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여름
유난히 덥다는 이야기는 해가 갈수록 그 농도가 짙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온 세상에 광범위하게 퍼졌다. 얼마나 이런 소식이 많은지 TV채널마다에 철철 넘쳐난다. 예전엔 정말 찌는듯한 더위를 회상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예전엔 엄청 더웠드랬어! 그 더위 식히느라 마당에 엎드려
찬 우물물에 등목이라도 할라치면 등골이 서늘해졌지"
흔한 레파토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지금이 가장 더운 때다.
집에 그 흔한 선풍기조차 없던 때가 있었다. 어린 딸아이 둘과 무덥던 여름을 견뎌내야 하는 아내를 위해 기필코 선풍기라도 마련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가전제품점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가 하필 유난히 더울 때였다. 비싸고 많은 기능을 겸비한 선풍기는 다소 남아있었으나 우리 식구들의 주머니사정과 어울리는 제품은 품절로 구매가 불가능. 그 더운 날에 네 식구가 선풍기 찾아 삼만리~
어렵사리 거금 5만 원을 투자해 장만했던 그 이름도 유명한
<신일선풍기>다. 울 네 식구에게 시원함을 안겨주었던...
20년도 지난 이야기다. 지금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5만 원짜리 선풍기는 오히려 그때보다 성능이 월등한 제품으로 이미 운명을 달리 한 <신일선풍기>의 빈자리를 메우고도 남더라는 이야기.
이제 시원한 여름을 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할 아이템으로 에어컨이 손에 꼽힌다. 한때 에어컨은 너무나도 비쌌기에 엄두도 못 낼 귀한 그림이며 떡이었다. 이제는 너도나도 에어컨을 그림이 아닌 현실에서, 바라만 보던 떡이 아닌 달콤한 먹거리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다들 에어컨바람이 없는 일상은 여름의 리스트에서 지워 내려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하도 물자들이 풍부해져 낡았지만 멀쩡한 에어컨들은 조금의 발품을 들이면 무료이며 공짜로 맞아들일 수 있는 여건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이런 속담도 태어나게 되었다.
<시원한 바람 끝에 달아오른 전기요금>
<무턱대고 시원하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땀을 식히기 위해 평상에 앉아 시원한 수박화채를 들이키며
공짜로 쏟아지는 자연의 바람은 이제 요원하다. 이제 아무리
그늘에 가 있어도 <공짜표 시원한 바람>은 찾을 길이 없다.
참으로 덥기만 한 여름이다. 씁쓸한 여름은 이제 좋아할 수가 없는 계절로 급부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