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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암흑

Chapter Ⅰ

   머릿속을 사정없이 칼로 도려내는듯한 통증이었다. 뇌수막염을 어렸을 때 겪어 본 나로서는 뇌수막염 이상의 두통은 잘 느껴보지 못했는데, 이건 뇌수막염과 비교할 수 있는 두통이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미련한 건지 그 통증에서 이기려고 했던 건지, 그저 혼자 아무런 수단 없이 참았다. 그 와중에도 나는 논문 심사 발표용 PPT를 만들고 있었다.     


   며칠 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이틀 전 뿌옇게 보였던 눈이 이젠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너무 무서웠다. 이게 이렇게 순식간에 이틀 만에 멀쩡히 잘 보이던 눈이 아무것도, 빛도 보이지 않을 수가 있는가... 그저 암흑이었다. 보이는 다른 한쪽 눈을 의지하며 병원에 가려고 했는데, 그날따라 새벽부터 비가 심하게 내렸다. 11월 중순이었는데 내리는 비는 늦가을 비가 아니라 6월 장맛비 같았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 눈을 떴는데, 여전히 한쪽 눈은 암흑이었고, 며칠 전부터 느껴졌던 머릿속을 칼로 도려내는 통증은 계속되었다. 어차피 그날 오후 다섯 시에는 학교에서 졸업 논문 심사 발표가 있었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야 됐고, 나는 아침 일찍 서둘러 나가서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안과 병원이 아닌, 옆 동네의 안과 병원으로 갔다. 며칠 전, 처음 눈이 좀 이상한 거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 동네 안과 병원에 갔을 때는 딱히 큰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어서 옆 동네 안과 병원으로 가게 된 것이다. 옆 동네 안과 병원으로 가는 길에도 비는 장맛비처럼 많이 내리고 있었다.     


   아침 아홉 시 반쯤 옆 동네 안과 병원으로 들어가서 나의 증상을 차분히 말했고, 진료를 보시던 의사 선생님은 진료의뢰서를 써 줄 테니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꼭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고, 나는 오늘 좀 이따 졸업 논문 심사 발표를 해야 되는데... 복사집에 가서 발표용 PPT 인쇄하고 테이핑도 해야 되는데... 그런데, 아까 의사는 오늘 꼭 큰 병원에 가라고 했잖아. 큰 병원 어디로 가야 되지? 오늘 논문 발표 못 하면 나는 대학원 졸업 못 하는데... 이번에 졸업 안 되면 논문을 새로 다시 써야 되는데.’ 이런 생각들이 뒤섞여서 우산을 쓰고 길을 걸어가는 중에 갑자기 눈물이 맺혔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러다 우산을 들고 있을 힘도 급속히 사라지면서 우산을 길에 내팽개치고 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엉엉 울었다. 너무 무섭고 혼란스러워서 내가 서 있는 인도 바로 앞 6차선 도로에서 쌩쌩 달리는 차 소리에 나의 울음소리를 묻으며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 하염없이 비를 맞고 엉엉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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