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요즘 편의점에 나가보면 정말 다양한 종류의 도시락들이 얼굴을 내민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자기가 가진 맛을 보여주기 위해 우선 화려한 비주얼을 내 비쳐야만 한다.
알록달록,맛난 기억을 훔쳐라!선택지가 다양한 위대한 먹을 자들에 의해 식사시간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는 도시락들.
어릴 적 이야기다.아버지의 폭력에 견디다 못한 어머니가 7살배기 막둥이를 놔두고 집에서 나가셨다. 형편이 어려워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집안의 생활까지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나니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막둥이 였던 나만 이복누이집에 남겨지게 되었다.
눈치밥의 시작이었다.나는 매일 외출에서 돌아오실 아버지를 기다리는 게 일이었고 매형과 나이많은 조카들의 눈치를 봐야만 했었다. 사실 그 당시는 다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인지라 식솔이 하나라도 늘게되면 불편하고 힘들었던 것이 뻔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인수하며 그 조건으로 나를 캐어 해 주기로 했던 이복누이집에서의 입지는 어찌보면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던 것이었다.그러나 어린 나는 이런사정을 알 턱이 없었다.아버지가 외출에서 돌아오기 전까지는 늘 혼자였던
그 시절 초딩3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처음으로 도시락을 싸 오라는 선생님의 어명이 있었다.정상적인 가정하의 학생이라면 그저 김치반찬에 보리 밥이라도 준비해서 보냈을 터였다.
이복누이는 도시락 준비를 거부하였다. 어린 나는 점심시간에 다른 친구들은 밥을 먹고 있는데 침만 삼켜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싫어서 떼를 쓰며 울었었다.
"나도 도시락 가져가고 싶어..싸 달란 말이야 엉엉"
그리 우는 데도 누이는 막무가내로 안된다고 하였다.
최씨고집이 별거인가? 나는 집이 떠나가라 큰소리로 울어 댔고 결국 누이는 "여기있으니 가지고 가! "라며 도시락을
내 밀었다. 큰 애들이나 감당할만한 커다란 양은 도시락에 누가봐도 꾹꾹 눌러담아 뚜껑도 안 닫히는 밥에 집 식구들이 아무도 손을 안 대는 무말랭이 무침반찬을 반찬통에 가득 담아서... 어린 나이에도 그게 느껴졌는지 나는 서러웠다.
학교도 안 가고 하루종일 울었다.서러웠다.집을 떠나간 엄마를 부르며 울었다. 울면서 책상 머리에 있던 액자의 시에 꽂혔다.그 시는 다름아닌 푸쉬킨의 삶이라는 시였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초딩3학년때 울부 짖으며 읽었던 시...
내가 글을 쓰게된 동기가 되었을 가능성이 되었다.
참 그때이후로 나는 무말랭이무침은 극혐중이다.
요즘 도시락,그 때도 있었더라면 정말 좋았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