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자랄 줄 알았는데, 나랑 너무 다른 너
딸은 나를 가장 많이 닮았는데, 동시에 나와 가장 멀리 떨어진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얼굴을 하고서, 가장 낯선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여자.
어렸을 때 너는 내 손이 닿지 않으면 불안해했다.
“엄마!” 하고 부르면, 나는 네 뒤가 아니라 네 앞을 지켜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너는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고, 나는 그 모습을 사랑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 사랑이 ‘너’가 아니라 ‘내 기준’으로 굳어갈 수도 있다는 걸.
사춘기가 오자 너는 갑자기 ‘다른 아이’가 되어버렸다.
방 청소는 늘 안 돼 있었고, 여기저기 널브러진 옷과 물건들은 무슨 전시처럼 쌓였다.
말을 걸면 짜증이 먼저 돌아왔고, “알았어”는 끝내 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휴대폰을 붙잡고 있는 너를 보면, 걱정보다 화가 먼저 올라왔다.
나는 너를 사랑해서 화냈을까.
아니면 내가 불편해서 화냈을까.
나는 휴대폰을 뺏어보기도 했고, 방문 앞에서 큰 소리도 내봤다.
“방 좀 치우라고!”
“도대체 왜 이래?”
그런데 내 말은 너에게 닿지 않았다. 아니, 닿아도 튕겨 나가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던지는 말들이 너의 마음을 두드리는 게 아니라, 너를 몰아세우는 돌멩이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내 기준이 꽤 단단한 사람이었다.
결혼하기 전, 아니 결혼하고 40살까지도 나는 엄마 말에 쩔쩔매며 살았다.
존중이라는 이름으로 순응했고, 효도라는 이름으로 내 선택을 뒤로 미뤘다.
그래서 나는 은근히 확신했다.
“딸도 나처럼 크겠지.”
“엄마 말 알아듣는 아이가 되겠지.”
그런데 너는… 나랑 너무 달랐다.
친정엄마마저 신기해했다.
“어쩜 행동이랑 말투가 저렇게 다르냐.”
그 말은 위로처럼 들리면서도, 이상하게 내 마음을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딸의 ‘다름’을 설명해주는 말인데, 나는 그 말을 ‘내가 실패한 엄마’라는 판정처럼 받아들였다.
지금 딸은 25살 대학생이다.
내 나이 25살엔 2월 남편을 만났고, 그해 11월 결혼을 했다.
딸 아이가 어렸을땐 이 이야기를 하면서 25살엔 독립하라고 했었는데.. 벌써 25살이라니..
딸은 성인이 되었는데도 방 앞에는 택배가 쌓여 있고, 방 안은 동묘시장 풍경을 연상시킨다.
그 풍경을 볼 때마다
‘정리해야지.’
‘바로잡아야지.’
‘고쳐야지.’
나는 여전히 ‘엄마’라는 이름으로 통제하고 싶어 한다.
내가 흔들릴수록, 너를 더 잡아야 할 것 같아서.
내가 불안할수록, 너를 더 바르게 세워야 할 것 같아서.
그러다 며칠전 ‘훈육’이 아니라 ‘풍자’로 바꿔버린 사건이 생겼다.
딸의 이야기가 담긴 동영상을 하나 만들었다.
제목부터 당돌했다.
“그래! 나 사춘기다. 어쩔래?”
노래와 영상이 어우러진 그 짧은 영상은, 엄마인 나를 향한 변명도 아니고 반항도 아니었다.
그냥… 네가 네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자기소개’ 같았다.
그날 저녁, 가족이 다 있는 자리에서 우리는 내 유튜브에 올린 그 영상을 함께 봤다.
평소 웃지 않는 남편이 “하하하” 소리를 참지 못했다.
아들은 우리 눈치를 보느라 웃음을 삼키고 있었고,
딸은 ‘와… 이런…’ 하는 얼굴로 한 손으로는 영상을 찍고, 다른 손으로는 벌어진 입을 막고 있었다.
“나 안이래!!!~”
그런데 너도 웃고 있었잖아.
웃음을 부정하느라 더 크게 웃고 있었잖아.
그 순간 나는 아주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미안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올라왔다.
내가 무서워했던 건 ‘딸의 방’이 아니었다.
내가 무서워했던 건 ‘딸이 나와 달라지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 밥상은 오랜만에 활기찼다.
갈등이 해결된 건 아닌데, 공기가 달라졌다.
서로를 비난하던 표정 대신, 서로를 ‘사람’으로 보는 표정이 잠깐 생겼다.
웃음은 이상하게도, 우리가 서로에게 놓았던 칼끝을 조금 무디게 만들었다.
다음날 딸은 그 영상을 친구들에게 보여줬다한다.
친구들이 대박이라며 웃었다고 했다.
친구들에게 보여주기까지 했다는 건, 너도 어느 정도는 인정한 거겠지.
“그래, 나 이런 모습도 있지.”
“그런데 그게 그렇게 나쁘진 않아.”
너는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그리고 또 다른 일이 이어졌다.
강사님들이 말했단다.
“저 아들 있는데요. 아들 버전도 만들어줘요.”
그래서 나는 또 뚝딱 만들어 올렸다.
조금 다르게, 조금 부드럽게.
그랬더니 21살 아들이 기대를 했다.
“넌 착했잖아~ 네 이야긴 아니고, 딸 버전을 조금 바꿨어.”
아들은 살짝 섭섭해 보였다.
그 섭섭함 앞에서 나는 갑자기 마음이 멈췄다.
아들은 내 뱃속에서부터 아프게 태어나 지금 휠체어를 타고 생활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방송국에서 강의하는 내 모습을 보고
“강의할 때 내 이야기도 해줘.” 라고 말했던 아들이다.
나는 “알았어”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아직도 고민 중이다.
어떻게 말해야, 아들의 삶을 ‘감동 소재’로 소비하지 않으면서
그럼에도 아들의 마음을 정직하게 담아낼 수 있을지.
딸의 이야기는 내가 화를 냈던 날들과 연결되어 있고,
아들의 이야기는 내가 조심해야 하는 날들과 연결되어 있다.
둘 다 내 아이지만, 둘은 전혀 다르다.
그리고 그 다름 앞에서 나는 같은 방식으로 흔들린다.
딸에게는 통제하려 했던 과거가 있고,
아들에게는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존중의 무게가 있다.
나는 이 두 아이 앞에서 결국 같은 질문을 붙잡게 된다.
나는 아이들을 사랑한 걸까,
아니면 내가 견딜 수 있는 방식으로만 품으려 했던 걸까.
요즘 나는 ‘조언하지 않는 연습’을 한다.
충고 대신 질문을 해본다.
잔소리 대신 기다려본다.
방이 어질러져 있어도 한 번은 지나가 본다.
나는 여전히 급하고, 가끔 다혈질이 올라오고,
‘엄마답게’ 해야 한다는 강박도 남아 있다.
그런데도 조금씩은 알겠다.
아이를 사랑한다는 건
내 기준으로 완성시키는 일이 아니라,
그 아이가 자기 방식으로 자라는 걸 견디는 일이라는 걸.
딸아,
나는 네가 나처럼 자랄 줄 알았다.
그런데 너는 나랑 너무 달라서,
나는 그 다름 앞에서 내가 얼마나 불안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너는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내가 얼마나 통제에 익숙한지,
내가 얼마나 “엄마라서”라는 말 뒤에 숨었는지,
내가 얼마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불안을 덮었는지.
이제는 네가 낯선 여자가 아니라,
내가 낯선 여자가 되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내가 나에게도, 너에게도 더 부드러운 사람이 되는 연습.
어쩌면 그게
“딸을 사랑한다”는 말의
새로운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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