도 나는 뛸듯이 기뻤다. 세탁실로 들어간 제 아빠를 따라 들어가지는 못하고 내 앞에서 아빠냄새를 찾는 듯 했다. 그리고 코로 닿는 듯 그 흔적들을 하나하나 찍고 있었다. 그리고는 나를 지나쳐 황급히 남편을 따라 세탁실로 들어가려고 뒷모습과 꼬랑지만 보인다.

급한 마음에 나는 '덕구야'하고 불렀고, 사고가 나던 날 덕구와 더 놀아주지 못하고 아이가 목줄을 빠져나가던 그 순간이 떠올라 눈물이 터져 엉엉 울었다.

"덕구야!! 엄마가 미안해. 혼자 보내서 미안해 덕구야 많이 아팠지... 얼마나 아팠어 엄마가..."

나는 다급히 막내를 불러서 나랑도 인사 한번만 해달라며 애원을 하고 인사를 하겠다며 손을 내밀었는데

앞발을 안주고 뒷발을 주는 녀석.

오늘 울어서 혼내는건가..

그리고 정말 미안하다고, 너 괜찮은거냐고 물으니,

씨익 웃던 꿈속의 김덕구랑 제일 많이 닮은 아냐짤.

내 말이 이어지는 중간, 덕구가 뒤를 돌아봤을 때는 말도 안되는 개구진 표정의 덕구의 입이 귀에 걸린 웃는 얼굴만이 만화처럼 부풀어올랐다. 순간 나는 우리 아들이 지금 얻은 자유가 슬픔보다 더 큰 걸까 하고 쓴 웃음을 짓다가, 다시 비어버린 덕구의 시공간을 참지 못하고 펑펑 울어제껴 자는 남편을 또 깨웠다.

"여보! 덕구가 또 꿈에 나왔어!"

"와. 김덕구 치사빵꾸. 나한텐 한번도 안왔는데....."

"근데 여보 덕구가 여보 쫒아가는 거 내가 잡고 미안하다고 하니까 뒤돌았는데 만화캐릭터처럼 웃어."

"덕구가 여보 맨날 울어서 신경쓰였나보다. 여보 좀 웃으라고. 지랄맞은 게 지 엄마한텐 참 착하네.. 그럼 내 꿈에 안 나온거 봐준다."


덕구가 나 잘 있으니 좀 울지좀 마라고,

내 눈물을 끝내고 싶어 찾아준것만 같다.

역시 목줄없이 새까만 몸을 쉬익 움직이며 잘도 다니던 녀석.




세번째와 네번째 꿈에서 덕구는 각각 남편의 놀이방과 어느 시골집,알록달록 물든 산에서 복구와 뛰노는 짧은 뒷모습을 남겼다.

"여보 덕구 어제는 복구랑 막 뛰놀았어. 근데 나한테 얼굴은 끝까지 안 보여줘...."

"덕구가 떠나야 하는데, 여보가 우니까 못 가. 그래서 슬플까 봐 그러는거야. 꿈에 나와주는걸로 고마운거잖아. 여보가 잘지내야, 덕구도 마음 편히 가지. 이제 조금만 울자."

덕구의 장례를 치르고 2주도 안되어 3kg나 빠진 내 몸이 남편은 아무래도 걱정인 듯 했다.

녀석의 장례를 치른 밤, 그리고 화장이 끝나 새벽 2시가 넘어 3시에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층간소음 따위 신경쓰지 않고 목놓아 울어버렸다. 아랫집 할머니가 식칼을 들고 죽여버린다고 올라오신다 한들, 그건 그거대로 고맙게 덕구를 따라갈 수 있는 길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다행히 다정한 아랫집 할머니는 올라오지 않으셨다.)

다음으로 꾼 꿈에서는 내가 두꺼운 유리판넬을 밟고가야 하는 채로 걸어가는데 같이 가던 덕구의 두다리가 진흙탕에 빠져있는 꿈을 꾸었다. 끼인 덕구를 안은 뒤 아이를 안전하게 내려놓겠다며 유리판넬을 깔고앉아 조심히 내려놓는 꿈도 연이어 꾸었다. 그 안에서 나는 또 미련하게 여전히 덕구를 잡아세우려한다. 여전히 인간의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서 아이를 풀어주지 못한채로.

그렇게 가둬놓았으면서 꿈에서까지 억척스럽네.

흘러가게 놔주기로 해놓고서.

자꾸만 그 뒷모습이 영영 오지 않을까 무섭다.




말도 안되는 덕구의 죽음.

고작 10kg남짓 개 한마리가 없는 집이 이렇게도 조용했었나.

늘 퇴근하고 나면 미니축구공으로 놀아주던 공원을 들렀다가 집에 오면 복구와 함께 잡기놀이를 10분 하고 놀다가 혼자 침대방으로 들어가거나 거실 문지방에 누워 잠을 자던 덕구.

안방 문지방 베개삼아 자는 덕구와 긴 산책후 침대에 누운 덕구
남편 가게에서는 하루종일 들락날락을 20번은 반복하며 퇴근을 기다리는 프로출근러다.

복구는 비오는 날에는 집에서 잠만 자면서 체력을 비축하는데, 막내 덕구는 6년동안 단 한번도 결근을 한 적이 없다. 늘 우리보다 먼저 현관에 나가있고, 퇴근할 때에도 제일 신나하던 녀석이었다.

어쩌면 그 사실 때문에, 나는 덕구를 잃은 현실을 더 받아들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레이의 탁 트인 시야때문인지 앞자릴 좋아한 덕구

아침에 눈을 떠도, 가게를 나와도, 집에 갈 때도, 집에 와서 거실에 들어올 때에도, 잠들기 전까지. 매 순간 덕구가 없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사무쳤다. 복구와 산책에 나갈 때마다 옆에 없는 덕구가 꼭 늦었다며 짖으면서 어디선가 나올 것 같아 미친듯이 울었다.

그런 내 꿈에 녀석이 복구와 놀고 가는 모습으로 나와주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꿈에서 깨어도 울지 않을 수 있었다.

도자공원 산책 중 보기힘근 머리맞댄 두녀석.복구와 덕구. 이 녀석들 투샷은 한달에 한두번 가능했다

그리고 어젯밤 선명했던 최근 가장 마지막 여섯번째 꿈은, 정말 덕구가 내 마음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고양이를 졸졸졸 따라다니다가 싸대기도 많이 맞고, 눈머리도 발톱에 할퀴어서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고양이 뒤만 하염없이 쫒던 녀석이었기에, 나는 당연히 이놈의 막내가 고양이들과 놀고 있을거라 생각해서 추모함에도 고양이 피규어들만 잔뜩 넣어줬었다.

그런데 웬걸.

꿈 속에 덕구는 무슨 cctv화면 속에서 또 뒷모습만 보여줬는데, 엎치락뒤치락거리며 200여마리는 족히 돼보이는 흑시바(검정시바 블랙탄)와 적시바(갈색시바)들과 엉겨붙어 으르렁대며 처마 마루같은 데서 흙먼지를 묻혀가며 놀고 있었다.

이게 뭐람. 우리 아들은 위에서도 지랄맞은 것입니까.

애초에 꿈의 시작이 이상한 할머니가 내 손을 잡으며 "웬만하면 이런거 안 보여주는데 내 말 잘 듣고 따라와." 라는 말로 시작하며 장면전환이 되더니 덕구의 cctv화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 공간을 지키고 있는 갈색눈의 늑대정령같은 사람은 은빛인지 회색인지 모를 정장을 입고 cctv화면을 확대시켜 우리 아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했다.(확대하면서 픽셀이 깨져서 정확한 녀석의 얼굴은 못 봤지만, 엉겨붙은 녀석들 속 중앙에 내 새끼의 등은 본 것 같다)

"덕구는 지금 소원 적은 공 보관중이야. 여기서 엄청 잘 놀면서 기다리는거야. 그러니까 니네도 공에다가 얼른 소원, 하고싶은 일 다 적어서 넣어놔."

덕. 구. 라고 삐뚤빼뚤한데 묘하게 당당해보이는 글씨체가 쓰여진 야구공 하나가 유리병안에 담긴 게 보였다.

꿈 속 나는 울며 웃으며 그 할머니인지 보안요원인지 모를 존재에게 끄덕거리며 우리가 덕구랑 다시 만나서 하고 싶은 일을 적으면 되냐고 재차 물었고, "거기서는 뭐든지 다 적어. 덕구가 여기서 다 보고 있어."라는 대답에 나는 꿈에서 깨자마자 남편을 또 깨웠다.


"여보!! 얼른 일어나봐요.우리 지금 빨리 야구공에 소원적어야 돼."


덕구의 소원이 담긴 야구공은 덕구가 잘 가지고 있을거고, 우리는 덕구의 공에 조금 더 사랑을 담기로 했다.
꿈에서 깨어 네임펜으로 덕구가 물어오던 야구공에 열심히 적어본다. 우리가 다시 만나 하고 싶은 모든 소망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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